썩은 상자 안의 사과는 썩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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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의 인문학생중계] 짐바르도 교수의 ‘루시퍼 이펙트’

‘피터의 원리’를 입증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공직 인사를 보면, “특정 분야에서 유능하던 사람이 승진 끝에 결국 무능이 드러나는 지점에 도달한다”는 ‘피터의 원리’가 일상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역사학자 이인호는 KBS 이사장에 오른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친일 미화 발언으로 노추(老醜)를 과시한다. “영계를 무척 좋아한다”는 패션 유통업자 출신의 캐리어 우먼 김성주는 적십자사 회장이 됐다. 중앙정보부 프락치로 동료들을 밀고하여 출세의 기회를 잡은 기자 출신 정치인 곽성문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이 됐다.

한 조직 내에서 정상적으로 승진한 게 아니므로 그냥 ‘낙하산’일 뿐이라고? 물론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좀 크게 봐서, 대통령이 수장으로 있는 한국 사회 전체를 하나의 조직 단위로 간주하면 이 또한 ‘피터의 원리’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분들의 무능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고? 지면 관계상 구구한 논거는 생략하지만, 곧 무개념이 백일하에 드러날 거라는데 5만원 건다.

이 분들은 임명권자의 의중을 살펴서 그대로 행동하는 데에 올인할 게 뻔하다. 그 결과는? 상명하복과 소통 불능의 조직문화다. 조용히 지내려면 모두 기계처럼 자기 일만 해야 하고, 조직이 침몰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무능과 무책임의 풍조는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수백명이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아 죽어가는데도 단 한명도 구하지 않은 세월호의 참극, 그 경악스런 비인간성은 이렇게 재생산되는 것이다. 

▲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루시퍼 이펙트>(이충호 임지원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는 부제가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다.
권위주의적인 풍토에서 무능한 지도자가 연명하는 방법은? 사악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복종하지 않는 이들을 가차없이 징계하고 업무를 박탈한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도 느끼고 망설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은 사악함은 큰 업무를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이는 결국 습관적인 행동 패턴으로 굳어진다. 그렇다면 평범한 구성원은? 처음에는 반항하고 고언하고 읍소한다. 그러나 이러한 몸부림이 아무 소용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점차 냉소와 침묵에 빠져들고, 세월이 지나면 별 생각 없이 권위에 복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무능한 지도자는 사악함을 유능함으로 착각하며 기고만장하고, 사회 전체는 점차 거대한 무덤으로 변해 간다.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루시퍼 이펙트>는 부제가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다. ‘새벽 별’이란 뜻의 루시퍼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던 천사였지만 천국에서 쫓겨난 뒤 악마로 변한다. 무엇이 천사를 악마로 돌변하게 만들었을까? 짐바르도 교수는 1971년 8월14일, 스탠포드 대학에 감옥을 만들어 놓고 자원자 24명을 반으로 나눠 교도관와 수감자 역할을 맡겼다. 이들은 미국과 캐나다 중산층 출신의 대학생들로, 몸과 마음에 장애가 없고 범죄나 약물 복용 이력이 없었다. 교도관과 수감자는 제비뽑기로 나눴다.

실험이 시작되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실험인 줄 알면서도 수감자들에게 가학적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점호 시간이면 차가운 이산화탄소를 퍼부으며 수감자를 괴롭혔고, 반항의 기미를 보이면 독방에 감금하거나 성적인 모욕을 가했다. 동료 교도관들의 묵인과 방조 속에서 이들은 잔인해졌고 수감자는 비굴해졌다. 실험에 교도관으로 참여한 사람은 “맡은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며 자신들의 폭력을 합리화했고, 단 며칠 만에 반성할 줄 모르는 기계로 전락해 버렸다. 실험은 원래 2주로 예정되었으나 수감자 역할을 하던 학생들에게 신경 쇠약 증세가 나타나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6일 만에 중단된다. 참가자들의 폭력과 야만이 위험수위를 넘어선 탓이었다.

▲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한 미군 병사들은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의 실험은 33년 뒤 이라크에서 실제상황으로 재연된다. 2004년,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미군들이 이라크군 포로를 학대하는 사진이 공개되어 전 세계가 분노했다. 하지만 그 야만적 행위의 중심인물인 프레드릭 하사는 지극히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2주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교회에 나갔으며, 스스로를 도덕적이고 영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는 정신병자가 아니었지만 아무 죄의식 없이 포로들을 학대했다.

