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군소방송 ‘정글’로 던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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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연구 초안에 결합판매 인센티브 전환 일몰제 검토 포함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가 발주한 ‘지역중소방송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송광고지원 방안 연구’ 초안에 결합판매 지원 방식을 인센티브제로 바꿔 지역중소방송사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EBS를 결합판매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이 담긴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방통위는 “정책연구 초안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지역·중소방송사에선 결합판매 제도 ‘개악’ 수순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방통위는 방송광고 시장의 침체로 결합판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따라 지난 4월 지역중소방송 광고지원과 관련한 정책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를 맡은 미디어미래연구소는 업계 의견수렴을 거쳐 내달까지 최종보고서를 방통위에 제출할 예정이다.

결합판매는 KBS와 MBC, SBS의 방송광고를 판매하는 미디어렙사가 이들 방송사와 지역중소방송사의 광고를 묶어 판매하는 제도로, 방송의 다양성과 취약매체 보호 등을 목적으로 마련됐다. 이에 따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이하 코바코)와 미디어크리에이트는 지역MBC, 지역 민영방송사, EBS, CBS 등 40개 방송사에 최근 5년동안의 매출을 기준으로 결합판매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지상파의 광고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지상파 3사와 지역중소방송 양쪽 모두 결합판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지상파 3사와 광고주들은 ‘끼워팔기’ 방식인 결합판매가 부당하다는 문제제기를 계속 해왔다. 지역중소방송사에선 결합판매 비율 산정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지원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노컷뉴스
이해관계가 복잡한 결합판매 제도에 대해 보고서 초안은 군소방송에 대한 지원보다는 경쟁유도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지적이다. 지난 21일 방통위 방송광고균형발전위원회(이하 균발위)가 보고서 초안에 대한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지역 중소 방송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균발위원들의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한 균발위원은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책임자는 어떤 방송사에도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개선안을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지역중소방송 지원에선 기계적인 중립보다는 형편이 어려운 방송사를 더욱 배려하는 쪽으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보고서 초안에는 결합판매 방식을 인센티브로 전환하는 안이 제도 개선 방안의 하나로 제시됐다. ‘무임승차’와 ‘도덕적 해이’를 현행 광고제도의 문제점으로 들면서 지역중소방송사의 자체 제작 비율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검토해봐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지역과 중소방송사에선 ‘잘못된 처방’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지역민영방송 관계자는 “매체마다 처한 환경과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자체 제작 비율이 높다고 해서 지역성과 프로그램의 질이 높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자체 제작 비율은 규제 기준으로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기준으로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BS는 보고서에 결합판매 지원대상에서 EBS를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EBS 관계자는 “프라임 시간대에도 자체판매가 아려운데 결합판매 대상에서 해제하면 EBS는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라며 “교재 판매 등의 부대사업 수입이 있다고는 하지만 예년과 비교해 수익이 감소하고 있고 독자적으로 방송공고를 판매할 여건이 아직은 안 된다”고 말했다.

정책연구를 맡은 연구진은 미디어렙별로 결합판매 지원 대상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선 현재의 EBS를 지원대상에서 재외하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바코는 현재 EBS 광고를 KBS 2TV에 묶어 판매하고 있다. EBS가 지난해 거둔 광고 매출 400억원 중에 194억원이 결합판매로 들어온 수익이었다.

보고서 초안에는 장기적으로 결합판매 제도 일몰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정책연구 책임자인 이종관 미디어미래연구소 정책실장은 “키스테이션(지상파 3사)의 광고가 잘 팔려야 지역·중소방송에도 혜택이 돌아가는데 지금 광고 상황을 보면 결합판매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며 “지역·중소방송사를 방치하겠다는 게 아니라 큰 위기가 오기 전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파 중간광고·광고총량제 허용 등 광고 규제완화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방통위가 군소방송을 희생양으로 삼아 광고시장의 숨통을 틔우려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한 지역방송 관계자는 “종편에는 온갖 특혜를 주고 지상파에도 중간광고와 광고총량제 등을 허용하려는 방통위가 지역방송을 주제로 한 정책 연구에서도 지역방송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언론의 다양성과 지역방송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경쟁력 강화도 좋지만 그에 앞서 명확한 공적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아직 최종보고서도 나오지 않은 단계”라며 “내년 7월로 예정된 결합판매 비율 고시에 앞서 결합판매제도에 대해 전반적인 검토를 해야 하지만 정책적으로 어떤 것도 결정 된 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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