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보편’ 가치 사라진 700㎒ 주파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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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지상파 UHD 방송용 주파수 필요성 지적에 통신 ‘전방위 공세’

700㎒ 대역 주파수 활용을 둘러싼 방송·통신계의 갈등이 해법을 찾지 못하고 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방송·통신 분야를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그간 통신 쪽으로 기운 정부 논의의 축을 바로잡을 것을 주문하며 정책 결정 이전 국회 차원의 공청회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는 통신 쪽에 주파수를 할당하는 것을 전제로 한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엇박’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일련의 상황을 두고 방송·통신 양측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저마다 상대에 대한 ‘편향’을 지적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갖가지 기술 동원한 ‘여론전’= 일단 눈에 띄는 건 갖가지 전문용어들로 무장하며 적극 공세를 펼치고 있는 통신 쪽 주장이다.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이 700㎒ 대역 주파수를 지상파 UHD(초고화질) 방송에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데 대한 반박이다. 국감 당시 여야 미방위원들은 현재 2.6㎓ 대역의 40㎒ 폭을 비롯한 고주파 대역 대부분이 비어 있는 만큼 통신용으로는 이 대역을 활용하고 700㎒ 대역은 지상파 UHD 방송용으로 할당하자고 제안했다.

이 배경엔 “2.6㎓ 대역 주파수는 현재 LGU+가 LTE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주파수인 만큼 통신용으로 할당해도 무리가 없을 것”(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라는 판단이 있다. 일부에선 “통신사들은 오히려 2.6㎓ 대역 주파를 요구하고 있다”(심학봉 새누리당 의원), “700㎒ 대역이 방송사에게는 황금주파수이지만 통신사에겐 그렇지 않고 오히려 고주파 대역을 더 선호한다는 얘기가 있다”(조해진 새누리당 의원) 등의 주장까지 나왔다.

이에 통신 측 전문가들은 전파의 기본적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적하고 나섰고, 여야 미방위원들의 일련의 주장에 대해 “사실 왜곡”, “지상파 편들기”라고 비판하는 언론 보도 또한 이어졌다. 실제로 그동안은 고주파 대역일수록 장애물을 돌아가는 회절성(휘는 성질)이 약해지고 도달거리도 짧아지기 때문에, 방송과 통신 모두 직진성과 회절성이 우수한 저주파 대역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왔던 게 사실이다.

▲ 방송인총연합회와 언론노조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래부의 주파수 정책이 통신 편향적이라며 700㎒ 대역에 40㎒ 폭을 통신용으로 할당한 모바일 광개토 플랜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언론노조
그러나 현재 통신업계에서 대비하고 있는 5G 시대엔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한국방송협회 산하 UHD 연구반의 이상진 박사(SBS 정책팀 차장)는 “낮은 대역의 주파수일수록 멀리 가는 만큼 하나의 기지국에서 커버하는 지역이 넓어지고, 그에 따라 동시 접속자가 많아져 트래픽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동통신사들에게 있어 셀 커버리지를 줄이는, 스몰 셀(Small Cells) 확대와 관련한 지원을 통해 용량을 높이는 게 중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일부 IT전문지들에선 방송용의 경우 오히려 고주파가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이상진 박사는 “반면 지상파 방송의 경우 커버리지가 높아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저주파가 맞고, 때문에 700㎒ 대역 주파수가 필요한 것”이라며 “만약 방송을 고주파로 해야 한다면 통신사 기지국만큼 많은 송신소를 세워야 할 텐데, 이 경우 지상파 방송 무료 서비스는 결코 유지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대안을 둘러싼 또 다른 논박도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지난달 23일 하나의 송신기로 하나의 방송채널에서 4K UHD와 이동형 HD 방송까지 동시에 송출할 수 있는 LDM(계층분할다중화·Layered Division Multiplexing) 기반 차세대 지상파방송 기술을 시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채널 부호화 기술 △계층 전송기술 △수신기 신호제거 기술 등을 핵심으로 하는 LDM 기술을 통해 기존 DMB 방송 주파수인 VHF 대역(TV 채널 2~13번)에서 지상파 UHD 방송과 DMB 방송을 동시에 송출하는 게 가능하다는 설명으로, ETRI 발표 직후 “700㎒ 주파수 활용 ETRI가 내놨다”, “지상파 UHD 사용화 새 국면” 등의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은 “두 방송(지상파 UHD와 DMB 방송)을 하나의 주파수로 보내면 순차적으로 DMB에서 수신하고 이후 이 신호를 제거한 후 다음 신호(UHD)를 복원해 사용하게 함으로써 주파수 대역을 공유하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이 경우 기존 DMB 단말기와의 호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자동차와 스마트폰에 장착한 DMB 단말기들의 주파수 수신 체계와는 다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비용을 들여 교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LDM 기술 자체가 복잡도가 높기 때문에 수신환경에 따라 신호제거 등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를 배제할 수 없어 난시청 유발에 대한 우려가 있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계기 추가 설치 등 또 다른 비용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지상파 UHD 방송은 이미 실험방송까지 마친 반면, LDM 기술은 현재로선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뿐 상용화가 되지 않은 이른바 ‘실험실’ 기술”이라며 “결국 이런 것들을 동원해 700㎒ 대역 주파수가 지상파 방송에 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료 보편 플랫폼 가치 논쟁도= 700㎒ 대역 주파수 활용을 둘러싼 일련의 논박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직접수신율이 낮은 지상파 방송보다는 IPTV 등 유료매체를 통해 UHD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90% 이상의 가구가 유료방송을 통해 TV를 시청하는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채수현 언론노조 SBS본부장(SBS 라디오기술팀 차장)은 “700㎒ 대역 주파수를 지상파 UHD 방송에 활용할 것인가 여부는 지상파 TV 디지털 전환 이후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말로 반박했다.

