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취재기 KBS <종군기자 그들이 말한다>(방송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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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는 진실을 전하는 목소리다”

|contsmark0|“죽을 확률은 50%, 죽고 사는 문제는 운명이다” 운명론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와 같은 저널리스트의 솔직한 심경고백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터를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무슨 배짱이 있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종군기자를 만난 것은 개인적으로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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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기자들은 이라크전이나 그동안의 분쟁지역에서 활동했던 기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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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을 기획하게된 것은 지난 4월8일. 국내 언론에 이라크 팔레스타인 호텔 피격사건 사망기자 사진이 개제됐는데 그 가운데 한사람이 그동안 분쟁지역취재당시 친분이 있었던 로이터tv 바그다드 지국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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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너무 놀라 현지에 연락을 취해 사정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죽은 기자의 사진이 잘못 게시됐다는 사실을 접하고 수소문 끝에 지국장과 연락을 취해 그가 사고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 했는데 이번에 2명의 동료기자를 잃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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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속에 울먹이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순간 괴로워하는 그 기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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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기획이 만반의 준비를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지난 3년 간 분쟁지역취재를 통해 나름대로 친분 있는 기자를 서너 명 사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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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기자가 알자지라 타이시르 울루아니기자, 로이터tv 할리드바그다드 지국장. aptn 코소보지국장 엘리다 라마나니 프로듀서는 bbc인터넷 검색과정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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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다의 경우는 aptn 본사에서 인적사항 공개를 꺼려 여러 경로를 통해 그녀의 e-mail 주소를 알아내 연락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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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기자만남 ‘부끄 러움’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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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이라크, 코소보지역에 전쟁 상황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종군기자들이 전쟁 취재를 통해 겪었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cp와의 협의 끝에 현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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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종군기자들의 만남은 취재라기보다는 부끄러움의 연속이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카타르 도하에 있는 알자지라 본사였다 이곳은 지난해에 이어 2번째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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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지라는 이번 이라크 전에서 건물이 폭파되고 기자가 죽는 엄청난 피해를 입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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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알자지라는 사고 후 외신과의 인터뷰를 자제하고 있다. 미국과의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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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국장, 기자들 역시 정치적인 발언은 삼가겠다며 속 시원한 답변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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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날 유일하게 미국에 대한 강력한 성토를 하는 기자가 있었다. 알자지라 대표적 종군기자 타이시르 울루아니기자였다. 그는 2002년 6월 취재당시 만난 인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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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이 의도적으로 폭격을 했다며 사고당시의 테잎을 건내며 있는 사실 그대로 보도하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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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담이 아닌 솔직한 전쟁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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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인터뷰내용은 전투현장을 직접 체험한 내용이어서인지 진지하고 깊이가 있었다. 그들은 솔직했다. 자신들에 대한 자랑이나 무용담은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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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얘기를 묻자 첫마디가 “고통스럽다. 수없이 죽어간 민간인, 부상을 당한 어린아이들이 생각난다. 지독한 전쟁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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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죽음이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 “두렵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번 팔레스타인 호텔에서 부상을 당한 로이터 tv 여기자는 자신의 부모에게 3개월 간 여행을 갖다온다고 얘기를 둘러대고 사고를 당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1990년 1차 이라크전 때도 거짓말을 했다며 허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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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궁금한 점은 위험한 전쟁터로 왜 가는가 하는 점이었다.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며 종군기자가 할 일은 전쟁 승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 없이 죽어 가는 서민들의 고통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너무나 간단한 답변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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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에 대한 부끄럼 때문이다. 그동안 분쟁지역을 다녀왔지만 아직까지 그들처럼 직업에 대한 애정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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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점이 그들이 전하는 현장의 메시지와 우리의 메세지가 다른 점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할 경우 불가능 할 것이 없다”는 cnn 여기자의 한마디는 내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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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항상 사건현장에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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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취재에서 모두 10명의 종군기자를 만났다. 한결같이 전쟁지역으로 또다시 떠나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금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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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후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것은 aptn 코소보지국장 엘리다 라마나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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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2명의 사랑하는 남자를 전쟁터에서 잃었다. 두 남자 모두 유명한 종군기자였다. 그녀는 지금도 남편이야기를 꺼내면 눈물을 흘려 인터뷰가 여러 차례 중단되기도 했다. 그녀도 그동안 코소보전쟁에 참가한 종군기자다. 그녀는 취재진에게 마지막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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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는 항상 사건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전쟁터든 테러현장, 회의장이던 가치가있다고 여겨지는 현장에 있어야한다. 저널리스트는 진실을 전하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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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환kbs <일요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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