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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보자’, 언론의 ‘황우석 신화 부추기기’ ·언론 위상 추락 담아

2일 개봉하는 <제보자>는 제목과 달리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을 폭로한 제보자보단 사건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한 언론인에게 무게 중심을 둔다.

알다시피 영화의 소재가 된 ‘황우석 사태’의 진실은 황우석 박사 연구팀에 있던 한 연구원의 양심선언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제보를 받고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힌 MBC<PD수첩>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진실 추적의 과정은 험난했다. 2005년 대한민국은 ‘황우석 박사를 신화’로 만든 견고한 국익 논리가 버티고 있었다. 영화 <제보자>에서도 이정환 박사의 논문 조작 사실을 처음으로 폭로한 심민호 팀장(유연석 분)이 윤민철 <PD추적> PD(박해일 분)을 만나 “국익과 진실 중에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고 먼저 묻는다.

윤 PD는 “줄기세포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심민호 팀장의 제보를 토대로 사건에 뛰어든다. 하지만 이장환 박사의 보이지 않는 취재 방해뿐만 아니라 ‘믿고 싶지 않은 진실’에 저항하는 여론에 윤 PD는 난관에 봉착한다.

<제보자>가 그리는 언론의 모습은 양면적이다. 2005년은 언론이 ‘황우석 신화 만들기’ 경쟁을 벌이던 때였다. <제보자>는 이장환 박사를 보호하는 데 앞장 선 언론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당시 언론의 행태를 비판한다.

윤 PD와 함께 사건을 취재했던 조연출 김이슬(송하윤 분)이 이장환 박사팀이 대규모 홍보팀을 두고 기자들을 일상적으로 관리해 온 사실을 지적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김이슬은 이장환 박사가 제공하는 선물을 언론인들이 비판의식없이 받아왔다며 “논문 하나 없는데 연구업적을 인정받은 비결”이라고 꼬집는다. <PD추적>팀이 점점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오자 이장환 박사가 언론사 편집국장을 불러 맞대응을 유도하는 장면에서도 ‘학언유착’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묻어난다.

당시 언론 보도를 되짚어보면 윤 PD에게 다른 언론사 기자가 던지는 “이장환 박사를 공격하는 저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현실에서도 가능했을 법하다. 2005년 11월 방송된 MBC<PD수첩>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편에 앞서 다른 방송사에서 줄기세포의 존재를 강조하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당시 MBC의 취재윤리 위반 문제를 보도한 YTN은 황우석 연구팀의 편의를 제공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과 방송까지 내보낸 바 있다. 

자연스럽게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하는 윤민철 PD의 면모가 부각되지만 영웅담으로 흐르진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윤민철 PD는 국가주의에 사로잡힌 세상에 홀로 싸운 게 아니었다. “모든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발벗고 나선 심민호 팀장 부부와 소신을 밝혀 준 학계와 시민단체의 지원사격이 지원이 뒤따랐다.

무엇보다 “이 방송 꼭 내보낼 겁니다”는 윤 PD의 바람대로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데는 <PD추적> 동료들과 간부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내 반대 여론에도 이성호 <PD추적> 팀장(박원상 분)은 전폭적인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고, 국장(권해효 분)은 “진실이 국익이다”며 윤 PD의 등을 두들겨줬다.

2005년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편이 우여곡절 끝에 방송되기까지의 상황도 비슷하다. 당시 <PD수첩> CP였던 최승호 <뉴스타파> PD가 외압을 막는 역할을 했고, 당시 최문순 MBC 사장도 보도국의 거센 반대에도 방송을 결정했다.

하지만 10여년 전 진실보도에 매달린 언론인의 고군분투는 어쩐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10여년 전보다 후퇴한 언론의 현실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최승호 PD는 지난 25일 <제보자>를 보고 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면 학계에서 결론을 내리고 결론을 국민이 받아들이던 때가 있었다”고 자조섞인 평을 남겼다. <제보자>가 진실을 보도하려했던 언론인의 노력을 조명한 이유도 이런 언론의 여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임순례 <제보자> 감독은 지난 29일 참여연대와 호루라기재단 등이 주최한 시사회에서 “감춰진 진실을 찾는 작업은 제보를 결심한 한 사람의 용기도 중요하지만, 그 용기가 결실을 맺기 위해선 사회 곳곳에서 제 기능을 해야 한다”며 “10년 전보다 지금의 상황이 더욱 악화된 데에는 이전보다 추락한 언론의 위상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런 맥락에서 윤민철 PD가 사장 앞에서 ‘방송강령’을 외치는 장면은 설교적이지만 <제보자>의 메시지가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로 시작하는 윤민철 PD의 절규는 갈수록 뒷걸음치는 언론의 현실로 향한다. 이 외침이 진실보도가 가능했던 시절의 향수가 아니라 언론인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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