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최적화된 소리매체 수익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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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최적화된 소리매체 수익모델?
[임재윤의 포스트라디오 ⑦ 마지막회]
  • 임재윤 라디오 PD/MBC 미래방송연구소
  • 승인 2015.01.19 11: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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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6번 출구로 나와서 직진 200미터, 빨간 차양이 세 개 층을 구분하고 있는 카페 건물이 하나 나옵니다. 어색하게 넓은 시뻘건 문을 밀어 제치면, 서울 시내 유명 빵집들의 야심작들이 한데 모여 손님을 맞습니다. 멀어서 포기했던 바로 그 빵집, 그 빵! 당연히 커피만 달랑 주문할 수 없지요. 문밖에서부터 따라오던 책 매대가 계단을 따라 올라가더니, 2층에선 벽면을 둘렀습니다. 눈이 가는 공간마다 알뜰하게 책을 꽂고, 눕혔네요. 분야별로 배열하고 베스트셀러로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특정인의 평가와 기호에 따라 ‘큐레이션’한 서가입니다. 책 제목을 훑으며 다시 한 층을 오르니 기다란 통창으로 막힌 스튜디오가 티테이블들을 마주 보고 있습니다. 스피커 위치가 라디오 공개방송 대형입니다. 벽에 붙은 스크린엔 요즘 화제라는 팟캐스트, 심지어 공중파 라디오의 녹음 스케줄도 떠 있습니다. 저자와의 대화 행사도 쓰여있고요. 맛난 빵에 향기로운 커피, 숨겨진 보석 같은 책들과의 만남. 운 좋게 녹음 있는 날이면 봉 잡은 기분이겠죠? 지갑이 기분 좋게 열립니다.

어느 소리매체의 비즈니스모델

이 카페 이름은 ‘빨간 책방’. 주인은 동명의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있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입니다. 위에서 ‘특정인’이라 칭한 사람은 이 팟캐스트의 진행자인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입니다. 얼마 전 100회를 넘긴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국내 문화 예술 분야 1위 팟캐스트입니다. 절판되었던 책이 여기서 다뤄진 후 재출간된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영향력은 입증되었는데, 수익은 어떻게? 방송 중간 책 광고로는 어림없을 것 같고. 궁금하던 차에 카페를 오픈했다 하여 시장조사에 나섰지요. 제 관찰의 결론은 ‘psychographics marketing’ 에 기반을 둔 ‘cross-selling’ 이었습니다. 팟캐스트로 유사한 성향의 로열티 강한 고객 집단을 모으고, 이들에게 어필할만한 책, 문화상품, 공간 경험, 심지어 미각 경험까지 인접 상품으로 판매 대상을 넓히는 방식이지요.

* psychographics marketing: 라이프스타일, 정신적지향점, 사회문화 감성, 정치사회 행태 같은 소비자의 생각, 태도, 행동을 기준으로 마케팅 대상 집단을 특정하는 마케팅 방식. 생활양식과 소비패턴이 유사한 집단을 묶어낸다. 한편 인구통계학적(demographics) 접근은 성별/나이/직업/주거지역 같은 소비자의 외부 신상을 토대로 대상 집단을 분류한다.

▲ 맨위 왼쪽부터 빨간책방 카페 전경, 1층의 편집 베이커리, 3층의 녹음스튜디오, (아래 4개 사진) 다양한 주제로 큐레이션된 서가들.

무딘 날의 녹슨 칼

지난 세기 매스미디어의 수익모델 기본은 광고였습니다. 수용자의 ‘주의(attention)’를 독점했기 때문에, 정밀 타게팅이 필요 없는 융단폭격식 광고가 먹혔습니다. TV의 경우 콘텐츠 자체를 돈 받고 파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유료 VOD), 가격 지불의사가 0에 가까운 소리매체는 여전히 광고에만 의존합니다. 그러나 매스미디어 독점이 끝나고 수용자 관심이 분산되면서, 광고주의 애정도 식었습니다. 프로그램 앞 뒤로 몰아놓은 광고 시간을 수용자가 더 이상 참아주지 않다 보니, TV의 경우 광고를 프로그램에 녹여내기 시작했고(PPL 및 가상광고), 잘게 쪼개 분산 배치하는 방안(중간 광고)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라디오 광고 규제만은 여전히 ‘전통을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더 취약한 매체가 더 강한 규제를 받는 형국입니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매체의 정밀 리포트에 길들여진 광고주들은 효과 추적이 어려운 라디오 광고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고, 라디오 음성광고가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매우 우수하다는 학계 주장은 확산되지 않고 있습니다.

