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원장, ‘고봉순’이 아닌 ‘김비서’의 길을 선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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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커스] 방통위 ‘방송 공적책임 제고’ 의지의 진실은?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시청자들은 방송이 권력이 아닌 약자의 편에서 공공의 이익과 사회의 소통을 위해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방송법 제5조와 제6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방송의 공적책임’과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은 이런 기대를 법의 언어로 구체화 한 내용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부분의 방송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대중이 방송을 호명하는 방식에서도 이런 현실을 엿볼 수 있는데, ‘고봉순’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KBS는 지난 정부 이후 ‘김비서’로 호명되는 일이 많아졌고, 종편은 종합편성채널이 아닌 ‘종일편파방송’의 줄임말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얻었다.

이런 현실은 방송 전반을 관장하는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가 27일 발표한 새해 업무계획에서 방송의 공적 책임 제고와 공익성 및 공정성 강화를 올해의 주요 과제 첫 머리에 올린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방통위는 지난해에도 유사한 내용의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방통위는 새해 업무계획 발표에서 방송의 신뢰성 제고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지상파 방송의 공적 책임 제고와 종편의 공공성 확보, 보편적 시청권 보장 등을 주요 정책과제로 내세웠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27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기자실에서 2015년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세부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공영방송의 공적책임 제고를 위해 방통위에서 계획하고 있는 올해의 방안은 현재 월 2500원인 KBS 수신료를 4000원으로 인상하고, KBS의 유휴자산 조정과 인력구조 개선 등의 자구 노력과 공적 책무 확대를 유도하는 것이다. 방통위는 지난해에도 수신료 인상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2년 연속 수신료 인상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며 “광고시장의 위축과 수신료 인상의 지체로 공영방송의 재정 불안정성이 가중돼 공영방송 본연의 역할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이 재원 위기에 직면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지난해 12월 29일 발표한 ‘2014 방송통신광고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상파 TV의 광고매출은 2조 616억원으로 2013년(2조 1359억원)과 비교할 때 3.5% 줄었다. 전체 방송광고 매출은 4조 2281억원으로 전년 대비 0.02% 늘어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이런 상황에도 IPTV와 케이블 PP(채널사용사업자)의 광고매출은 각각 28.8%, 4.8% 증가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국내 콘텐츠 생산의 80%를 담당해 온 지상파 방송의 시장 지배적 위치는 이미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지상파 방송의 위기가 오롯이 재원에서 비롯했는가 하는 부분이다. 즉, 대중이 KBS를 ‘고봉순’이 아닌 ‘김비서’로 호명하기 시작한 배경에,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수를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 비교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KBS 보도국장이 사퇴하며 KBS 사장을 통한 청와대의 보도통제를 폭로하게 된 배경에 재원의 부족 문제가 있냐는 질문이다.

지난해 사장이 청와대의 세월호 관련 보도 통제를 그대로 따랐다는 폭로가 나온 이후 PD와 기자 등 KBS 구성원들은 저마다 들고 일어나 사장 교체를 외치면서 반성을 말했다. 안팎의 비판 속 사장은 교체됐고, 이후 KBS의 언론인들은 국무총리 후보자의 편향된 역사관의 문제를 폭로하면서 윗선의 검열로 아이템 하나 소신껏 발제하지 못하던 시간을 떨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중은 여전히 KBS를 다시 ‘고봉순’으로 부르길 주저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보도국장의 입에서 사장이 청와대의 보도통제를 받아왔다는 폭로가 나올 수 있던 배경인, 대통령과 여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배구조의 문제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현재 KBS 사장은 여야 추천 비율 7대 4라는, 일방의 의사결정이 가능한 이사회에서 다수결로, 사실상 일방의 뜻에 따라 임명 제청하면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는 방식으로 선출된다.

여권의 추천을 받아 선임된 이사들의 추천과 대통령의 재가를 통해 선임되는 KBS 사장이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들의 뜻과 반대로 움직이기 쉽지 않은 구조인 것이다. 언론단체는 물론 KBS 내부에서도 재원의 문제 해결과 함께 지배구조 개선과 제작 자율성 확보를 위한 법·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배경이다.

 

▲ 조대현 KBS 사장이 지난 2014년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KBS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새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11월이면) KBS 새 사장을 선출해야 하는 상황인데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는 질문을 받고 “지난해 국회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를 하고 방송법을 개정한 만큼, 일단 그에 따른 방안을 시행한 이후 나타나는 문제점을 점진적으로 개선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개정한 방송법은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의 결격사유를 강화하고 KBS 사장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KBS 사장 후보를 공개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에 일견 진보한 듯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밟는다 해도 그 결과와 상관없이 임명이 가능할 뿐 아니라, 당초 여야가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제1의 방안으로 논의했던 내용은 특별다수제(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 도입을 전제로 한 지배구조 개선이다.

이는 여야가 추천한 자문 교수단에서도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내용이지만, 여당이 시종일관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결국 개정 방송법에 넣지 못했다. 당시 여당 의원들은 현재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과 함께 “방송공정성을 위해선 경영진뿐 아니라 현업 제작진의 정치 중립도 중요한데 이에 대한 논의는 없다”(조해진 새누리당 의원)는 등의 주장만 내세웠을 뿐이다.

최 위원장은 올해 업무계획에 지배구조 개선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이유로 “(지난해) KBS 보궐 사장을 선출했을 당시 종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크게 우려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의 말은 틀리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KBS 이사회가 현재의 조대현 사장을 선출했던 건 이변이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KBS 이사회의 다수(11인 중 7인)를 점하고 있는 여권 추천 이사들은 야권 추천 이사들과 KBS 구성원들이 요구한 사장추천위원회와 특별다수제를 끝내 거부했다. 이런 가운데 4인의 야권 추천 이사들은 차악을 선택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바로 현재의 조대현 사장을 선택한 것이다. 이와 같은 차악과 최악의 갈림길에서 길환영 전 사장 해임을 불편해했던 2인의 여권 추천 이사의 표가 이탈해 6대 5로 현재의 조대현 사장이 임명 제청되는 예상 밖의 결과를 낳았다. 즉, 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종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선출됐다고 의미를 부여한 조대현 사장의 등장은 소수 이사들의 승부수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오는 11월엔 조대현 KBS 사장만이 아니라 신용섭 EBS 사장의 임기가 끝나고 이에 앞서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8월)와 KBS 이사회, EBS 이사회(이상 9월) 이사진도 새롭게 바뀐다. 이 모든 순간에 이변이 있을 수 있을까. 도박을 방불케하는 승부수 끝에 선출된 공영방송의 사장을 이유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할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쳐내는 방통위원장의 말에서 ‘언어도단’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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