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은 거대한 인간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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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 ‘1박2일 시즌3’ 유호진 PD

▲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 유호진 PD ⓒPD저널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즐겨보던 KBS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이후 청소년기 내내 TV를 본 적이 없다. 대학 시절에도 기숙사에 TV가 없어 보지 못 했고, 유일하게 TV를 즐겨본 시기는 군대 시절 뿐. TV에 관심도 없던, 스스로를 ‘책 좋아하는 샌님’이라고 부르는 사람. “어쩌다 보니 예능 PD가 됐다”고 말하는 이 사람은 놀랍게도 KBS 주말 간판 예능프로그램의 수장, <해피선데이-1박 2일>(이하 <1박 2일>)의 유호진 PD다. “나는 예능 버라이어티를 맡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그는 우려 속에 출발한 시즌3를 어떻게 성공으로 이끌었을까. 서울 여의도 KBS 근처 찻집에서 유 PD를 만났다.

실제로 만난 유 PD는 피곤한 기색은 보여도 생각보다 멀끔한 모습이었다. TV 속에 항상 비치는 찌들어있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늘 잠을 못 잔 채로 촬영을 나가서 방송에선 최악의 모습”이라며 웃었다.

▲ 신입PD 시절 <1박 2일> 출연 모습 ⓒKBS
‘신입PD’ 더 이상 신입PD가 아니다

유 PD가 시청자에게 처음으로 알려진 건 시즌1에서였다. 2008년 여름, 유 PD가 ‘신입 PD’로 1박 2일에 처음 합류하던 날. 그는 출연진의 몰래카메라에 호되게 당하는 모습으로 시청자에게 웃음을 줬다. 이후 유 PD는 ‘1박 2일 신입 PD’로 시청자에게 각인됐고,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유명인이 됐다.

“이런 일도 있었어요. 입사 5년 차 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교육훈련 명찰을 단 신입 PD들이 절 보더니 “우와, 신입 PD다!” 하고 외치는 거예요. 황당하죠. 그래서 “네가 신입 PD지, 내가 신입 PD냐!” 했죠.(웃음) 그 친구들과 지금 <1박 2일>을 같이 만들고 있네요.”

‘신입 PD’라는 별명은 그가 시즌3의 연출을 맡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가 시즌3에 투입된 사연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부진했던 시즌2 이후 프로그램을 살릴 묘책이 필요했다. 어리바리하던 ‘신입 PD’가 와서 연출을 맡으면 ‘쟤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신입 PD’가 프로그램을 살릴 수 있느냐의 여부가 관전 포인트가 된 것이다.

“무슨 사극 같잖아요. 망해가는 기와집에 13살짜리 막내 도령이 와서 곳간 열쇠를 쥐면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스토리를 선배들은 연출하고 싶어 했어요. 프로그램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고민 자체를 드라마로 만든 거죠.”

그가 시즌3를 맡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나영석 PD의 <1박 2일>을 경험한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당시 프로그램 제작에 주축이 된 PD들은 거의 다 KBS를 나갔고, 그래서 전성기 시절의 회의와 제작방식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버라이어티에 적합하지 않은 유형의 사람

▲ 유호진 KBS 예능 PD. ⓒPD저널
작년 여름, <PD저널>의 인터뷰 요청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정중히 거절했던 그였다. 시즌3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시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출연진과 기자 간담회를 하기도 하고 언론 인터뷰에도 제법 응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준비가 됐다’는 뜻일까. 그는 “여전히 준비는 안 됐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운이 좋아 현재 기세가 나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던 프로그램을 성공으로 이끌었으니 예능 PD로서의 능력은 어느 정도 검증받은 셈이다.

그는 스스로 “버라이어티에 적합하지 않은 유형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제7의 멤버’로 불릴 만큼 화면에도 자주 등장하는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의아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묘사했다. 그러다 보니 화면에 등장하는 것도 그에겐 고역이다.

“사실 프로그램 특성상 촬영 현장에서는 더 많이 개입하지만 최대한 많이 잘라내거든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등장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연예인도 아닌데 사생활을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니까 싫지만, 어쩔 수가 없죠.”

그렇다면 “버라이어티에 적합하지 않은” 유 PD의 시즌3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 “팀을 잘 만나서”라고 답했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말도 진지하게 덧붙였다. 그는 “다른 장르와 달리 리얼 버라이어티는 PD의 역할과 권한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대본이 없고 좌충우돌이 많은 장르 특성상 연기자와 작가, 스태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인은 “운이 정말 좋았다”고 했다.

“시즌2와 비교해 훨씬 편안하게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다는 것도 이점이었어요. ‘시즌1의 성공’이라는 무거운 짐을 져야 했던 시즌2와는 달리 큰 부담감 없이 몸에 힘을 빼고 임할 수 있었거든요. 기대감 없는 출발이 오히려 특권이 된 셈이죠.”

