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없는 방송, 신문보다 붕괴 속도 더 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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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스마트 미디어 시대, 방송의 미래는

 

▲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전문연구원과 박건식 PD연합회장이 지난 10일 저녁 회의실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가 김성헌

스마트폰이 가져온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숨이 가쁠 정도다. 새로운 미디어의 가파른 성장에 기존의 매체들은 생존의 위협을 체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를 말하지 않더라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내왔던 방송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마케팅을 전공한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최근 밀려드는 방송사 자문 요청으로 바쁘다. <PD저널>이 ‘스마트 미디어 시대, 방송의 미래’를 주제로 강 연구원과 대담을 마련한 지난 10일에도 안광한 사장을 포함한 MBC 임원진을 대상으로 한 조찬 강연이 있었다. 

독일에서 경제·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강 연구원은 블로터 필진, 슬로우뉴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언론과 인연을 맺어왔고, 복수의 언론사 컨설팅을 진행했다. 최근엔 갈 길을 잃은 언론의 혁신 과제를 다룬 <혁신 저널리즘>을 펴내기도 했다. 대담은 지난 10일 저녁 서울 목동 <PD저널> 회의실에서 있었다.

다음은 강 연구원과의 일문일답.(대담=박건식 PD연합회장)

“5000만 국민 대상 프로그램 제작 관행부터 탈피해야”

▲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사진가 김성헌

박건식(이하 박) : 전세계 언론의 화두가 ‘혁신’이다. <뉴욕타임스>에 이어 영국 BBC도 혁신보고서를 냈다. ‘혁신없이 생존도 없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강정수(이하 강) : 과거에는 아침에 조간신문 보고 저녁에 안방에서 뉴스를 보는 게 문화였다.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라는 의식이 반영된 거다. 하지만 이제는 이미 다본 뉴스를 오후 8시, 9시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볼 이유는 없다.

 

저널리즘 혁신은 소비가 어떻게 일어나는 지를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원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가 유행처럼 번졌다. 한 마디로 쉽게 돈을 벌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중에서도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이용 패턴과 선호도가 높은 서비스는 다르다. 수요와 공급을 정확히 파악하자는 이야기다. 기업이 제품을 내놓기 전에 하는 시장조사와 같은 이치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디어는 감으로 콘텐츠를 생산해왔다. 이제는 언론도 비즈니스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해 온 언론이 이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때다.

: 미디어의 소비가 비선형(Non-linear Consumption)으로 바뀌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이 방송에 시사하는 바는.

: 리모콘의 등장이 시작이었다. 이제는 드라마의 전편을 몰아보는 빈지 뷰잉(Binge viewing:몰아 보기)이 보편화하고 있다. 특히 인텔리 계층이 주말에 몰아보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소비의 규모도 크다. 이런 영향 때문에 미국 생방송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이 죽어가고 있다. 시장의 변화를 민감하게 겪고 있는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온실 속의 화초’다. 정부의 규제가 일정 정도 시장의 영향을 완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국내 미디어 시장 규모가 작아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이 더딘 측면도 있다.

시장에 민감한 영미권 메체들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때문에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넷플릭스의 공세에 유럽 언론들이 붕괴되고 있고, 버즈피드도 독일 등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영화 제작하는 넷플릭스 방송까지 위협” 

 

▲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사진가 김성헌
▲ 박건식 한국PD연합회장 ⓒ사진가 김성헌

박: 국내 방송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 종이신문 보다 방송 시장의 위기가 더 크게 올 것이다. 방송은 신문보다 붕괴 속도가 빠를 것으로 보는 이유는 우선 경쟁자가 많이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에 반응하는 속도도 빠르다. 한국은 코바코(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중간에 완충 작용을 했지만, 내가 광고주라도 오후 10시 드라마 시작 전이나 MBC <무한도전> 앞에 광고를 하고 싶을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영상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영화 제작에 나섰다. 다음카카오도 카카오TV를 런칭하려고 한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유통뿐만 아니라 콘텐츠 생산에도 욕심을 내는 건 소비자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다. 다른 경쟁자에게 소비자를 뺏기기 싫어서 드라마를 만들고 게임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소비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콘텐츠 생산자이자 플랫폼사이기도 했던 방송에는 큰 위협이다. 방송광고의 축소, 플랫폼사들이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증가 등으로 방송은 쉽지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 현실에선 프로그램 제작과 유통은 기존의 방식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 지금까지 지상파의 유통은 퍼스트 윈도우에서 검증된 콘텐츠를 중국과 일본에 수출하는 방식이다. 국내에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차이나머니와 아메리칸머니가 한꺼번에 들어올 거다. 넷플릭스는 유통보다 프로그램 다변화에 관심이 많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다면 중국을 공략하기 전에 한류 콘텐츠를 수급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기존의 매체와 서비스는 최소한으로 유지하되 신생 매체와 서비스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

“공채 중심 조직문화 혁신 가로막는다”

 

▲ 박건식 한국PD연합회장 ⓒ사진가 김성헌

박 : 모든 언론 매체들이 공감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쉽지 않다.

