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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미국을 이야기하는 이유

|contsmark0|올해 5·18 특집 소재로 이른바 광주항쟁의 3대 미제(未濟) 가운데 하나라는 미국의 책임문제를 택한 것은 ‘분위기가 무르익어서’라는 게 적절한 답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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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5·18, 촛불시위 그리고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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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작년 촛불시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파병을 둘러싼 대립, 그리고 우연찮게도 최근의 한·미 정상회담을 보는 시각까지. 또 하나는 작년 5·18 시민법정에서 엘렌 바필드(1980년 당시 주한미군 상사로 근무)가 당시 주한미군 부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폭동진압 훈련을 했다는 영상증언을 본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contsmark7|미국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는, 지금 광주(또는 호남)의 문제로 전락해 있는 5·18을 전국적, 민족적 시야에서 생각해 볼 계기가 된다는 점이었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사의 종가(宗家)이자 민족 자주화 운동의 발원지가 80년 5월임을 자연스럽게 환기하는 계기도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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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1|“그들은 우리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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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3|19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마지막 유혈진압이 있기 전 광주시내에는 “미국이 항공모함을 보내 우리 광주시민들을 구해주러 왔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고등학생들은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며 한껏 들떴다고 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미국은 광주시민의 편이 아니라 전두환 편이었다.
|contsmark14|고립무원에 처한 광주 시민들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구원의 희망, 그 미국이 ‘적진’에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확인한 이후 광주는 뼈아픈 배신감에 몸서리쳐야 했고, 광주의 진실을 알게된 광주, 부산, 서울의 많은 학생들이 미문화원을 점거하고, 불을 지르고, 반미를 외친 배경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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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8|5·18 의 사실관계규명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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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0|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든 생각은 “못할 말 없을 만큼 세상은 좋아졌지만 미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그리 진화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contsmark21|1980년 당시 이른바 미국의‘인권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는 카터정권이 한국의 민주화 요구, 특히 5월 18일 이후 광주의 민주화 요구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그 역사적 사실관계를 규명해보자는 것인데 적잖은 사람들이“그거 반미 아냐?”하는 식으로 본다거나,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위험하게’보이는 모양이었다.
|contsmark22|우리에게 미국은 싸울 수 없고 배울 것만 있는‘선진국’이기 때문일까. 이 프로그램을 위해 밟아본 그‘선진국’땅은 대국의 위상을 한껏 뽐냈다. 도시 곳곳에 조경된 나무숲, 공원의 평화는 이라크의 자욱한 포연과 도저히 겹쳐지지 않았다.
|contsmark23|다른 나라에서는 생지옥이 벌어지고 있는데 자기 나라 안에는 자유와 평화가 가득한 것이다. 약자에게도 자존이 있고 자유와 평화를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을, 자국민의 자유만큼 남들의 자유도 소중한 것을, 그런 공상은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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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드러난 미국의 공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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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9|1996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팀 셔록의 노력에 의해 79∼80년 사이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와 미국 정부 간에 오고간 비밀전문이 공개되면서 광주시민 학살에 대한 미국의 ‘공범’혐의는 사실로 드러났다.
|contsmark30|“미국이 만약 1980년 봄에 한국의 민주화를 지지했더라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10년쯤 앞서갔을 것”이라고 한 팀 셔록의 말은 참으로 쓰디쓰게 들렸다.
|contsmark31|그러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세월은 부지런히 흘러왔다. 전체의 일부지만 뚜렷한 사실관계가 드러났는데도 계속 묻어두고 갈 것인가. 80년 5월 숨져간 주검들도 그걸 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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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3|윤 행 석광주mbc 5·18 특별기획 <미국의 선택, 그 후>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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