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닐 수 있는 한 자유언론에 바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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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 기념식…“‘新유신시대’ 40년전 외침 의미 새겨야

▲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이 자유언론실천선언 40년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언론노조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이 40주년을 맞는 오늘 특별히 느끼는 것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모두가 말하지만, 그날 편집국 사회부 뒤에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를 걸고 자유언론실천을 낭독할 때 모두 심장이 터지는 것 같은 흥분을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1974년 10월 24일, 113명의 <동아일보> 기자와 동아방송 PD, 아나운서 등 113명의 언론인이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반대하며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른바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외친 지 올해로 40년이다. 선언 이후 113명의 언론인들은 유신정권의 폭압 아래 거리로 내몰렸다. 이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를 결성해 언론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명예 회복은커녕 복직조차 하지 못한 채 ‘현직’의 이름을 잃고 ‘거리의 언론인’으로 40여년을 살았다. 까맣던 머리도 이제는 하얗게 빛이 바랬고,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기는 것도 예전 같지는 않다. 그러나 113명이 가진 ‘언론인’으로서의 정신만큼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직’이었다.

장윤환 동아투위 위원의 딸 현아, 경아씨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거리에서 싸울 때 늘 불렀던 ‘아침이슬’과 ‘우리 승리하리라’ 연주가 10·24 선언 40주년 행사가 열린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아투위 위원들이 부르는 ‘아침이슬’과 ‘우리 승리하리라’가 회의장을 가득 매웠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시작된 ‘신유신정권’으로부터 언론 자유를 되찾는 데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 다짐했다.

동아투위는 후배 언론인, 각계 각층의 인사들과 함께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열고 40년 전 그날을 반추했다. 지난 8일 타계한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은 <뉴스타파>가 자유언론실천선언 40년을 맞아 준비한 특집 다큐멘터리 <40년>(연출 박정남, 극본 정재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성 전 위원장은 영상 속에서 “언론 스스로 고쳐진다고 볼 수 없다. 독재도 가만히 나누면 세습까지 간다. 그걸 바꾸는 힘은 요즘 본격적으로 전국 곳곳에서 돋아나는 깨어있는 백성,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우리가 40년 동안 깨달은 것은 언론사 지배구조를 민주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자유언론과 공정방송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걸어 다닐 수 있는 한, 집안에 드러눕지 않는 한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영원히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CBS 기자인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오늘날 우리 후배들은 저널리즘의 소명의식을 잃고 부지불식간에 직장인이 되지 않았나 반성한다”며 “언론이 어때야 하고 언론인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가 성찰할 수 있는 날이 자유언론실천선언날이다. 선배들이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면서 공적 저널리즘을 구현해왔던 것처럼 후배들도 더 열심히 선배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오늘날을 ‘신유신시대’라고 표현하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의 의미를 다시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장악된 언론보다 부역하는 언론이 더 문제 아닌가 싶다”며 “앞으로 투쟁을 좀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명확하게 나아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각계의 축사도 이어졌다. 이들은 동아투위의 자유언론을 위한 투쟁이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현재 언론의 참담한 현실을 지적하며 동아투위가 40년 전 그랬듯이 다시금 떨쳐 일어나 언론의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해동 목사는 “1970~1980년대는 강압적인 수단에 의해서 언론이 통제됐지만 지금은 어떤 측면에서는 언론 자체가 길들여져서 무엇이 잘못됐는지조차 기자들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아주 극악한 상황, 심각한 상황에 한국 언론이 직면해있다”고 지적하며 “그러나 여러분들이 끈질기게 자유언론을 위해서 투쟁하면 반드시 그것이 새순이 돋아나고 거기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결과가 올 거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40년 전 동아투위가 폭력배에 의해 <동아일보> 사옥에서 강제로 쫓겨날 때 끝까지 현장을 지켰던 제임스 시노트 신부는 “나는 40년 전 결단, 고귀한 선택을 잊을 수 없다. 당시는 진실을 말하면 감옥에 가야 했던 때였다”며 “1974년 10월 24일, 40년 전 오늘은 빛나는 징표의 날이다.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모범의 날이다. 그때 결단했던 숱한 기자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다시 한 번 모든 분들께 마음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제임스 신부는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알려 지난 1975년 12월 미국으로 추방되기도 했다.

