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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랑스= 표광민 통신원

세계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에 열광하고 있지만, 정작 프랑스는 한 극우 보수 인사에게 열광하고 있다. <르 피가로>(Le Figaro)의 논설위원으로 여러 TV 프로그램의 패널과 사회자로 종횡무진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에릭 제무르(Éric Zemmour)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신간 ‘프랑스의 자살(Le Suicide français)’이 10월 한 달 내내 판매부수 1위를 달리면서 주가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책은 지난 1일 발간된 뒤 매일 1만부 이상이 팔려나가는 등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출판사에 따르면 첫 인쇄된 12만부는 이미 다 판매됐고 30만부를 추가로 인쇄했다고 한다. 이 책의 성공으로 제무르는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을 뿐 아니라, 신문과 방송에 잇달아 등장하면서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 에릭 제무르, ‘프랑스의 자살’
제무르의 성공은 점점 극우화되고 있는 프랑스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정권에서 장관직을 지낸 우파 여성 정치인 로젤린느 바쉴로(Roselyne Bachelot)는 “우려스러운 상항”이라고 작금의 현실을 평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무르는 샤를 드골과 나폴레옹 추종자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고, 때때로 반사회적 발언까지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화가 가족애와 같은 프랑스의 전통적 가치들을 파괴하고 있다며 유럽 통합, 이민자 증가 등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프랑스의 자살’은 이러한 극단적인 주장이 집약된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프랑스를 파괴한 40년’으로 68혁명 등 좌파 풍조에 의해 프랑스가 몰락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권위주의를 타파하려 했던 68혁명이 프랑스의 전통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제무르는 역대 대통령들의 정책 역시 질타한다. 1970년대에 조르주 뽕삐두(Georges Pompidou)대통령이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이민을 허용한 것,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Valéry Giscard d’Estaing) 대통령이 낙태를 허용하고, 합의 이혼을 법제화한 것 등도 그에게 있어선 비난의 대상이다.

프랑스를 자유와 관용의 나라로 만들었다고 평가받은 일련의 조치들이 실은 프랑스를 몰락시켰다는 주장인 셈이다. 제무르는 나치 독일의 괴뢰국이었던 비쉬 정권을 적극 옹호하고 있는데, 비쉬 정권이 있었기에 프랑스 내의 많은 유대인들이 그나마 독일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일베’를 연상시키는 주장들이지만, 인기를 등에 업은 제무르는 버젓이 TV 방송에 출연하면서, 여과 없이 자신의 주장을 퍼뜨리고 있다. 한 TV 토론에서는 “68혁명 당시 페미니스트들이 내걸었던 ‘내 몸은 내게 속해 있다’란 슬로건을 증오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파리 교외의 몇몇 지역은 프랑스가 아니라 이슬람 공화국이라고 불러야 한다” 등의 발언으로 여성과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극작가 앙리 드 보르니에(Henri de Bornier)는 1875년 작 ‘롤랑의 딸’에서 “모든 사람은 두 개의 조국을 갖는다. 자신의 조국과 프랑스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프랑스가 앞장서서 다른 나라들에 인본적·민주적 가치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의미로 쓰이곤 한다. 그러나 지금의 프랑스 국민들은 증오와 우월감에 빠져 자유, 평등, 연대의 프랑스를 잊어가고 있다.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 프랑스 고등교육원(EPHE) 제5분과 정치철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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