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제작기 KBS ‘누구에게나 마음속의 강물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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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음속의 강물은 흐른다

|contsmark0|나이 60은 이미 삶의 문턱을 넘어선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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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아이들 등살에 휴일 날 낮잠 한번 제대로 자지 못하고 산으로 들로 좇아 다녔지만 이제는 아무도 귀찮게 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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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제 다 커 뿔뿔이 흩어져 저희들끼리 mt다, 회식이다 하면서 집을 비우기 일쑤니 적막한 집안에서 아내와 싱겁게 바라보다 문득 아내의 흰머리를 바라보며 미상불 그렇게 늙어가기 마련인 우리의 앞날이 손에 잡힐 듯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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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가슴을 저미게 하고, 습관처럼 지나치는 젊은이들의 뒷모습에 넋을 잃기도 하며 퇴근을 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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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빠진 게 있다. 이게 아니었다 내가 원하던 삶이란…. 삶의 쓸쓸함이 저문 가을날의 빈 벌판처럼 가슴을 저미고 술을 마셔도 성에 차지 않는 외로움이 남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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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5060세대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젊어서는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한 산업화의 역군이었으면서도 이제 와서는 수구로 매도당하고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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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기는 어려워도 지기는 잠깐이더라”는 시인의 말이 뼈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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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비굴하게 명예를 탐하지 않고 부정하게 남의 재물을 욕심내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들의 유언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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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연출자는 2001년 가을에 기획·제작해 2002년에 방송할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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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황혼이혼이라는 소재가 마뜩찮았든지 프로그램 제작을 취미생활 하듯이 한다고 높은 분한테 퇴짜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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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hd제작에 돈이 많이 든다고 유야 무야 시간만 끌었다. 그러다 2002년 10월경, 2003년 창사드라마 문제가 대두되면서 마침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방송국 촬영기사니 적당하지 않겠느냐고 해 갑자기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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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금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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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쓸쓸한 가을이 배경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주인공의 인생을 의미한다. 2002년 가을은 아주 짧게 그리고 빨리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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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이미 통과하고 있었다. 은행잎은 벌써 노랗게 물들었고 설악산은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한 상태였다. 11월 2일 우리는 광릉수목원을 시작으로 부랴부랴 촬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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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장소 헌팅이 다 되어있었고 주인공들은 마침 하던 일을 끝내고 쉬고 있던 참이어서 풀 스케줄을 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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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설악산은 추웠다. 새벽바람이 수은주를 영하 15도까지 끌어내렸다. 두터운 방한복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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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담요로 눈을 막고 촬영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일단 가을 신만이라도 제대로 찍어 놓으면 나머지는 어떻게 하든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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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촬영현장으로 불길한 소식이 날아 들었다. 모든 드라마에서 흡연장면을 추방하기로 했으니 재 촬영을 하라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겨울은 이미 깊었고 재 촬영은 2003년 가을에나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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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앞도 내다보지도 못하고 성급하게 내린 결정에 절망했다. 누가 말한 마디라도 해주었으면…. 이 민주화시대에 말 한마디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조직이 죽음의 집단 같아 소름이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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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찍은 신만으로 편집을 해봤다. 이 한 겨울에 재 촬영이 가능할 것인가를 며칠을 두고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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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 스태프 회의를 거치고 몇몇 신은 들어내고 몇몇 신은 부분 촬영으로, 그리고 또 몇 신은 장소를 실내로 돌렸다. 그리고 겨울 신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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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주어 겨울 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라스트 신은 샛노란 은행잎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역사(驛舍)를 걸어나오는 장면이다. 이미 찍은 비디오에는 주인공의 손에 담배가 들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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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 같지 않던 봄은 금방 왔다. 몇 번 실패는 했지만 일기예보를 참작해 입김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날을 골라 경동시장에서 약재로 쓸 은행잎을 사다가 뿌리면서 재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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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분이 지랄 같았다. 당연히 창사특집극은 다른 프로로 대체 되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봄 신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이 그래도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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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들 역시 혼신의 힘을 기울었다. 젊은이들 위주의 드라마 홍수 속에서 이런 드라마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들도 드라마의 주인공 역할은 이 작품이 생애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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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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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는 묘미 중에 하나가 연출의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는 것이다.나는 많은 드라마에서 메타포를 사용했고 이 드라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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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초반 주인공 부부가 탄 차를 맹렬하게 몰아 부쳐 추월하는 우람한 트럭은 이 시대의 거대한 힘의 메타포다. 그것은 젊은 세대 일 수 있고 시대 흐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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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의 신혼부부의 사진촬영이나, 산장에서 한 쪽에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는 노부부는 이혼을 하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심리와 대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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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영혼을 새(鳥)에 대비시킨 장면은 자유의 메타포였다. 5월 11일 방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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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후 많은 격려가 있었다. 부부가 같이 눈물을 흐리면서 봤다는 격려 전화에서 모처럼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젊은이들의 인터넷 게시판까지. 덕분에 나는 지인(知人)들로부터 비디오를 구해달라는 여러 청탁에 시달렸고 아예 복사해서 나누어주기도 했다. 또 자전적 드라마 같다는 전화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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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같은 시대를 산 방송인들의 고뇌고 삶이다. 하지만 일부 젊은이들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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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프로를 통해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세대간의 몰이해가 심각함을 깨달았다. 나는 드라마는 인간을 그리는 작업이고 그것은 감동의 폭 만큼 가슴에 와 닿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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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물질적인 풍요는 어느 날 갑자기 온 것이 아니라 지난 세대의 눈물과 고통으로 이룩한 것일진대 지난 세대의 치열한 삶을 냉소적 편견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편갈린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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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가 사라진 사회. 낭만의 아류에 불과한 가식적인 유희, 시청률을 위해서는 인간을 끝없이 비틀고 모독하는 삼류의 시대. 거기에 장단 맞추는 시청집단. 우리 문화의 현 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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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싱을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날, 가로등 밑에서 술에 만취해 토악질을 하는 한 사내를 보았다. 50이 조금 넘어 보였다. 희끗희끗 흰머리가 가여워 보이는 그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토악질 때문인지, 혹은 정말로 인생이 슬퍼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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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김현승의 시 “아버지의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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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눈물의 술을 마신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도 마음속의 강물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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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오kbs 제작본부 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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