이철 민청학련계승사업회 상임대표는 “모든 자유는 언론의 자유로부터 출발한다”며 엄혹한 시기에 언론인들의 자유를 위한 운동이 다시금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철 대표는 “우리를 창살에서 데리고 나온 언론인이 다시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며 “우리는 일어서 맞서야 한다고 확신한다. 언론인과 우리가 다시 하나 되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동아투위 선배님들, 언론인들, 함께 나가자”고 말했다.

▲ 제임스 시노트 신부가 40년 전 <동아일보> 기자와 동아방송 PD, 아나운서 등 언론인들의 투쟁과 희생에 대해 감사하다고 밝히고 있다. ⓒ언론노조
고(故) 이의직 동아투위 위원의 장남이자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주헌 씨는 “아직 명예회복이 되지 않고 복직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고 아쉽다. 그리고 또다시 언론이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가 된다”며 “‘연탄가스에 중독된 언론’이란 말이 다시 떠오른다. 지금은 가스를 주입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어찌 보면 언론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깨어있는 백성들이 있어야 나라가 산다고 성유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또 민중의 힘에 의해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 행사가 끝난 뒤에는 제20회 통일언론상과 제26회 안종필 자유언론상 시상식이 열렸다.

‘국정원 간첩조작 연속보도’로 통일언론상 대상을 수상한 <뉴스타파>의 최승호 PD는 “간첩조작사건들을 1년 반 정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이 문제 보도에서 우리언론이 핵심을 피해 빙빙 돈다는 것”이라고 언론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 최 PD는 “40년 전 자유언론의 횃불을 들어 후배들의 가슴에 자유언론의 불꽃을 피워준 선배들께 감사드린다”며 “MBC에서 해직이 되어서도 이렇게 마음껏 보도할 수 있는 <뉴스타파>라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지원해주는 진실의 수호자 3만 5000명 후원자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데 가다’로 특별상은 수상한 신은미 <오마이뉴스> 기자는 미국에 있는 관계로 김지현 기자를 통해 대신 수상소감을 밝혔다. 신 기자는 “수여해 준 상을 격려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며 더 열심히 ‘편견 없는 북녘 동포들의 소식’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수상한 KBS 보도본부 인사검증 TF팀의 김귀수 기자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38기 기자들이 성명서를 썼고, 그 결과 지난 6월 뜨거웠던 KBS의 여름이 만들어졌다. 그 계기로 인사검증 TF팀이 생겼다”며 “큰 상 주셨기에 우리가 이 상의 의미를 가슴 속 깊이 깨닫고 ‘기레기’가 아닌 ‘진정한 기자’로 살 수 있도록 그런 마음가짐으로 평생 살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7일 ‘반성합니다’라는 제목의 반성문을 남긴 막내 기자들 중 한 명인 38기 홍성희 기자는 “이 상을 받은 이상 이 상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보도를 해야 할 것이라는 의무감과 욕심을 갖게 됐다”며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 기념식과 통일언론상, 안종필 자유언론상 시상식이 끝난 후 동아투위 위원들을 비롯한 수상자와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언론노조

다음은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전문.

자유언론실천선언

우리는 오늘날 우리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

민주사회를 유지하고 자유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기능인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교회와 대학 등 언론계 밖에서 언론의 자유회복이 주장되고 언론인의 각성이 촉구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뼈아픈 부끄러움을 느낀다.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종사자들 자신의 실천 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하거나 국민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민주사회 존립의 기본요건인 자유언론 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며 우리의 뜨거운 심장을 모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1.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1.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일절 거부한다.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사할 때 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기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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