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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법제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론]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l승인2015.01.05 17: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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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지난 2010년 1월 포털사업자가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소위 ‘듣보잡’ 글을 임시조치한 것이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를 ‘듣보잡’이라고 표현한 것에 설마 불법정보(모욕죄)라는 판결이 나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하고, 포털이 이렇게 ‘합법적인’ 정보를 차단한 것은 소비자들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갑질’을 한 것이라고 보고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형사재판에서 이 글에 대해 생각지도 못한 모욕죄 유죄판결이 나왔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해서도 결국 모욕죄에 대한 3인 위헌 의견이라는 황망한 결과를 진중권씨에게 안겨드린 바 있다.

그런데 지금 국회에 이런 소송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정부는 지난 해 12월 29일에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이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이 발의안은 겉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터넷 표현의 자유 증진” 대선공약의 일환으로 보인다.(공약집 289쪽)

실제로 주요 내용도 게시물이 차단된 후에 게시자가 2회 불복하면 게시물이 복원되고 그 후 게시물에 대해 불리한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는 한 복원 상태가 유지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게시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측면이 있다.

  ▲ 정부는 지난해 12월 29일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 개정안을 발의해 일종의 잊혀진 권리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 정부는 지난해 12월 29일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 개정안을 발의해 일종의 잊혀진 권리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합법정보에 대해서도 차단 절차를 강제한다는 것이다. 즉 개정안은 불법이 아닌 게시물에 대해서도 누군가 그 게시물에 의해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주장’을 소명만 하면 무조건 차단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일종의 ‘잊혀질 권리’ 조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게시자가 차단에 불복하면 분쟁조정절차로 회부될 뿐이며 그 분쟁조정결과에 다시 한 번 불복해야만 비로소 복원이 된다. 개정안에는 불복 후 10일 내에 분쟁조정이 끝나야 한다고 되어 있기는 하나 그 기한을 분쟁조정위원회가 지키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 결국 불법정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불법이라고 주장만 하면 반드시 최소 10일에서 무한대의 기간동안 차단될 수 있다.

현행법도 읽기에 따라서는 권리침해가 실제로는 없이 그러한 ‘소명’만 되어도 차단의무가 있는 것으로 읽히기는 한다. 그러나 개정안은 권리침해가 실제로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권리침해의 주장의 소명’만 있어도 차단의무가 발생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어 이제 포털들이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정책결정같은 것을 통해 고위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차단요청(예: 천안함 관련 게시물)은 거부한다거나 할 재량이 원천적으로 없어지게 된다.

정부는 이게 미국의 DMCA(Digital Millenium Copyright Act)의 노티스앤테이크다운(notice-and-takedown)시스템의 도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다. 노티스앤테이크다운은 강제제도가 아니다. 즉 사업자가 요청으로 차단과 복원 절차를 거친다면 불법정보유통에 대한 책임을 면책해주지만 사업자는 그런 면책을 받기 위해 기계적 절차를 거칠지 말지를 판단할 자유가 있다. 노티스앤드테이크다운은 세계 각국에 여러 버전이 있지만 사업자가 확실한 면책을 얻고 싶으면 선택적으로 따르는 절차이지 우리 법처럼 강제되는 절차가 아니다.

유승희 의원은 2013년 12월에 복원권 문제를 개선하는 법률안을 발의하면서 현행법처럼 ‘권리가 침해된 경우’에만 차단할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불합리한 차단요청은 포털이 처음부터 거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물론 비슷한 목적으로 제정된 저작권법 제103조는 불법여부에 관계없이 차단요청이 들어오면 곧바로 차단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저작권법은 복원요청이 들어오면 역시 곧바로 복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처럼 최소 10일 동안 차단되어 있거나 분쟁조정절차의 결과를 기다려 다시 불복해야 한다는 요건이 없어 그 해악이 질적으로 다르다.

더욱이 저작권법은 ‘정당한 권리 없이’ 차단요청을 하는 경우 권리주장자가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하여 명백히 합법적인 게시물에 대해 불합리한 차단요청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두고 있지만 개정안에는 이것이 없다. 실제로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지난 2009년 실제로 가수 손담비의 노래 ‘미쳤어’를 따라 부른 5살 여아의 동영상에 대해 불합리한 차단요청을 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대해 소송을 제기, 2010년 10월 고등법원에서 손해배상판결을 얻은 바 있다.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겠다는 대선공약을 늦게나마 실현하겠다는 정부의 뜻은 칭찬해줄만하나 합법적인 게시물들도 ‘잊혀졌으면 좋겠다’는 요청만 있으면 의무적으로 차단당하는 질곡에 빠지지 않도록 수정되어야 한다. 수정방법도 쉽다. ‘해야 한다’를 ‘할 수 있다’고만 바꾸면 된다. 또 지금 설정하려는 복원권도, 유승희 의원안처럼 복원에 필요한 불복도 1회면 충분하도록 고쳐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는 인터넷을 살리기 위해 불법정보를 유통하더라도 면책되는 세이프하버 조항이 대세인데 우리나라는 불법이 아닌 정보에 대해서까지 차단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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