유 PD는 계속 외부로 공을 돌렸다. 이야기의 절반은 “운이 좋았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운’이 그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팀을 잘 만났다”는 이야기는 ‘제작진의 합’이 좋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유 PD의 장점은 그 ‘합’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는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솔직함’이라고 답했다. “자신 있는 건 자신 있다고, 자신 없는 건 자신 없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죠. 제가 자신 없는 부분은 다른 동료가 준비하게 하면 돼요. 솔직히 털어놓고 함께 끊임없이 의논하는 게 저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한 프로그램의 수장이지만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동료의 의견을 동등하게 교환하는 그의 방식은 시너지와 아이디어를 만든다. 여러 가지 설정과 캐릭터는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중요한 건 ‘균형’ 무리한 설정은 역효과 줄 수도

▲ 유호진 KBS 예능 PD. ⓒPD저널
‘스타셰프와 가을밥상 편’이 그 예다. 서점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 유 PD는 ‘제철음식’, ‘밥상’ 등의 책 코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요리 프로를 좋아하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회의과정에서 접목돼 ‘가을밥상 편’이 나오게 됐다.

물론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작 방법론’은 있다. 그가 <1박 2일>을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한 ‘덫’을 놓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거대한 인간 실험’이라고 말한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제일 재밌는 순간은 우리가 모두 공감할 수 있으면서 어이없는 상황이 나올 때죠. 고속도로를 잘못 빠져나간다든지, 담배를 못 피워 이런저런 증상이 나타난다든지 하는 거요. 그런 상황이 실제로 나왔을 때가 제일 재밌거든요. 우리가 가장 고민하는 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하면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죠.”

제작진은 출연진이 기막혀하고 황당해 하는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한 덫을 놓는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무리한 설정으로 역효과가 나지 않도록 ‘좋은 한상차림’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복불복’과 ‘몸개그’는 김치처럼 항상 놓이는 반찬. 하지만 유 PD는 “그게 메인요리가 될 순 없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날그날의 콘셉트다. “그 콘셉트를 바탕으로 황당함과 좌충우돌이 발생할 수 있는 덫을 얼마나 영리하게 놓고 그 덫에 출연진을 몰아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놓인 덫은 때로 감동을 만들기도 한다. ‘선생님 올스타’ 편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김명호 선생님은 방송 말미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쳐 감동을 줬다. 유 PD의 말대로 ‘운’이지만, 결국 제작진이 놓은 덫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운이었다.

“선생님이 바다에서 무슨 말을 외칠지 우리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좋은 선생님이므로 좋은 말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상황을 만들었던 거죠. 말하자면 계산하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이 행동할 수 있게 틀을 마련하고, 거기서 자연인으로서 면모를 보여줄 수 있게 하는 거죠. 거대한 인간 실험이라고나 할까요.”

나영석 PD를 만난건 PD 인생에 엄청난 변곡점

▲ 유호진 KBS 예능 PD. ⓒPD저널
그는 이렇게 덫을 놓는 요령들을 “나영석 PD에게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나 PD를 만난 것이 “PD 인생에 엄청난 변곡점이었다”고 말한다. <1박 2일> 규모가 커지던 시기 ‘깍두기’처럼 제작진에 합류했던 그는 그곳에서 예능 신입 PD로서 큰 경험을 했다. 나 PD가 KBS를 떠난 이후 심적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초반 4년 동안 저에게 일을 가르쳐준 신원호, 나영석, 이명한, 윤현중 선배들이 모두 나갔어요. 친한 작가와 스태프들도 많이 떠났죠. 공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선배는 떠났지만, 선배가 남겨놓은 <1박 2일>의 역사를 그는 이어가고 있다. 그가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이 오래되고 낡은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주는 것”이다. 역사가 긴 프로그램인 만큼 특유의 룰과 연출 방식이 정해져 있는데, 그 정해진 틀 속에서 ‘다름’을 주는 것이 관건이다. 여행의 신선함만으로 어필할 수 있는 시기는 한참 지났고, 그래서 여행의 방법과 이유, 콘셉트를 계속 만들어 내야 한다. 고갈된 아이디어를 계속 얻어내는 건 가장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유 PD는 <1박 2일>이 시즌 4, 5, 6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1박 2일>에서 계속 쓰일 수 있는 특집이나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청자 투어’나 ‘복불복’처럼 단골로 등장하는 성공적인 ‘툴’ 말이다. 그는 “중간에 릴레이를 함께 한 한 사람으로서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많은 것에 뭔가 하나 덧붙이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게 가급적이면 제 성격과 비슷한 거였으면 좋겠어요. 조금 소심해도 따뜻하고, 봤을 때 크게 거부감 없는 그런 거요.”

시즌3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지금도 그는 “나는 예능 리얼 버라이어티에 안 맞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다만 “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란다. 그는 언젠가 박수받으면서 시즌3가 끝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 날이 오면 정말 환호성을 지르면서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아요. 야호 끝났어! 하고요.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 유호진 KBS 예능 PD. ⓒ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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