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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연주 전 KBS 사장, 10.24 자유언론실천 40주년에 부쳐

오는 24일은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언론인들이 유신정권의 탄압에 항거하기 위해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 지 꼭 40년이 되는 날이다. 유신정권의 이른바 ‘광고탄압’에 무릎을 꿇은 동아일보 경영진은 자유언론실천에 앞장섰던 기자, PD, 아나운서 등 150여 명의 펜과 마이크를 빼앗았다. 갖은 고초를 겪으며 이루고자 했던 그들의 외침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를 통해 오롯이 전해지고 있다. PD저널은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0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동아일보 해직기자인 정연주 전 KBS 사장의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 정연주 전 KBS 사장
40년 전인 1974년 10월 24일 아침 9시 <동아일보> 편집국. 마침내 저항의 횃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기자와 PD들이 ‘자유언론’을 실천하기 위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풋풋한 스물아홉 살, 신혼 4개월의 4년 차 사건기자였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특히 영구집권을 위한 1972년의 유신체제 후 한국의 언론자유는 철저하게 압살 되었다. 언론의 가장 1차적 기능인 ‘사실 보도’조차 박정희 군부독재 권력의 눈에 거슬리는 것은 일체 보도하지 못했다. 대학가의 데모, 노동자와 농민들의 몸부림,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의 저항 등 ‘반 유신적’ 사건들은 일절 보도되지 못했다.

어쩌다 그런 뉴스가 행간에 묻혀 아주 작게라도 보도되면, 동료들이 줄줄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두들겨 맞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기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기었다. 언론인 영혼의 죽음인 자기검열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의 삶이 아닌, 굴종의 삶이었다. 폭력, 억압, 공포가 죽음의 가스처럼 우리의 삶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종신제를 확보한 박정희 유신체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터널 속에 있었다.

그 암흑의 시대, ‘10.24 자유언론 실천선언’이 있었던 그날의 동아일보 편집국에는 긴장감과 결의가 넘쳐 났다. ‘개와 기자는 출입금지’ 팻말 앞에서 느꼈던 그 참담한 부끄러움, 그 지경까지 이른 언론과 정치 상황에 대한 분노, 더 이상 굴종의 삶은 살지 말자는 뜨거운 결의가 가득했다.

그날 우리는 중앙정보부 등 정보기관원의 사내 출입금지 등의 구체적 요구와 이러한 내용을 그 날짜 동아일보에 반영하지 못할 경우 제작을 거부한다는 구체적 목표와 행동 지침까지 내걸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그 날짜 동아일보 1면에 게재할 것을 요구했고, 마감(동아일보가 당시 석간이어서 마감이 오전 11시)이 끝나고도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바로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당시 우뚝 솟은 1등 신문이던 동아일보가 제작되지 않자 편집국에는 독자들과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상황을 파악한 독자와 시민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당분간 신문을 안 봐도 좋으니까 끝까지 싸우라는 격려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밤이 깊어서야 동아일보 경영진은 굴복하였고, 우리들의 저항이 담긴 기사를 담은 신문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이전 신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학가의 데모와 인권 관련 기사들이 1단씩으로나마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의 싸움은 쉴 새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싸움에서 물러설 수 없었다. 마침내 두 달여의 투쟁 끝에 우리가 보도할 수 없는 성역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유신권력의 폭력과 공포가 하늘을 덮었어도, 우리는 매일 매일을 피투성이 나게 싸워서 이겨냈다.

▲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언론인들이 편집국에서 당시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10·24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그 날을 잊지 못한다. 1975년 2월,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이 석방되었다. 동아일보의 자유언론 투쟁으로 사실 보도가 확대되면서 국민의 민주화 열망이 들불처럼 번지자 박정희 유신권력은 일시적 유화책으로 민청학련 사건 구속자들을 석방했다. 당시 사건기자였던 나와 나의 동기는 석방된 민청학련 관련자를 2명씩 인터뷰했다. 인터뷰 과정에서 이들이 혹독하게 고문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고문 사실을 별도의 스트레이트 기사로 만들었다. 그 기사는 다음날 신문 1면 중간 톱으로 나갔고, 인터뷰 기사는 한 면 전체에 실렸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신문을 받아 들었을 때 느꼈던 그 환희, 노예가 아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만이 맛볼 수 있는 자유의 소중함과 그것이 주는 기쁨!