 

: 한국 사회에서 혁신을 방해하는 건 전통이다. 언론사 역시 공채 중심의 조직문화, 직종간의 차별 등이 새로운 인재 등용을 막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막는다. 앨런 라스브리저 가디언 편집장은 직원들에게 종이신문을 보면 퇴사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소비자는 종이신문을 안 본지 꽤 됐는데, 직원들은 아직도 종이신문을 붙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콘텐츠의 형식은 기술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대표적으로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한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snow fall)은 <한겨레>, <한국일보>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용자가 어디서 뉴스를 접하는지를 분석해서 집에서 보는 뉴스는 길이가 긴 서비스를 먼저 보내준다.

방송도 지금까지 5000만명이 안 보는데 극우 극좌,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그러니까 지루한 콘텐츠가 나온 것이다. 세대별로 세분화해 그들의 언어와 문법으로 만든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 특히 중간광고가 도입되면 드라마의 스토리텔링도 완전히 바뀔 것이다.

: 여전히 종이신문과 디지털의 시장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디지털 시장은은 기존의 뉴스를 모아서 다르게 포장하는 그릇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 한 인터넷언론사를 컨설팅하면서 실험을 했다. 스크롤을 내려 뉴스를 끝까지 보는 비율을 얼마인지 봤더니 50%가 안됐다. 클릭수가 높으니까 우리 뉴스 많이 보겠지 했는데 사실 절반 이상은 뉴스 제목만 본 셈이다. 새로 출시한 ‘쭈쭈바’를 소비자가 입술만 대고 버리는데도 모르는 것이다. PC시대까지만 해도 이런 정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바일로 넘어오면서는 이용자들이 스크롤을 몇 번 내리는지 측정이 가능해졌다.

또 다른 인터넷 매체의 요일별 시간별 뉴스 소비 행태를 봤더니 출근시간대는 속보성 기사를, 저녁에는 비교적 긴 기사도 많이 봤다. 이런 소비 행태를 반영해 종이신문과는 완전히 다른 콘텐츠를 생산 할수 있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특정한 그룹에 최적화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 <버즈피드>의 성공은 포털사이트를 통하지 않고 SNS를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포털 이후 힘의 균형은 재편될 것이라고 보나.

: 트래픽을 올리기 위한 ‘충격’ ‘경악’이 난무하는 포털 기사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에서는 내가 어떤 뉴스를 보는지 노출되기 때문에 포털보다 정제된 뉴스 소비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물론 트래픽 올리기에만 치중하는 분위기는 바뀌어야 한다. 웬만한 종합일간지나 방송사 홈페이지의 월간 페이지뷰는 1억 건이 넘는다. 하지만 버즈피드는 이제 1억 건이 넘었고, 뉴욕타임스는 4000만건 수준이다. 2000만, 1000만건의 뷰라도 충분히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슬로우뉴스는 월 200만건의 페이지뷰가 나오지만 수용자들의 박수를 받는다. 규모는 작더라도 양질의 저널리즘을 제공하는 매체가 늘어난다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

: 조금씩 온라인에 기반한 콘텐츠가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도 그 중 하나다.

: 공급 과잉이 빚은 현상이다. 국회의원 수보다 국회 출입기자 수가 많다고 하질 않나. 큐레이팅에도 특성화, 전문화가 필요하다. 큐레이팅의 효시라고 볼수 있는 허핑턴포스트도 이라크전 당시에 양비론에 빠져있던 <뉴욕타임스>과 달리 전쟁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정치 뉴스의 수요가 급증했다.

: 기술발달과 환경 변화로 설자리가 좁아진 지상파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 제작비도 안나오는데, 지상파 플랫폼에 편성된 모든 프로그램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경쟁력 없는 프로그램은 퇴화의 길을 걷지 않겠나.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장르와 콘텐츠에 더욱 투자가 집중될 거라고 본다. 다만 공영방송은 민영방송과 대응 방식은 달라야 한다. 공영방송은 상업성이 없더라도 소외된 계층을 위한 콘텐츠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 직접 만들어보는 게 가장 효과적 대응” 

 

▲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사진가 김성헌

박 : 그동안 실시간 방송에 몰두했던 PD부터 달라져야 한다.

 

: 유튜브에서 천재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린 제이 프랭크가 버즈피드로 와서 6개월 동안 한 일이 포맷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버즈피드를 유튜브에 어떻게 띄울 것인가만 생각한 거다. 그 결과 버즈피드의 콘텐츠는 저비용으로 만들지만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지상파 경영진도 지금까지 지상파를 시청하는 5000만 시청자를 위해 프로그램 만든 PD들에게 ‘10대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라’고 구체적인 주문을 해야 한다.

: 기획력이 더욱 중시될 것 같다. 앞으로 PD의 이름도 디렉터나 프로듀서보다 크리에이터(Creator)가 낫다는 주장도 있다.

: PD뿐만 아니라 작가, 사진가 등 크리에이터 직군에 포함되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좋은 기획은 수용자 중심의 사고를 할 때 나온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예견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다. 작은 프로젝트라도 끊임없이 시도를 해보는 조직은 살아남는다. 그러면 새로운 저널리즘의 길도 열리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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