경쟁매체 증가로 청취자 선택권이 넓어지고, 유통 형태가 다양화되고(실시간 + AOD 팟캐스트), 스크린 달린 스마트한 디바이스로 듣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인구통계학적으로 분류되기 거부하는 개성 강한 청취자들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날이 무딘 광고는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녹슨 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칼이 부러져도 당황하지 않으려면, 2017년에 최적화된 소리매체 수익모델에 대해 지금 고민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빨간 책방’ 사례는 여러 면에서 소리매체의 향후 수익모델에 대한 실마리를 주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콘텐츠가 단일 수익모델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시간 청취로 소비가 몰리는 프로그램(뉴스, 스포츠, 시사 등)과 AOD 위주 프로그램, 문화 소비에 열성적인 청취층을 가진 콘텐츠와 엥겔계수 높은 청취층 대상 콘텐츠가 같은 수익모델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이 모순은 그간 매스미디어의 독점력에 가려져 있었을 뿐, 콘텐츠 형태와 특성에 따른 수익모델 차별화, 다양화는 필연입니다.

두 번째, 외부 프로필(demographics,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넘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성격과 태도(psychographics)에 기반하여 타겟층을 설정해야 그들의 로열티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40~50대 남성’을 목표로 잡는 것보다 ‘다운쉬프트 성향의 진보적 LOHAS족’을 노리는 것이 높은 충성도를 형성합니다. 충성도는 ‘친밀한 공감’을 주무기로 하는 소리매체의 기본이며, cross-selling 을 가능케 하는 핵심입니다. 세 번째는 고객 특성에 집중하는 전방위 크로스셀링입니다. ‘빨간 책방’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 책과 빵을 넘나들지만 결코 고객 특성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실 ‘빨간 책방’의 핵심 talent(‘연기자’가 아닌 ‘재능인’의 의미) 2인(이동진 진행자와 허은실 작가)은 지상파라디오에서 오래 일했고, 같은 프로그램에서 호흡을 맞춘 적도 있습니다. 이들이 만든 콘텐츠가 지상파에 갇혀 있었을 때와 그 틀 밖으로 나왔을 때 보여준 극적인 차이점은, 콘텐츠 내용 측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수익모델 측면에서도 주목해야 합니다.

한편 광고도 다시 봐야 합니다. 녹슨 칼이라고 버려서는 안 됩니다. 수용자의 주의(attention)와 시간을 점유하는 미디어의 기본 속성, 그리고 콘텐츠값을 이용자에게 직접 받기 어려운 소리매체 특성을 감안한다면 ‘무딘 날’을 날카롭게 벼리고 녹을 벗겨내어 주무기로 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라디오 광고주의 거래비용을 줄여주는, 매체 특성과 광고주 특성에 최적화된 광고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TV 중심으로 설계된 현 미디어렙 체제는 소수 대기업을 상대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프로그램 정보를 얻고, 광고 소재를 만들고, 광고를 집행하는 절차들이 큰 대행사를 통해 이뤄집니다. 덩치가 작고 수가 많은 라디오 광고주들은 이런 시스템에 끼어들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정보도 많고 거래 절차가 편리한 인터넷/모바일 광고로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다음으로 정비가 필요한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라디오 산업 획정과 광고 규제입니다. 청취자들은 이미 실시간과 AOD, FM과 스트리밍 등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라디오를 듣는 반면, 라디오 광고는 여전히 실시간 지상파(FM)만 딱 떼어서 과도한 규제틀에 묶어 놓았습니다. 여러 형태와 방법으로 나가는 콘텐츠가 가장 엄격한 규제틀에 맞춰 마름질되다 보니 진취적인 문법과 표현을 구사하기 힘듭니다. 또 현행 광고제도에서는 라디오의 실제 사업영역들(지상파와 스트리밍, 실시간과 AOD)을 효과적으로 크로스, 믹스하는 광고 패키지가 원천 봉쇄되어 있습니다.

▲ 임재윤 MBC PD
연재를 마치며

라디오는 지난 100년, 매스미디어 시대에 최적화된 소리매체입니다. 이젠 이후 50년, 아니 30년에 최적화된 소리매체를 만들어낼 때입니다. 잠재 수요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혁신이 일어납니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기술 발전과 사람들의 미디어 활용 행태 변화는 이 시간을 점점 더 단축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혁신의 주어가 될지, 아니면 목적어가 될지 뿐이라고, 연재를 시작할 때처럼 또 다시 엄살을 부려봅니다. 그간 두서 없는 글의 독자가 되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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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 2015-01-19 19:18:10
연재하시느라 수고하셨네요. 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잘 읽었습니다. 라디오의 미래, 정말 어떻게 될까요? 덕분에 많은 걸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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