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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윤 PD의 포스트 라디오 ③]

 What’s Behind the Great Podcast Renaissance?

여느 해처럼 라디오에서 ‘When October goes’와 ‘시월의 마지막 밤’이 번갈아 나오던 지난 10월 30일, <뉴욕매거진>에 위 제목의 기사가 떴습니다. ‘거대한 팟캐스트 르네상스, 그 배경은 뭘까?’ (☞ 원문 보기) ‘르네상스’란 표현도 버거운데 ‘great’까지 붙은 것을 보니 요즘 미국의 팟캐스트 붐이 만만치 않나 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이팟 출시 이후 성장을 거듭하다가 2009~2010년을 정점으로 시들했던 팟캐스트가 최근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몰렸던 초기와 달리 프로페셔널들이 다양한 장르의 고품질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고, 제작비는 적은 반면 높은 CPM(Cost Per Mile, 1000회 노출당 과금)의 광고 시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차량 내에서 블루투스를 통한 청취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블루투스 기능을 통해 스마트폰을 자동차 스피커에 물려서 듣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팟캐스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겁니다. 수십 년 전 컬러TV가 등장해 비디오 스타가 라디오 스타를 죽이려던 찰나, 그를 극적으로 구해주었던 자동차가 이제 더 이상 라디오의 독점적 영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장 초보적 형태의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인 ‘블루투스 연결’의 영향이 이 정도라면, 본격적인 커넥티드 카 단계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아마존이 가정에 들여놓으려는 야심작, 아마존 에코

▲ 출처: 아마존 웹사이트 http://www.amazon.com/oc/echo)

<뉴욕매거진>의 팟캐스트 기사를 접한 지 한 주 뒤, 해외 직구를 하러 아마존 웹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시꺼먼 원통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아마존 에코(Amazon Echo)’. 요것이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궁금하여 사진 왼쪽의 ‘watch video’를 클릭했더니 30초 만에 궁금증이 풀리더군요. 음성으로 묻고 답하는 개인비서였습니다(‘엘렉사’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궁금한 것 물어보면 인터넷 검색해서 대답하고, 식재료 떨어졌다고 하면 아마존 장바구니에 담아주고, 노래나 라디오채널도 들려줍니다(‘Tunein.com’에 들어있는 국내 채널들도 들을 수 있습니다). 특수 마이크 7개를 원형으로 배치, 집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해도 알아듣고, 음악이 틀어져 있는 상태에서도 사람 목소리를 잡아낸답니다.

이 제품을 소개하는 국내 기사들에서 강조하는 것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이지만, 라디오를 업으로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집안(가정)의 소리를 장악’하는 기계로 보입니다. 부엌일을 하다가도, 소파에 파묻혀 있더라도 “엘렉사, 비틀즈 음악 중에 ‘노르웨이의 숲’에 자주 나오는 그 음악 좀 틀어줘”, “엘렉사, 오늘 삼성SDS 관련 주식 뉴스 좀 들려줘”하면 바로 적합한 콘텐츠를 찾아서 들려줄 텐데 누가 굳이 번거롭게 일방적으로 편성된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FM라디오로 다가갈까요? 미국인들의 손마다 킨들을 쥐여준 아마존이라면, 에코가 미국 가정의 FM라디오를 밀어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긴 이미 많은 가정에서 FM라디오들이 블루투스 스피커에 자리를 내주었지만요.

섣불리 보면 위기, 뜯어보면 기회

라디오를 듣는 공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고정된 공간(집이나 일터), 움직이는 공간(자동차), 움직이는 나만의 공간(이어폰). 블루투스 스피커나 에코 같은 음성 비서는 ‘고정된 공간’에서, 커넥티드카는 ‘움직이는 공간’에서, 스마트폰은 ‘움직이는 나만의 공간’에서 라디오를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위 문장은 틀렸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라디오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FM라디오’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죠. FM라디오를 밀어내는 것도 소리 콘텐츠이고, 이 소리 콘텐츠는 FM라디오가 제공하는 실시간 일방향 콘텐츠뿐 아니라 팟캐스트, 음악 스트리밍, 뉴스 리딩 서비스 등 좀 더 풍부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디오=FM’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위기지만, 콘텐츠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기술 환경은 기회로 가득합니다.

