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판→제3자 고발→검경 수사의 패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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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명예훼손 고발 사례 발표회…“명예훼손, 친고죄로”

“최근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 기소 이후 박근혜 정부의 흐름은 대통령을 비난하면 제3자가 대신 고발하고 이를 수사기관이 사법처리 하는 패턴으로 전환되는 인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닭’에 비유한 만평으로 대통령의 인격을 모독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한 보수 인사에 의해 고발당한 손문상 <프레시안> 화백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명예훼손 고발 사례 발표회’에서 한 말이다. 이날 토론회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유승희·노웅래·문병호·배재정 의원 공동주최로 열렸다.

손 화백의 이 같은 발언의 배경엔 검찰이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긴 이후 <미디어오늘> 등 관련 내용을 보도한 언론, 그리고 이에 대해 발언하는 야당 국회의원 등까지 무더기로 고발당하고 있는 현실이 있다. 그뿐 아니라 TV토론에서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 발언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시사평론가와 언론인, 박 대통령 풍자 그림을 거리에 뿌린 화가 등이 경찰 조사를 받거나 연행되는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유승희·노웅래·문병호·배재정 의원 주최로 25일 국회에서 ‘박근혜 정부의 명예훼손 고발 사례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PD저널
신학림 <미디어오늘> 사장은 이날 발표회에서 “공인 중 공인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중요한 보도 대상”이라며 “더구나 세월호 참사는 4월 16일에 발생했지만 현재도 진행 중인 사안으로 당연히 보도해야 하는 것으로,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언론 보도는 지극히 정당하고 정상적인 언론행위”라고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어 신 사장은 “<미디어오늘>에 대한 고발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기 검열의 효과를 부정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처벌 여부와 상관없이 (당사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 평론가는 지난 6월 20일 MBC에서 방송된 ‘긴급대담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 TV토론에 출연해 문 후보자의 교회강연 발언에 대해 ‘친일사관’ 등의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유 평론가는 “제3자가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하고 검경이 수사에 들어가면 처벌 여부를 떠나 그 과정 자체가 피곤한 것인 만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기본적 흐름은 달라지지 않아도 특정 표현과 용어 등을 사용함에 있어 자신의 의사가 아닌 외부의 시선에 맞춘 감시와 통제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련의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 형법 제307조 2항(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발표회에서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법 제307조 2항에서 징역형을 제거하고 (명예훼손을) 친고죄로 바꿀 필요가 있다”며 “친고죄로 정할 경우 최소한 공적 인물이나 국가기관의 평판을 저해했다고 검찰이 기소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승희 의원은 명예훼손죄의 징역형을 폐지하고 벌금의 상한을(200만원) 낮춤과 동시에 명예훼손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둔 상태다. 개정안은 또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삭제하고,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경우에도 허위임을 알면서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경우에 한해 처벌토록 하고 있으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도 삭제했다. 

▲ 검찰이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넘긴 이후 이를 비판한 언론들이 잇달아 고발을 당했다. 사진은 산케이신문 서울지국 ⓒ뉴스1


 

▲ 신학림 <미디어오늘> 사장 ⓒPD저널
대통령은 공인 중의 공인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든 언론의 가장 중요한 보도 대상에 해당하고, 동시에 모든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관심사 중 하나다. 즉, 대통령의 일정은 글자 그대로 국가 안보나 경호 상의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공개하는 옳다. 단, 경호 상의 이유 등으로 사전에 일정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사후에는 가능한 범위까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공개함이 마땅하다.

더구나 세월호 침몰 직후 대통령이 구명조끼 운운하며 당시 참사 현장의 상황과 전혀 동떨어진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모른다”고 답변한 것은 보통 중차대한 사안이 아니다. (그렇기에) 언론사를 자처하는 이상, 문제의 7시간에 대해 보도하고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건 지극히 정당하다. 또한 <미디어오늘>은 다른 언론사의 보도 태도를 검증·비판하는 게 주된 임무 중의 하나인 만큼, 다른 언론사들이 이 사안을 보도하는 내용, 방식, 태도 등에 대한 보도도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한 이후 검찰 등 수사당국이 이른바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시민들과 언론사들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면,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검찰에 부메랑이 돼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 손문상 <프레시안> 화백 “내 만평이 섬뜩하다고? 검열·통제의 내면화는 아닐지”

▲ 손문상 <프레시안> 화백 ⓒPD저널
시사만화를 25년 가까이 그려 오면서 종종 내 만평이 섬뜩하다는 얘길 듣는다. 겉으로는 아직까지 다분히 유교적 전통과 정서가 작동하는 우리사회 저변을 반영한 의사 표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윤리적 금기나 인간적 예의를 걷어내면 그 본질에서 ‘검열과 통제’가 뿌리 깊게 내면화된 의견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현재 시사만화의 영역에서만 보자면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한국 사회는 이런 보수적 정서에 격렬하게 반하거나 사회적 논쟁의 여파가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여론이 일어나는 사회라 볼 수 없다. 이는 역설적으로 아직까지도 일상적 ‘검열과 통제’의 논리에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길들여져 왔다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영국 <가디언>의 만평가인 스티브 벨은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당시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수술대 위 누워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는 모습을 그렸다. 그 옆에는 분홍색 콘돔을 쓰고 있는 캐머런 총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 만평을 두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스티브 벨을 형사고발하지 않았다. 한국의 경우라면 어땠을까.

표현의 자유(의 가치)가 한국 사회보다 영국에서 더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사만화는 사회의 표현의 자유와 공론의 장을 확대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위한 경계에 서길 마다하지 않는 장르다. 그런 경계의 길을 좀 더 열심히 걸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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