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신부’ 혹은 고전 리메이크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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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의 되감기]

2000년대 한국영화는 검열과 통제 때문에 과거에 다루지 못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들이 등장했다면 2010년대의 특징 중 하나는 한국영화사에서 획기적이었던 고전영화들, 그리고 외국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연간 영화제작 편수가 100편을 상회하는 상황에서 좋은 시나리오를 구하는 것이 관건이기에 새로운 시나리오를 구하는 것만큼 이미 성공한 국내외의 작품을 리메이크하려는 움직임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즉, 2000년대의 한국영화는 전반적인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경향이 강했고, 2010년대에는 한국영화사를 되돌아보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하녀>(임상수, 2010), <만추>(김태용, 2011), <후궁, 제왕의 첩>(김대승, 2012), 그리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임찬상, 2014) 등이 그 예이다. 이중 <후궁, 제왕의 첩>은 아예 제목을 바꾸긴 했지만 원작은 신상옥 감독의 <내시>(1968)이다.

그런데 이들 작품은 원작의 이야기 구조를 거의 비슷하게 유지하지만, 원작이 만들어진 시대 상황과 감성과는 달라진 요즘의 감성에 맞게 각색해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2010년판 <하녀>는 주인을 더 강력한 권력을 지닌 이로 설정했는데, 주인집과 하녀의 계급격차를 훨씬 더 벌려놓는 식으로 바꿔놓음으로써 원작에서 보여준 ‘하녀’의 강한 성적 에너지와 계급 간의 권력관계의 역전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면서도 냉소적인 결말을 선보였다. 정리하자면 2010년판 <하녀>는 지난 50년 동안 경제발전 이면에는 계급격차가 현격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1년판 <만추>는 아예 공간적 배경을 시애틀로 옮기고 주인공을 중국계 미국인으로 바꾸어서 감옥에서 특별휴가를 받은 주인공이 자유롭지 못한 자기 처지에 대해 회한을 느끼는데 더해서 백인중심의 미국사회에서 겪는 소수민족의 소외감까지 담아내게끔 처리함으로써 한국영화가 해외를 배경으로 리메이크될 수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후궁, 제왕의 첩>은 원작 <내시>가 지닌 궁중암투극과 치정극이라는 외양은 더 강화하는 대신에, 원작이 여성을 무기력한 희생자로 그린데 비해 여성이 반격하도록 결말을 처리한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여성은 더 섹시해지는 동시에 더 강해지고 지독해졌다.

이들 세 작품이 1960년대 작품을 리메이크한 데 비해,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1990년대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1990년 원작은 그 당시를 기준으로 봤을 때 여러모로 새로웠다. 이 영화를 통해 당시 신인이었던 박중훈과 최진실은 본격적으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의 위치에 올랐다. 사회적 리얼리즘이라는 주제의식을 보여준 코리언 뉴 웨이브 감독들과는 다른 이명세 감독 특유의 시각적 스타일을 구체화했다.

즉, 예전에는 일반적으로 영화를 볼 때 이야기와 주제를 중심으로 보곤 했는데, 이명세 감독은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방식을 선보인 것이다. 정지화면과 디졸브를 통해 시간을 생략하고 요약하며 인물들의 대화는 만화책에서 나올 법한 말풍선으로 처리하는 등, 기존의 영화 문법과는 다른 방식을 선보였다.

그에 비해 2014년판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이미 스타인 조정석과 신민아를 기용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신인들의 신선한 매력보다는 그들의 스타성에 기대게 된다. 원작이 지닌 에피소드 중심의 내러티브 진행 방식은 그대로 차용했는데 각 에피소드는 폴라로이드 사진앨범을 넘기는 것 같은 장면전환을 통해 제시된다. 그러나 그것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시각적 스타일의 혁신은 없다. 혁신적인 스타일과 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남는 것은 특별할 것이 없는 스토리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가끔 웃음이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되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최근 상황에 맞게 예전 영화를 각색하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비슷한 경우와 상황을 맞이하는 새로운 세대는 나올 것이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각색과 신작을 위한 참고 작업도 계속 지속할 것이다.

노광우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교수·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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