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구 “MBC는 국민이 주인인, 국민의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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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일 파업 손배소 2심 증인 출석…2012년 파업 상황 증언

“국민의 방송이어야 할 MBC가 자꾸 정권의 눈치를 보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건 안 된다,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한 달 정도 고심을 하다가 2월 말 파업에 동참하게 됐다.”(최일구 전 MBC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 2012년 170일 파업 동참 이유에 대해)

지난 2012년 170일 파업에 동참하기 위해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를 박차고 거리로 나온 최일구 전 MBC 앵커. 비를 맞으며 서울 한복판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공정방송’을 외치는 200여명의 후배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최일구 전 앵커. 파업 이후 정직과 교육발령 끝에 지난 2013년 2월 8일 사표를 던지고 28년 MBC 생활을 마감한 그가 다시 한 번 후배들을 위해 법정에 섰다.

▲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최일구 MBC앵커가 지난 2012년 3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방송3사 공동파업 선포식' 촛불집회에서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다. ⓒ노컷뉴스
MBC가 170일 파업 이후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95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이 12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서관 제308호 법정에서 열렸다. 지난 1월 23일 서울남부지법 제15민사부(재판장 유승룡)가 “(MBC노조) 파업의 위법성에 대한 증명 책임은 원고(MBC)에게 있는데 제출한 자료로는 파업의 위법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한 데 따른 MBC의 항소로 진행되고 있는 재판이다.

이날 공판에는 노조 측 증인으로 최일구 전 앵커와 박성호 전 MBC 기자협회장이, 사측 증인으로는 이용안 당시 영상취재2부장이 출석했다. 방송 카메라 앞이 아닌 법정에 선 최 전 앵커는 2012년 파업과 파업 이후 MBC 현실에 대해 “비탄에 잠긴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다음은 피고 측 변호인과 최일구 전 앵커 간 이루어진 신문 내용.

“2012년 3월 5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증인(최일구 앵커)이 흘린 눈물이 ‘최일구의 눈물’이라고 언론에 보도됐다. 그때 당시 상황은 어떠했나?”(변호사)

“그날 저녁, 종로 보신각에서 야간 집회가 있어서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단상에 올라갔는데 우의를 입은 후배들 200명 정도가 빗속에 서 있는 모습을 봤다. 내가 ‘너희들 여기 와서 뭐하고 있는 거냐. 이 시간이면 보도국에서 기사 쓰고 있고, 9시 <뉴스데스크>를 준비해야 하는데…’라고 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상황이 너무 비탄스러워서 눈물을 흘렸다.”(최일구)

“2012년 6월 4일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증인을 시작으로 150여명의 MBC 기자들이 차례로 공정방송을 외치다 해고된 이용마, 박성호 기자의 복직을 요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했다. 공교롭게도 증인은 1980년 5월 이른바 ‘서울의 봄’ 당시 경희대에서 스크럼을 짜고 광화문에서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1987년 6월 항쟁 때는 중부경찰서 출입기자로 광화문 현장을 취재했다. 이게(1인 시위)는 세 번째로 광화문 현장에 선 것이었다.”(변호사)

▲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최일구 MBC앵커가 지난 2012년 3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방송3사 공동파업 선포식' 촛불집회에서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다. ⓒ노컷뉴스
“쉰 살이 넘어서까지도 내가 그런 현장에 서 있다는 게 서러웠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어느 세월에 이뤄질 것인지 너무 안타까웠다. 특히나 내가 파업에 동참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파업과 함께 박성호·이용마 두 후배를 회사 쪽에서 해고시켜버리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MBC에서 경험한 숱한 파업 동안) 그런 일은 없었다. 다 선후배 간인데, 이게 인간으로서 할 일인가. 박성호·이용마 기자를 파업 초기에 해고시켰던 것에 가장 격분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고심 끝에 앵커직을 내려놓고 파업에 동참했다.”(최일구)

“MBC 구성원들에게 공정방송이라는 것은 공허한 구호가 아니다.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근로조건이다. 2012년 MBC 단체협약에 명시된 ‘공정방송’ 실현의 주체는 회사와 노조다. MBC 구성원들에게 단체협약, 그리고 단체협약에 나온 공정방송은 어떤 의미인가?”(변호사)

“개인으로는 불공정 보도 지시에 저항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단체협약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단체협약은) 회사 측의 부당한 지시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조항이자 덕목이다.”(최일구)

“증인(최일구)이 27년간 청춘을 같이 했던 공영방송 MBC. 2012년 파업 당시와 파업 이후 MBC는 어떻게 달라졌는가?”(변호사)

“저 슬라이드를 보니까 JTBC 손석희 앵커가 나온다. 그리고 지금 밖에서 휴대폰으로 다음과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를 보니까 JTBC 뉴스가 1등이고 손석희 앵커가 2등이다. -이날 공판에서 피고 측 변호인은 파업 이후 MBC를 떠난 이들의 모습이 담긴 슬라이드를 증거로 제출했다. 이 슬라이드에는 손석희 전 앵커, 오상진 전 아나운서 등의 모습이 있었다- 파업 이전에 바로 MBC <뉴스데스크>가 이 같은 사회적 공론장의 역할을 해왔다. 그만큼 MBC 뉴스는 전 국민 사이에서 신뢰도가 높았던 뉴스였다. 그런 것들이 2012년 파업 이후 완전히 소멸되고 있다.

나는 지금 MBC 밖에서 야인으로 살고 있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MBC 뉴스를 본다는 사람이 없다. 나 조차도 지금 MBC 뉴스를 안 보고 있다. 내가 청춘을 바쳤고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 있는 MBC가 왜 이렇게 망가져 있는지…. 정말 밖에 있으면서도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MBC의 주인은 경영진이 아니다. MBC의 주인은 국민이어야 한다. 국민이 맞다. 하루빨리 MBC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학수고대 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최일구)

MBC가 항소한 195억 손해배상 청구소송 2심 증인신문은 “2012년 170일 파업이 ‘신뢰도 1위’를 기록했던, 국민이 주인이었던 공영방송 MBC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었느냐”는 피고 측 변호인의 질문에 최일구 전 앵커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당초 예정됐던 원고(MBC) 측 변호인의 반대신문과 또 다른 피고 측 증인으로 출석한 박성호 전 MBC기자협회장의 증인신문은 앞선 사측 증인 신문이 길어지며 다음 변론기일로 미뤄지게 됐다.

▲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이 지난 2012년 5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사옥에서 열린 ‘파업 100일 문화제’에서 공정방송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100배를 올리고 있다. ⓒ언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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