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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조정·재정제도·방송유지 재개명령 등 방송법 개정…지상파 “규제기관의 방송 압력 도구 우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가 지상파와 유료방송 사이에 재송신 분쟁이 발생할 경우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18일 의결했다. 이날 의결한 방송법 개정안은 재송신료 협상을 방통위가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재정제도까지 포함하고 있어 사업자 당사자 간 계약에 규제 기관이 개입해 방송사업자의 영업권을 침해한다는 지적과 함께, 방송에 대한 또 하나의 압력의 도구로 악용될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방통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직권조정 △재정제도 △방송유지·재개명령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직권조정 제도는 재송신 등 협상 과정에서 사업자들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방송중단 등 시청권 침해가 예상되는 경우, 방통위가 직권으로 방송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단, 분조위의 조정안을 어느 한 쪽이라도 수용하지 않을 경우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재정제도는 방통위가 직접 재송신료 협상을 조정하는 것으로, 사실상 준사법적인 재판절차와 마찬가지다. 방송 유지·재개 명령권은 방송사업자 간 재송신 협상 불발에 따라 방송 송출이 중단될 경우(블랙아웃) 방통위가 30일 내 기간을 정해 방송의 재개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다.

논란의 핵심은 재정제도로, 방통위는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아시안게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축구 국가대표 출전 A매치 등 국민관심행사에 관한 방송프로그램의 공급·수급과 관련한 분쟁으로 재정 대상을 한정했다. 이는 야당 추천의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의 중재안에 따른 것으로 당초 이날 회의에 상정된 개정안에서 재정제도는 ‘콘텐츠 공급 및 수급에 문제가 생길 경우 시청자의 이익이 저해될 수 있는 방송’ 등으로 적용 대상이 더 넓었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노컷뉴스
그러나 재정제도 도입 자체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자칫 언론으로서의 방송의 자유를 행정기관인 방통위가 제약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당장 이날 회의에서 여권 추천의 허원제 부위원장은 “재정제도는 (재송신료 협상 등에 있어) 방송사업자 간 이해가 엇갈릴 경우 방통위가 이를 조정하겠다는 것인데, 사실상 법원 판결과 같은 효력인 만큼 방송사에 대해 강력한 구속력을 띠게 된다”고 지적했다.

허 부위원장은 “문제는 방통위는 중앙행정기관이라는 점”이라며 “행정기관은 언론의 자유를 사전에 제한할 수 없고, 이는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전 검열에 해당하는 것으로, 방송에 대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칼자루를 하나 더 쥐는 결과”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직권조정과 방송유지·재개명령만으로도 시청권 보호는 충분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허 부위원장은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재송신 문제를 놓고 갈등할 때 방통위가 30일 내 기간을 정해 방송유지·재개명령만 해도 국민의 시청권은 보호할 수 있고, 재송신료 문제에 대해선 법원에서 판단하면 될 일”이라며 “재정제도는 방통위의 과욕이자 독소조항”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허 부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방송법 개정을 밀어붙이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반발하면서 퇴장했다.

지상파 방송들도 정부가 재송신 협상에 개입하고 재송신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할 경우 유료방송 측의 협상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유료방송들은 지상파 방송의 저작권을 인정한 법원 판결 이후 재송신 대가를 지불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상파 유료화” 등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모임인 한국방송협회는 “직권조정, 재정제도, 방송유지·재개명령 등의 유료방송사업자들만이 적극 찬성하는 악성 개정안”이라며 “악성 방송법 개정으로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사업자 간 협상 과정에는 성실히 임할 필요가 없고 규제기관에만 기대면 모든 사안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협회는 이날 방통위 회의 직후 발표한 긴급 성명에서 “행정기관 방통위는 응당 방송 산업 전체의 미래를 걱정하고, 방송 시장 전체가 성장하는 제도 마련에 힘써야지 과분한 사법적 권력을 누리려 시도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직권조정, 재정제도, 방송유지․재개 명령권’ 도입에 대한 방통위의 이날 의결은 건전한 재송신 거래 질서를 훼손하고, 지상파 방송의 콘텐츠 경쟁력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9개 지역민방으로 구성된 한국지역민영방송협회도 “방통위는 협상 결렬에 따른 방송중단 등의 파행을 막아 시청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민간의 협상권을 정부가 빼앗아 가겠다는 것”이라며 “서로 입장이 다른 당사자가 시장경제와 자유계약 원칙에 입각해 협상하는 과정에서 자율이 아닌 법에 의한 강제 조정을 한다면 누구도 성실히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최성준 위원장은 “재정신청을 한다고 하더라도 방통위가 어떠한 결론을 바로 내리는 게 아니라, 방통위가 개입할 사안인지를 먼저 판단해 해당하지 않는다면 조정신청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고, 상당한 시간을 들여 관계자들의 합의를 유도하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어느 쪽이든 당사자가 방통위 재정에 따른 분쟁 해결을 원치 않는다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이때 재정절차는 중지된다. 또 당사자가 60일 내로 소송을 제기하면 방통위 결정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며 재정제도에 대한 안팎의 우려를 ‘기우’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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