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간접광고 규제완화 앞세워 내용심의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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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L 관련 방송법 시행령 개정 추진…시청권 등 침해 우려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한 번씩 머릿속에서 이런 안내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자, 이제는 광고타임!” 드라마를 시청할 때 특히 이런 경우가 많은데, 어느 순간 주인공을 포함한 극중 인물들이 소품으로 활용된 제품의 새로운 기능들을 줄줄 읊기 시작하는 것이다.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에서도 이런 장면이 있었는데, 유일락(고경표 분)이 스테이크용 고기를 사오자 주인공인 설내일(심은경 분)은 이를 보관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면서 해당 냉장고에 스테이크용 고기를 따로 보관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흡사 매장 직원처럼 친절하게 설명했다.

지난 2012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MBC 드라마 <보고싶다>는 주인공 한정우(박유천 분)와 이수연(윤은혜 분)이 첫눈이 내리는 날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면서 끝이 났다. 두 주인공은 결혼식의 행복한 모습을 당시 새로 나온 카메라에 담았는데, 해당 카메라에 새롭게 장착된 ‘찍어서 전송하기’ 기능까지 시연해 보였다. 제품명도 자연스레 노출했다.

▲ 2012년 방송된 MBC 드라마 <보고싶다>는 특정 제품의 기능을 주인공들이 시연하는 장면을 방송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의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MBC
허위·과장만 아니면 방송 프로그램 속 상품 기능 시연도 문제없다? 시청권·연출권 침해 우려

<보고싶다>의 해당 장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지난 2013년 3월 ‘관계자 징계 및 경고’(당시 벌점 4점, 현재는 5점)의 중징계 처분을 결정했다. 방송심의규정 제46조(광고효과) 위반이기 때문이다. 현행 방송심의규정 제46조는 동종 혹은 유사상품에 이미 일반적으로 적용돼 보편적으로 사용 등을 제외하고 ‘특정 상품의 기능 등을 구체적으로 시연하는 방식’을 금지하고 있다. 즉,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메일을 보내는 등의 보편적인 기능을 시연하는 모습은 괜찮지만, 특정 제품만이 갖고 있는 새로운 기능을 의도적으로 소개하거나 부각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처럼 극중 인물들과 방송 출연자들이 노골적으로 특정 제품의 새로운 기능을 설명하고 시연하는 방식의 간접광고(PPL)들이 아무런 규제 없이 방송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마련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간접광고 금지 항목을 ‘상품의 기능 등을 허위 또는 과장해 시연하는 경우’ 등으로 한정하면서 사실상 관련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광고규제 완화와 관련해 추진 중인 방송법 시행령을 19일 상임위원 전체회의에 보고할 예정이다. 현행법 제59조의 3(간접광고)을 개정하는 내용으로 2항 2호에서 ‘간접광고는 방송 프로그램 흐름 및 시청자의 시청 흐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방송해선 안 되는 내용으로 △해당 상품을 언급하거나 구매·이용을 권유하는 경우 △상품의 기능 등을 허위로 또는 과장하여 시연하는 경우 △그 밖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규칙으로 정하는 경우 등을 제시했다. 일련의 내용을 위반할 경우 과태료도 부과한다.