그리고 한 달 뒤 정치적 위기를 느낀 유신권력과 이에 굴종한 동아일보사 경영진에 의해 우리는 동아일보에서 축출되었다. 어찌 보면 우리들의 자유언론을 위한 싸움은 그렇게 패배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더러는 “역사는 강자의 것이며, 이기는 자만이 역사를 지배한다”고 야유도 했지만, 그것은 기회주의자들의 강변일 뿐, 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때도, 그 뒤 숱한 고난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리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자유언론을 위한 우리들의 싸움은 역사의 편에 선 ‘선한 싸움’ 이었으며, 설령 그때 대량 해직으로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유언론의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이 그 뒤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그날 이후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세상은 지금 이렇게 다시 뒤집혀 버렸다. 민주주의와 인간의 권리, 인간다운 삶을 위한 조건이 아버지와 딸, 2대에 걸쳐 무너지는 꼴을 당하고 있다. 40년 전에는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고문으로, 공포와 억압 정치로 박정희와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것 자체도 억압하더니만, 지금은 이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SNS와 사적인 영역까지도 마구 뒤지며 감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포정치로 ‘박근혜 존엄’을 지킨다고 한다.

언론의 영역으로 좁혀서 보면, 40년 전과 많이 닮은 점도 있고, 판이한 점도 많다. 지상파 방송체제가 권력에 동조하고 순치된 인물들이 지배하면서 방송의 독립이 무너진 꼴은 ‘방송국’ 시절인 유신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때와 분명히 다른, 그때보다 더 심각하고 악화한 언론 토양과 상황이 있다. 첫째, 지금 주류언론은 기득권 세력의 상층부에 속해 있다. 구성원의 소득 수준도 그러하고, 생각과 가치체계도 그렇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식의 신문·방송의 보도와 제작에 대해 주류언론 구성원의 다수는 부끄러움이 없다. 40년 전에는 동아일보 기자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사실보도를 하지 못하는 자신들에 대해 부끄러워했다. 우리가 동아일보사에서 적극적으로 저항하다 해직됐을 때, 다른 언론사의 다수 구성원들은 함께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한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둘째, 지금 주류언론은 단순히 부끄러움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자본·관료·정치집단·공안 세력·전문직 엘리트 등 기득권 지배 세력 카르텔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기득권 체제의 유지와 강화, 이를 극복하려는 세력에 대한 비판과 분열 공작에 아주 적극적이다. 조선‧중앙‧동아로 대표되는 수구언론, 권력지향적이며 이제는 맹목적 충성까지 서슴지 않는 지상파 방송의 지배계층, 방송 생태계를 황폐화시키면서 증오와 분열을 증폭시키는 종합편성채널 등의 언론은 이제 기득권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지·강화하는 주요 성채가 되어 있다.

셋째, 40년 전 언론인들은 일제 저항의 전통을 이어받아 비록 생활은 어렵지만 지사적 정의감이 있었고,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지금 주류언론의 다수 구성원은 지사적 정의감은 커녕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도 저버린 채, 오로지 생활의 안일, 언론권력의 향유, 지배 이데올로기의 강화에 더 열심이다.

이렇게 주류 제도권 언론만 놓고 보면 우리 언론 현실은 40년 전보다 훨씬 악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의 실마리는 있다. 디지털 혁명으로 가능해 진 독립언론과 SNS, 그 밖의 여러 정보전달 플랫폼들이다. 40년 전에는 신문의 입만 틀어 막으면 사실과 진실이 전달되는 통로는 거의 막히는 암흑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둔 여러 정보전달 시스템이 있어서 사실과 진실은 결코 가려질 수 없다. 독립언론 지원에 적극 참여하는 일, SNS 등 새로운 매체의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활용이 절실하다.

희망의 실마리는 또 있다. 40년 전 유신 때는 박정희 종신체제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5년마다 기득권 카르텔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이 가능하다. 박근혜 권력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3년 여만 지나면 막을 내린다. 결국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열린사회, 평화와 평등,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니 우리는 늘 강건하게 버티면서 연대에 힘써야 하며, 늘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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