짐바르도의 스탠포드 실험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과 연결된다. 예루살렘 전범재판에 참가한 아렌트는 히틀러의 살인기계로 일한 아이히만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평범한 가장에 불과했다는 걸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사악하지도 않았고,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단지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서 관료적 의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했을 뿐이다.” 아이히만은 “오직 명령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며, 그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예루살렘 법정은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은 죄”를 물었고, “인류 역사에서 이런 일이 되풀이 되면 안 된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자기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려 하지 않고,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그저 충실히 실행하는 아이히만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이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아이히만들이 있는 걸까?

작은 아이히만을 재생산하는 요인은 수두룩하다.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도 큰 요인 중 하나다. 짐바르도 교수의 <루시퍼 이펙트>는 종교 지도자 짐 존스의 명령에 따라 신도들이 집단 자살한 인민사원(Temple of People)의 사례를 소개했다. 존스타운의 이 사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의원과 언론인들이 접근하자 짐 존스는 죽음으로 항거하자고 호소했고, 276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914명의 신도들은 기꺼이 독극물 주사로 자살을 결행했다.

평범한 사람이 나치 열성당원으로 변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의 한 고등학교 교사 론 존스는 나치 청년단이라는 광신적인 조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학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실험 수업을 진행한다. 론 존스는 먼저 학생들에게 단순한 구호를 주술처럼 반복시켰다. “절제를 통해 힘을! 공동체를 통해 힘을! 행동을 통해 힘을!” 모든 발언을 세 단어 이내로 제한하고, 경례 방법을 통일하고, 제복을 입혀주었다. 평범한 학생들은 며칠 안에 나치 청년단과 똑같은 마인드를 갖게 됐다. <루시퍼 이펙트>에 소개된 이 실험 수업은 다큐멘터리 <웨이브>(Wave, Ron Jones)에 상세히 묘사돼 있다.

개인은 원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단순한 형용사 하나로 설명하기에 인간 본성은 너무나 복잡하다. 인간의 성격은 찰흙과 같아서 긍정적인 면이든 부정적인 면이든 주어진 틀에 따라 결정되기 쉽다. 나쁜 시스템 속에서는 누구나 나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 탓을 한다고 나쁜 행동이 면죄되는 것은 아니다.

짐바르도 교수는 성한 사과를 썩게 만드는 ‘썩은 상자’에 주목했다. 감옥과 군대라는 환경 자체가 ‘썩은 상자’였다.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 폭력적인 말과 행동의 일상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순응의 시스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썩은 상자’에 들어 있는 사과와 같다. 올해 고름처럼 줄줄이 터져 나온 군대 폭력은 군대라는 환경 자체가 ‘썩은 상자’였기에 필연이었다. 군대만 문제가 아니다. 수십일째 단식하는 사람들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보란 먹어대는 일베충들, 세월호 농성장을 쳐부수겠다는 자칭 ‘서북청년단’의 폭력배들…. 지도층 인사들은 물론, 극우 성향의 젊은이들까지 제 세상 만난 듯 활개치며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 ‘썩은 상자’에 담긴 사과가 싱싱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결국 상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썩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건 천사인가, 악마인가. “선과 악의 경계는 모든 사람의 마음 한복판에 있다.”
짐바르도 교수는 ‘악의 평범성’에 빗대어 ‘영웅의 평범성’(Banality of Heroism)을 얘기한다. 다수는 부조리한 체제에 순응하지만, 이에 항거하는 작은 영웅도 언제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부당한 시스템에 맞서는 10단계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각 단계에 해당하는 영웅을 예시한다. 가령, 스탠포드 실험 당시 여학생 크리스티나 메슬렉은 짐바르도 교수의 권위에 도전하며 실험을 중단하도록 설득했다. 그녀는 행동을 통해 불복종을 실천했고, 짐바르도 교수는 그녀의 의견을 수용했다.

크리스티나의 용감한 사례가 우리 사는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이 결혼해서 부부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런 소수의 ‘영웅’을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고 그들의 행동을 격려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짐바르도 교수는 스탈린의 굴라그에 갇혀 있던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의 말을 인용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선과 악의 경계는 모든 사람의 마음 한복판에 있다.”

 * 글쓴이 이채훈 PD는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로 방송대상, 통일언론상을 수상했다.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으로 일하며 인문학과 클래식으로 이 시대 PD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PD로서 공부하자! 시청자 눈높이에서 질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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