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론 프로 ‘꺼리’보다 기능우선돼야

|contsmark0|요즘 들어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토론 프로그램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각 방송사마다 한 두 개씩의 토론 프로그램이 정규편성 돼있고, 필자 또한 ebs에서 토론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contsmark1|
|contsmark2|
이렇게 토론 프로그램이 많아지게 된 것은 연초에 토론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발언보다는 사회발달과정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contsmark3|
|contsmark4|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도 토론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피아(彼我)의 이분법적 구분만이 필요했던 시기였고, 또한 그 동안 우리사회에선 말이 많으면 점잖지 못하게 여겨 온데다 말보다는 글을, 논리보다는 위엄을 앞세우는 의식구조로 인해 제대로 된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
|contsmark5|
|contsmark6|
이러한 환경 탓에 과거의 토론 프로그램은 논의가 아닌, 고명한 인사들의 권위를 보여주는 경연장이나 다름없었다.
|contsmark7|
|contsmark8|
그러나 우리 사회 전반에 민주화가 정착되면서 점차 다원주의적인 양상이 표출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이해집단 간에 충돌이 불가피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토론다운 토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할 수 있다.
|contsmark9|
|contsmark10|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기 위해 토론 프로그램을 편성한다는 것은 방송사로서 당연한 본능적 행위이기도 하고 또한 시청자를 위한 의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contsmark11|
‘토론꺼리’마저 계속 쏟아지고 있으니 토론 프로그램의 양적 팽창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contsmark12|
|contsmark13|
그러나 그 많은 토론 프로그램들이 각자 경쟁적으로 시의성을 다투다보니 토씨만 다를 뿐 중복된 아이템으로 토론이 부쳐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ontsmark14|
|contsmark15|
게다가 출연패널들은 시간에 쫓기는 제작진이 자신들만의 인적 pool을 가동한다지만 그 와중에도 방송에 맞는 매력적인 패널을 우선하게 되면서 여기저기 겹치고 있다.
|contsmark16|
|contsmark17|
결국 이리저리 채널을 옮겨다니며 같은 패널들이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특히 최근의 예민한 현안들에 대해선 패널들이 상대방의 논리에 귀 기울이려 하기 보다 자신이 속한 이해집단의 주장만을 늘어놓는 장으로써 토론 프로그램을 악용(?)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contsmark18|
|contsmark19|
결론이 있을 수 없다지만 출연자들은 각자 자기주장만 늘어놓다 시간에 쫓겨 프로그램이 끝나고 만다. 연출자는 내용이야 어찌됐든 한 편 끝냈다는 안도감에 젖어들 테고.그 많은 토론 프로그램, 심지어 내가 제작한 프로그램조차도 보고 나면 이렇듯 무언가 알맹이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contsmark20|
|contsmark21|
그렇다면 패널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연출자로서의 내 자신에게 먼저 문제가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contsmark22|
|contsmark23|
‘토론(討論)’은 분명 ‘어떤 문제나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여러 사람이 각각 자기 의견을 말하여 좋은 결론을 얻으려고 하는 논의’라고 사전(辭典)에 풀이돼 있다.
|contsmark24|
|contsmark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에 앞서 일차적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예민한 아이템을 선정하게 되고, 출연자는 시청자들이 싸움구경을 좋아 할거라는 생각에 그야말로 말을 잘하는 그래서 토론 중에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패널을 우선 섭외하고, 녹화 중에는 격론이 벌어지길 은근히 기대하면서 그 순간에 이르면 짜릿함을 즐기면서 컷을 외치지는 않았는지…
|contsmark26|
|contsmark27|
사전적 의미처럼 토론(討論)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여론형성을 합리적으로 도모하는’ 이상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contsmark28|
|contsmark29|
요즘처럼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충돌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단순히 ‘꺼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토론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 속에서 공론의 장으로 기능하게 만드는, 더 나아가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기재로써 작동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유익성에 승패를 거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contsmark30|
|contsmark31|
김병수ebs 청소년팀 pd
|contsmark32|
|contsmark33|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