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판소리, 현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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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판소리, 현실이 되다
KBS 대기획 <시대의 작창 판소리>
  • 손성배 KBS 전주 PD
  • 승인 2015.01.02 2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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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간 20개월, 촬영 스태프와 인원만 1,800여명에 이르는 프로젝트.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판소리뮤직비디오의 장점만 융합해야 내야 하는 작업. 2011년 KBS대기획 <동아시아생명대탐사 아무르>를 제작했을 때 경험을 돌아보면 가야 할 과정, 넘어야 할 산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KBS대기획 <시대의 작창 판소리>의 기획은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시작된다. 2012년도 미국 연수 중 만난 친구가 동양의 독특한 음악 형태라고 들려 준 노래, 그것은 놀랍게도 판소리였다. 그 친구는 소리꾼 한 명이 북 하나의 소리에 맞춰 인간이 낼 수 있는 한계치의 음을 구사하는 것에 대해 매우 흥미로워 했고, 소리꾼이 읊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다. 미국인에게도 신비로웠던 동양의 음악 그것은 바로 판소리였다. 가장 가깝게 접하면서도 그 가치를 알지 못했던 판소리. 판소리뮤직다큐드라마 KBS대기획 <시대의 작창 판소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 KBS 1TV <시대의 작창 판소리> 포스터. ⓒKBS
판소리에 대한 자료조사가 시작됐다. 조사 결과 우리가 판소리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판소리는 지루하다. 그리고 잘 들리지 않아 사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과 판소리의 사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이 대부분이었다. 먼저 판소리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는 작업, 그리고 외국인이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판소리의 예술성을 표현해야 하는 작업 그것이 바로 판소리뮤직다큐드라마가 해야 할 일이었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우리에게 친숙한 춘향가와 흥부가를 먼저 영상화하기로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춘향가는 이몽룡과 춘향의 사랑이야기, 흥부가는 형제우애를 다룬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판소리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조선 후기의 사회상과 시대정신이 살아 있는 한 편의 서사시다.

춘향가에는 신분제가 흔들리던 조선 후기, 신분차별 없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서민들의 바람이 온전히 담겨져 있다. 소리꾼은 관아에서 물건 취급을 받던 관기 출신인 춘향과 사대부가 자제인 이몽룡의 사랑을 통해 당시 신분제도의 부당성을 노래하고 있었다.

기존의 춘향가 서사구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춘향가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봉건주의의 유물인 신분체제의 상징으로 변학도를 그리고 그에 항거하는 춘향의 이미지를 긴장감 있게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재판의 형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범법자 춘향 재판기’란 프로그램 제목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춘향가 중 사랑가, 옥중가 등의 눈대목들이 정해졌고, 박애리 명창의 소리는 음악 녹음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KBS 녹음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춘향의 이몽룡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단단해져 가는 내면상태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표현됐다. 둘의 만남은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이미지로 그리고 둘의 굳건해지는 사랑은 여름으로, 헤어짐은 쓸쓸한 가을의 모습이 배경이 되었다.

특히 ‘범법자 춘향 재판기’에서 역점을 둔 장면은 동학농민군들이 춘향가를 부르면서 진군하는 모습을 재연하는 것이었다. 1894년 탐관오리의 학정을 참지 못하고 일어섰던 동학농민군들, 그들은 춘향가 중 암행어사 대목을 부르면서 부당한 봉건주의 신분제도의 철폐를 주장한다. 춘향가가 노래했던 세상, 봉건주의 체제의 상징인 신분제도 철폐를 주장하는 동학농민군들의 모습을 어떻게 영상화 할 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웅장한 동학농민군들의 규모와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헬리캠, 초고속 카메라와 같은 특수 장비가 사용되었다. 특히 기존의 스테디캠으로는 그 당시 동학농민군들, 특히 또랑광대 부대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정현교, 이규태 촬영감독은 세그웨이를 타고 직접 전투 속으로 들어가는 촬영방식을 선택했다. 판소리 춘향가가 노래했던 세상이 실제 현실이 되는 순간이 역동적으로 영상화됐다.

▲ KBS 1TV <시대의 작창 판소리> 제작 현장.
‘신흥재벌 흥부의 경제학’은 기존의 형제우애란 측면에서 조망했던 흥부가를 조선후기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면서 생겨난 인간의 욕망을 비판한 돈의 노래란 측면에서 해석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조선후기는 돈으로 인해 새로운 계급이 형성된다. 하나는 놀부로 대표되는 부를 축적한 평민과 노비, 그리고 흥부로 표상되는 돈이 없는 몰락양반이다. 흥부가는 사회경제사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 조선후기의 모습을 담고 있는 서사시다.

‘신흥재벌 흥부의 경제학’에서는 놀부와 흥부가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독특한 구성 방식이 채택됐다. 당시 놀부가 자행했던 고리대금업은 오늘날 사채의 모습으로, 그의 악행은 현대법정에서 심판 받게 했고, 흥부가 막노동으로 번 돈으로 오늘날 마트에서 실제 쇼핑을 하는 설정을 통해 흥부가 처한 가난의 고통을 시청자가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깨닫게 하는 구성 방식을 선택하였다. 흥부가 속 현실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였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꿨던 서민들의 바람을 담은 흥부가.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흥부 박타는 대목이었다. 서민들은 착한 흥부가 부자가 되기를 꿈꾸지만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는 현실, 그 속에서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가 흥부를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설정은 흥부가 속 환타지였다. 이 장면은 그림자극을 도입하기로 했다. 쇼 무대에 300인치 대형스크린을 세우고 흥부가 박씨를 키우는 과정을 조통달 명창의 창에 맞춰 미속 촬영과 그림자극을 서로 교차하는 방식을 통해 표현하였다. 박 터지는 순간은 3D 특수영상으로 드라마 속 흥부 집과 무대를 찾은 관객들 위로 돈과 비단이 쏟아지게 재현하였다. 실험적인 구성과 편집 기법이었고 시청자들로부터 속 시원하게 돈 벼락 맞아봤다는 호평을 받았던 장면이다. 모두가 부자 되기를 꿈꿨던 흥부의 소망은 그렇게 현실이 되었다.

세 번째 오래된 미래 편에서는 당시의 시대상을 담았던 판소리의 사설과 그 정신이 오늘날에 창작판소리로 이어지는 과정, 해외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판소리의 예술성을 조망하면서 판소리의 시대정신을 강조하는 내용들을 프로그램으로 담았다.

KBS대기획 <시대의 작창 판소리> 세 편 중 마지막 편의 글을 제외하고는 프로듀서 집필제로 진행됐다. 직접 대본을 쓰고 내레이션, 촬영, 편집까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알고 듣는 판소리, 보는 즐거움을 기치로 한 새로운 장르인 ‘판소리뮤직다큐드라마’의 실험은 어렵게만 느껴졌던 판소리를 대중 속으로, 그리고 필자에게 영감을 준 미국 친구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KBS대기획 <시대의 작창 판소리>는 판소리의 고장 전주에서 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품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즐겁게 제작에 참여한 전주총국 식구들이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다. 아울러 신장르 ‘판소리뮤직다큐드라마’의 가치를 인정하고 방송프로그램제작지원사업 경쟁다큐멘터리 부문에 선정해 준 한국방송전파진흥원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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