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보 선생, 언론운동의 큰 스승…타계 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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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보 선생, 언론운동의 큰 스승…타계 비통”
타계 소식에 언론계 애도 물결·언론시민단체 장례절차 논의 중
  • 최영주 기자
  • 승인 2014.10.09 13: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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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후 타계한 故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의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한국PD연합회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50여년의 세월을 싸워 온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의 갑작스런 타계 소식에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은 지난 8일 오후 7시께 고양 일산병원에서 숨졌다. 향년 72세.

언론 민주화를 일생을 바친 성 전 위원장이 영면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언론계와 언론단체 인사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중요한 역사의 일원이신 분이 돌아가셔서 참으로 안타깝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의 정신을 이어받아 얼마 전 출범한 자유언론실천재단은 물론 언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이어받아야 할 정신이 뭔지를 더욱더 새삼 느끼게 된다”며 “한국 언론사는 물론 정치사와 현대사에서 큰 족적을 남겨주신 분이고 아직 해야 할 몫이 많은 분이 이렇게 짧은 나이에 가신 것이 비통할 따름이다”라고 애도의 말을 전했다.

고인과 서울대 정치학과 동창이면서 동아일보에서 함께 기자 생활을 보낸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는 <오마이뉴스> 기고를 통해 애도의 뜻을 밝혔다. 그는 “우리의 청춘, 우리의 꿈, 우리의 투쟁, 우리의 못 다한 이야기는 우리보다 나은 후배들이 이어받아 이루어낼 걸세. 고단한 삶의 짐 내려놓으시고 편히 가시게. 나도 곧 따라가겠네. 잘 가시게, 나의 동지여!”라며 54년 지기 친구의 죽음을 슬퍼했다.  

오는 2015년 동아투위 결성 40주년을 맞아 관련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 박정남 독립PD는 9일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성 전 위원장 타계 하루 전인 지난 7일 오후 2시경 병실에서 성 전 위원장과 만난 이야기를 통해 한 명의 언론인으로서 성 전 위원장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전했다.

▲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PD저널
동아투위 다큐멘터리와 관련해 인터뷰를 요청한 박정남 PD에게 성 전 위원장을 병실에서 환자복을 입고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며, 링거를 빼고 자켓을 입고 병실 밖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박 PD는 성 전 위원장의 건강이 염려돼 퇴원 후 뵙겠다고 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것이 박 PD가 본 성 전 위원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박 PD는 “성 선생님께 왜 밖에 나가서 인터뷰를 하시겠다는 건지 묻자, 선생님은 언론인으로서 독자와 시청자를 만나는데 환자복을 입고 만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성유보 한 물 갔다’는 소리를 듣기 싫다고 그러셨다”며 “내가 보기에는 선생님이 영원한 현역으로 남으시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박 PD는 “선생님은 지금의 언론 상황을 많이 답답해하셨다. 40년 전 상황과 달라진 게 없이 오히려 더 교활해졌다 말씀하셨다”며 병실에 계시는 와중에도 한국의 언론을 걱정했던 성 전 위원장의 모습을 전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에서도 성 전 위원장을 추모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뉴스타파> 제작진은 트위터에 “‘자유언론’을 위해 평생을 바쳐 싸우셨던 고(故) 성유보 선생님의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성 전 위원장의 별세를 추모했다.

허재현 <한겨레> 기자도 자신의 트위터에 “삼가 성유보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리영희 선생님과 더불어 한겨레 창간과 언론자유운동의 큰 어른이셨습니다”라며 성 전 위원장의 갑작스런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정재홍 전 <PD수첩> 작가는 “자유언론실천의 주역 성유보 선생께서 오늘 별세하셨습니다. 평생을 박정희 독재정권과 그 하수인들의 언론 탄압에 맞서 진실을 지켜 오신 성유보 선생님. 사악한 무리가 판치는 더러운 이 땅에서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명복을 빕니다”라며 트위터에 애도의 글을 남겼다.

채수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명복을 빈다는 것은 살아남은 자가 그저 삼고자 한 위안이다. 그러나 이제 이승의 고단함을 내려놓으셨으니 편히 쉬시라”며 “동아투위 40년, 진보정권 10년도 복직을 허락하지 않은 섭섭함도 내려놓고 편안하시기를 빈다. 성유보 선생님”이라고 슬픔을 표현했다.

최선욱 전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처장도 “성유보 선생께서 영면하셨다. 늘 늘 현장 가까이에서 조금이라도 세상이 나아지시길 기대하셨으나 어찌보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거나 하필 더 나빠진 상황에서 운명을 달리 하셨다”며 “명복을 빕니다”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성 전 위원장을 추모했다.

성 전 위원장은 지난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하던 중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지난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 참여했다. 1975년 3월 17일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제 해직된 후 함께 해직된 113명의 기자·PD와 함께 동아투위를 결성해 언론의 자유를 위한 여러 활동을 펼쳤다.

성 전 위원장은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월간 <말>을 창간했으며, 1988년 한겨레 초대 편집위원장을 지냈다. 그밖에도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편 빈소는 유족의 뜻에 따라 9일 밤 11시경 일산병원에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졌으며 발인은 오는 11일이다. 고인은 민주인사들이 잠들어 있는 남양주 모란공원에 안장된다. 언론·시민단체들은 9일 낮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장례 절차 등을 논의하고 있다. 

▲ 2012년 12월 3일 리영희 재단 주최 ‘해직 언론인 복직 촉구 토크 콘서트’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이 해직언론인 최승호 MBC 해직PD(맨 왼쪽)와 1980년 경향신문에서 해직된 표완수 전 시사IN 대표(가운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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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만 2014-10-10 00:21:15
성 형,

어이 그리 일찍 갑니까?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심심 애도.

장동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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