창업 생태계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는 미국에서는 실제로 새로운 소리 매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미 산업을 형성한 음원서비스(Spotify, Pandora)나 팟캐스트 제작에서부터, 뛰어난 큐레이션 기능을 보여주는 팟캐스트앱(Stitcher), 선별된 뉴스를 성우가 읽어주는 뉴스 리딩앱(Umano) 등 일반화된 서비스도 많습니다. 커넥티드 카, 웨어러블 등 시각의 자유가 중요한 디바이스들이 주목받음에 따라 소리매체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음성광고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 늘어납니다. 올 초엔 애플이 아이튠즈 라디오의 음성광고를 위해 기존 라디오업계의 광고 임원을 스카우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리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는 라디오 밖 움직임과는 달리, 기존 라디오업계는 ‘FM의 코드커팅(cord cutting)’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기회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스트리밍 사용에 따른 데이터요금 문제나 빠른 배터리 방전 현상 등을 강조하며 지상파 방송망의 기술적 우위를 강변하기도 합니다. 오늘 당장은 일리 있게 들리지만, 이미 ‘무어의 법칙’을 따라가고 있는 이동통신망의 현란한 전송 용량 확대를 고려한다면 궁색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미 오디오 스트리밍의 수십 배에 달하는 HD영상 스트리밍까지 겁 없이 쓰는 세대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러나 라디오업계가 공세적으로 소리매체의 새 기회를 발굴하기에는, 수십 년간 안정된 수익을 창출해주던 기존 플랫폼과 수익모델에 대한 미련이 너무 커 보입니다.

독과점의 향수는 이제 그만! ‘생각의 족쇄’부터 풀어야

불과 10여 년 전까지, 지난 백여 년 동안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오디오 콘텐츠는 ‘실시간 동시전송(라디오 방송)’과 ‘개인 소유 음악(LP나 CD)’, 딱 두 가지 형태만 있었습니다(당시 산업적 의미가 미미했던 스트리밍이나 오디오북을 제외한다면). 전자는 채널 주파수를 국가로부터 취득하여 광고로 운영하는 허가사업이었고, 후자는 음반을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전자는 규제를 받는 대신 경쟁이 제한된 독과점적 위치를 보장받았고, 후자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거대배급사들이 독과점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전자와 후자는 ‘프로모션’이란 고리로 연결되며 각자의 위치를 다져주기도 했지요.

하지만 인터넷,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스마트기술로 인해 2014년 말 현재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오디오 콘텐츠는 다양해졌습니다. 기존의 ‘실시간 동시전송’과 ‘개인 소유 음악’에 더해서 ‘소유하지 않고 원할 때 당겨듣는 음악(on-demand music)’, ‘원할 때 당겨 듣는 토크(podcast)’, ‘텍스트를 당장 읽어주는 서비스(TTS)’까지 그 종류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 임재윤 MBC PD
더불어 오디오 콘텐츠를 이용하는 방식 또한 큐레이션 알고리즘 등에 의해 개인화・지능화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기존 양대 소리매체 산업은 독과점 기반을 잃고 있지요. 특히 한국의 FM라디오 산업은 ‘경쟁 제한’의 이점은 퇴색된 채 무거운 규제만 짊어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특혜’로 여겼던 방송 허가가 ‘족쇄’로 느껴질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자들과 대적하기 위해 ‘제도적 족쇄’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의 통찰력을 제한하고 있는 ‘생각의 족쇄’를 먼저 푸는 것이 기회를 보기 위한 첫걸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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