이 가운데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상품의 기능 등을 허위로 또는 과장하여 시연하고 있는 경우’다. 이는 상품의 기능이 허위 또는 과장이 아니고 드라마 등 방송 흐름에 잘 녹아들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극중 인물과 출연자 등이 제품의 기능을 시연해 보이는 장면들을 방송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관련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행령 개정 이후 방송사에 허위·과장 외 모든 기능 시연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시청권 침해다. 그렇지 않아도 2010년 간접광고 허용 이후 그에 따른 시청권 침해에 대한 지적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방심위 제재 현황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지상파 방송 3사가 간접광고로 제재를 받은 건수는 2010년 14건에서 2013년 62건으로 네 배 이상 늘었다. 전체 제재 중 비율도 2010년 5.7%에서 2013년 19.4%까지 늘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상품을 단순히 배치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넘어 기능을 시연하거나 대사를 통해 대놓고 홍보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시청자들의 불만 또한 적지 않다.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 5월 전국 만19~49세 성인남녀 9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23.1%만이 TV 프로그램 등의 간접광고가 마음에 든다고 답했다. 이 조사는 지난 2011년과 2013년에도 실시됐는데 당시 간접광고에 호감을 표시했던 응답자는 각각 39.3%, 23.1%였다. 시간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간접광고에 대한 소비자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연출권 침해에 대한 우려도 불가피하다. 일례로 드라마의 경우 간접광고 도입 이후 부족한 제작비를 메우기 위해 제작사에선 극의 전체 흐름과 상관없이 노출해야 하는 특정 브랜드나 제품들을 늘려왔다. 이는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인 동시에, PD들에겐 자신의 의지대로 작품을 연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요인이다. 그런데 금지 항목을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가능한 간접광고의 범위를 더 늘리는 방식의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PD들에게 주어진 ‘연출’에 대한 권한을 흔들 요소가 더욱 늘어나는 게 되는 것이다.

앞서 지상파 방송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한국방송협회는 지난해 11월 자율적으로 간접광고 운영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여기서도 간접광고의 자연스러운 노출 판단과 관련해 그간의 방통위·방심위 심결 사례를 고려해 판단하되 △상품의 장점을 강조하는 언급, 자막 등이 노출되는지 여부 △상품의 일반광고를 암시하는 동작, 언급 등이 노출되는지 여부 △상품의 특정 기능을 동종의 상품 시장에서 복수의 사업자가 갖고 있는지 여부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허위나 과장 문제를 떠나 특정 제품의 기능 등에 대한 노골적인 설명은 적절치 않다고 기준을 정한 것이다.

방심위 내용심의 권한 침해 우려도…광고규제 완화 수익 얻고 사실상 내용규제 강화

방통위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방송프로그램 및 시청자의 시청 흐름 방해 △상품 기능 등 허위·과장 시연 △방심위 규칙으로 정하는 사항 등의 금지 항목을 신설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일련의 내용은 사실상 내용 규제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2010년 간접광고 도입 이후 방심위는 상품의 기능 시연 등을 포함한 내용심의를, 방통위는 광고시간과 크기 등 형식과 관련한 심의를 맡아왔다.

그런데 방통위가 상품의 기능을 허위 또는 과장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방송 안에서 특정 제품의 기술 등을 홍보하는 방식의 간접광고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그간 방심위에서 맡아왔던 내용 심의의 영역역에 대해 사실상 방통위가 개입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법에서 민간 독립 기구로 성격을 규정한 방심위가 내용 심의를 담당해온 배경엔 표현의 자유가 있다.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은 방송 제작의 자유, 나아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영역인 만큼 정부가 개입할 경우 검열·통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통위가 방송법 시행령 개정으로 간접광고 내용 심의에 사실상 개입하고 있는 모양새다.

더구나 금지 항목 중엔 ‘방심위 규칙으로 정하는 사항’, 다시 말해 간접광고와 관련한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하는 사항까지도 포함돼 있다. 간접광고에 한정한다 하더라도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 심의하기 위한 기준인 심의규정 위반 사항에 대해 법에 따른 과태료 부과가 가능해진다면, 방송사들은 광고 규제 완화와 내용 규제 강화를 맞바꾸는 모양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칫 방통위가 과태료를 앞세워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을 ‘핸들링’ 할 여지를 남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 또한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간접광고 규제 완화나 광고총량제 등 현재 방통위에서 추진하는 내용들은 모두 시청권과 밀접하게 관련한 문제인데 정작 시청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는 절차는 없다”며 “시청자를 고립시키는 작금의 규제 완화 논의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편 일련의 내용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방통위가 입법예고 하면 이후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차관회의, 국무회의 심사 등의 절차를 거쳐 공포·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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