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yes Free, Music Chemistry, Story Hap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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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Free, Music Chemistry, Story Happening
[임재윤 PD의 포스트 라디오 ②] 2015년에도 통할 라디오의 비교우위는?
  • 임재윤 MBC 미래방송연구소
  • 승인 2014.11.17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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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 Free’

전장(電裝)부품이 늘어나고 커넥티드카 개념이 도입되면서, 자동차도 이제 PC나 스마트폰처럼 OS를 탑재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미 여러 자동차메이커들이 애플의 ‘카플레이’(Carplay)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Android Auto) 등의 자동차OS를 내년 신차 라인업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라디오의 미래를 얘기하자면서 왜 자동차OS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 계실 겁니다. 바로 ‘Eyes Free’(눈을 자유롭게 하라)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Eyes Free’는 애플 카플레이의 핵심 개념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소리매체에 대한 통찰력

2011년 애플은 음성 인식 기능 ‘시리(Siri)’를 내놓으면서 터치 기반의 스마트폰 조작 방식을 ‘핸즈 프리(hands free)’로 진화시켰습니다. 이듬해 시리를 자동차와 연결하면서 처음 등장한 표현이 바로 ‘Eyes Free’입니다. 올해 애플은 마침내 본격적인 자동차 OS인 카플레이를 제네바모터쇼에 선보이면서, 안전 운전을 위해 음성을 통해 자동차를 제어하고 피드백을 받는 개념을 적용했습니다. 실제로 카플레이가 적용된 2015년형 미국산 현대 소나타의 실내 화면을 보면, 소리로 소통 가능한 앱들로 채워져 있으며 인포테인먼트 앱들 역시 팟캐스트나 음악서비스 등 소리매체들입니다. 애플에 이어 지난 여름 구글이 내놓은 자동차OS ‘안드로이드오토’ 역시 기본 개념은 유사합니다.

애플은 소리 매체의 비교우위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기업입니다. ‘눈을 자유롭게 하면 손이 자유로워지고, 안전하게 다른 행위를 병행할 수 있다’, 이를 집약한 표현이 ‘Eyes Fee’였던 것입니다. 과거 ‘병행성’이란 단어로 막연하게 표현되어왔던 부분을 ‘안전’과 결부시켜 날 세워 표현한 것이지요. 소리매체를 ‘영상이 결여된 열등한 매체’로 바라보던 일반의 인식을 뒤집어서 '시각의 자유'로 해석하는 발상의 전환 또한 돋보입니다.

한편 애플은 소리매체가 수용자 시간 점유에서 유리하다는 점도 눈여겨 봤습니다. 1999년 스티브 잡스가 고사 직전의 애플을 아이맥(iMac)으로 기사회생 시킨 후, 후속 프로젝트로 ‘아이팟’(iPod)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MP3의 유행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들으면서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오디오의 특성, 즉 수용자의 주의(注意, attention)를 다른 행위와 나눠서 쓸 수 있기 때문에 타매체 혹은 행위와 경쟁하지 않고도 수용자의 시간을 점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수용자의 주의(attention) 혹은 시간을 얼마나 많이 점유하느냐가 결국 미디어산업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오디오는 다른 매체와 달리 주의를 분할해서 점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 비교우위가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소리매체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이런 통찰력은 애플의 DNA에 각인되어 음악재생기기인 아이팟(iPod), 콘텐트 관리 도구인 아이튠즈(iTunes), 주문형(on-demand) 오디오 이용 플랫폼인 팟캐스트, 스트리밍라디오인 아이튠즈 라디오, 음성 기반 입출력 소프트웨어 시리, 자동차OS인 카플레이로 이어져 왔습니다.

▲ 뉴욕국제모터쇼에 등장한 2015년 출시 예정 현대 소나타의 Carplay 화면 (출처: 9TO5Mac.com)
라디오의 비교우위,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근본부터 다시 따져야

애플 이야기로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결국 하고픈 주장은 ‘실시간 소리 매체 라디오의 비교우위를 다시 보자’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 격언처럼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남이 따라하기 어려운 것’을 파악하자는 것이죠. 대학교 방송원론 교재에 언급되는 라디오의 특성들(즉시성, 병행성, 이동성, 제작편의성, 친밀성, 쌍방향성, 묘사성 등)도 의미가 있지만, 라디오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절대적 특성’보다 ‘상대적 비교우위’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양한 매체가 수용자의 한정된 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현실에서 '라디오를 듣는 것이 다른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보다 뭐가 더 좋은지?'를 끊임없이 설득해야 하니까요.