지상파 TV(HD방송)은 디지털 전환을 하며 전송방식을 미국식(ATSC)으로 채택했다. 이 방식은 동일 출력으로 더 멀리까지 전송 가능한 장점이 있는 반면, 주변의 다른 중계소와 전파 간섭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 중계소마다 다른 주파수를 사용해야 하는 단점도 있다. 즉, ATSC 방식은 MFN(다중주파수망)으로 중계기에서 F1의 주파수를 받으면 F2라는 주파수로 변환해 전파를 보내야 혼선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전파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평야지대가 많은 미국과 달리 산악지역이 많은 국내 환경에서 이 방식을 사용할 경우 더 많은 중계소와 전파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은 유럽식의 DVBT-2 방식을 UHD 방송을 위한 잠정 표준으로 제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유럽식을 도입할 경우 SFN(단일주파수망) 구성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주파수 효율성이 높아지고, 또 기본적인 고정수신 능력이 뛰어나 실내 안테나에 의한 수신 성능이 우수한 만큼 난시청 커버에도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채 본부장은 “지상파 UHD 방송을 위해 700㎒ 대역 주파수를 활용한다면 무료보편 플랫폼으로서의 지상파 방송의 공공적 역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간 지상파 방송이 난시청 해소라는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니, 무료보편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거두라고 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운 남서울대 교수(멀티미디어학과)도 지난 8월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주파수 관련 세미나에서 “방송서비스는 모든 국민이 기본으로 누려야 할 권리”라며 “만일 UHD 방송을 지상파 방송을 제외한 유료채널에서만 볼 수 있다면 경제적 약자인 저소득층은 더욱 정보문화에서 소외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지상파 방송사들이 ‘국민행복 700플랜’을 발표하면서 “UHD 전환과 함께 MFN을 SFN으로 바꾸면 서울과 수도권 전역을 커버하는 데 지금은 37개 채널이 필요하지만 5개 채널만 있어도 된다. 커버리지를 100%로 높여 난시청 문제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당시 지상파 방송사들은 “(700㎒ 대역 주파수 중) 54㎒ 폭만 빌려주면 2020년부터 UHD 전국 방송을 시작하고 2025년이면 완전히 UHD 방송으로 전환, HD 주파수 132~150㎒를 반납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2012년 확정한 ‘모바일 광개토플랜 2.0’에서 지상파 아날로그TV 방송의 디지털TV 전환으로 비게 된 700㎒ 주파수 대역 108㎒ 폭 중 40㎒ 폭을 통신용에 우선 배정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제외한 68㎒ 폭의 용도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망(20㎒)과 지상파 UHD 방송 등에 대한 요구가 새롭게 발생하면서 현재 방통위와 미래부는 재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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