또 이 질문에는 반드시 요즘이라는 시점이 붙어야 합니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이동성이나 즉시성은 더 이상 라디오만의 특성이 아닙니다. (사건 현장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유스트림으로 시청하면 바로 동영상 현장 중계가 되니까요) 병행성은? 동영상 틀어놓고 검색하면서 문자 보내는 요즘 세대들에겐 라디오만이 멀티태스킹 매체가 아닙니다. 이렇듯 요즘이라는 상황을 추가하면 라디오의 특성이라고 언급되던 것들이 머쓱해지는 게 많습니다. 나만의 특성이 될 수 없는 것들은 과감히 제쳐두고, 남들이 대신하기 어려운 비교우위가 뭔지부터 다시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Eyes Free, Music Chemistry, Story happening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주목해야할 라디오의 비교우위는 무엇일까요? 라디오의 본질이면서도 다른 매체가 따라하기 힘든 것, 저는 세 개의 표현으로 압축해보았습니다.

그 첫 번째는 'Eyes Free', 즉 애플 이야기로 언급한 개념입니다. 눈을 자유롭게 해서 행동과 사고의 제약을 풀어주는 것이지요. 콘텐츠를 즐기면서도 다른 일을 제대로, 특히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운전 중에 DMB영상을 보면 사고가 나지만, 라디오는 들을 수 있지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걷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라디오를 들으면서 걷는 것은(볼륨만 적당하다면) 허용되는 습관입니다.

눈이 자유로우면 손을 비롯한 다른 신체기관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고, 일상의 단순한 작업들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바쁜 생활인들의 시간을 아껴주는데는 이만한 매체가 없지요. 기존에 라디오의 특성으로 강조되었던 '병행성'이라는 말은 단순히 멀티태스킹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라디오로 가능해지는 병행성이 타매체를 통한 멀티태스킹과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눈과 손을 자유롭게 하여 안전한 멀티태스킹을 가능하게 한다'까지 나아가야 비교우위가 됩니다. 한편 ‘Eyes Free’ 개념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장점은 사고(thinking)가 특정한 영상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라디오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의적이고 건강한 매체라는 점도 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라디오의 비교우위 두 번째는 음악의 화학작용 ‘Music Chemistry’로 써봤습니다. 라디오에서 음악은, 진행자(Personality)의 개성 있는 멘트와 수용자의 현실이 화학적으로 어우러져서 들려집니다. 애뜻한 이별 사연 뒤에 이어지는 <내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를 들어보셨나요? DJ 멘트에 버무려지고, 수많은 이들이 동시에 공유하는 라디오 음악은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 청취자 각자의 경험으로 증폭되어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하고, 녹여버리기도 하고, 기화시키기도 하지요. 뮤직비디오처럼 배우들이 연기하는 고정된 스토리에 음악이 갇히지 않습니다. 고도의 알고리즘을 도입하여 개인화 큐레이션 선곡까지 해주는 스트리밍라디오도 따라잡기 힘든 부분입니다.

라디오의 세 번째 비교우위는 ‘Story Happenin’입니다. “이야기 혹은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지요. 녹음할 때도 있지만, 라디오는 생방송이 기본입니다. 라디오드라마나 꽁트를 제외한다면, 사전에 완성된 대본이 아니라 화두를 던지는 구성 원고로 큰 흐름만 잡은 상태에서 청취자의 다양한 피드백이 섞여 들어갑니다. 이런 제작 방식으로 인해 방송 전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다양한 얘깃거리와 사건들이 방송 중에 발생합니다. 다소의 과장을 허락한다면, TV는 스토리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사전 제작하고, 라디오는 방송이 끝나야 스토리가 완결됩니다. 매일 매일이 리얼리티쇼지요. 스토리 전개에 대한 기대, 의외의 사건이 주는 놀라움, 이들이 반복되며 만들어 내는 긴장감. 이것이 라디오 생방송만의 묘미입니다.

'Eyes Free', 'Music Chemistry', 'Story Happening’. 이 세 가지가 2014년 11월 현재도 라디오가 타매체에 비해 우월하게 구사할 수 있는 비교우위라 감히 주장해봅니다. 강력한 신규 매체가 압도하는 요즘에도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라디오 콘텐트는 모두 위 세 가지 요소에 충실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라디오업계에선 청취율과 매출 경쟁에 쫓겨 본질과 비교우위를 망각하는 조급증이 엿보입니다.

▲ 임재윤 MBC PD
그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라디오를 접한 젊은 청취자들은 라디오가 뭐가 다른지, 왜 좋은지 깨달을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무한도전 라디오 특집’ 같은 외부 부양 효과로 라디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더라도, 프로그램에서 라디오의 본질적인 맛을 느끼지 못한다면 결국 애청자로 남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 당장 어떤 아이돌을 섭외해서 보이는 라디오로 노출할지 고민하기 전에, 내가 매일 힘겹게 돌리고 있는 이 쳇바퀴가 라디오의 본질적 비교우위에서 이탈하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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