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사라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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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사라진 세상
[이채훈의 인문학 생중계] 다큐멘터리의 교훈
  • 이채훈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
  • 승인 2015.03.05 0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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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인류가 사라진 세상>(Aftermath ; Population Zero)은 인류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핵전쟁, 운석충돌, 기후변화, 신종바이러스 등 여러 원인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다큐의 관심 밖이다. 다만, 인류가 사라졌을 때 지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줄 뿐이다.

모든 생물 중 인간은 지구에 가장 큰 흔적을 남겼다. 인구가 70억인데, 그 중 절반 이상이 도시에 모여 산다. 지구 표면에서 도시는 1%, 농촌과 목초지는 3분의 1, 여기에 5억대의 차가 달리고 있다. 인간은 대기권 바깥부터 땅속까지 손길을 뻗혔고,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흔적을 남겼다. 인간이 없는 세상을 그려보면, 인간이 한 행동을 돌이켜볼 수 있다.

인류가 소멸하기 직전, 일상이 계속된다. 월스트리트에선 주식 중개를 시작한다. 라스베이거스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도쿄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재우고 있다. 한 순간, 인류의 역사가 멈춘다.

▲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인류가 사라진 세상’
달리던 차량들이 서로 충돌한다. 건물에 충돌하여 멈추기도 한다. 여객기 수천대가 추락하고, 착륙하던 비행기들이 폭발한다. 바로 그날부터 세계는 바뀌기 시작한다. 도시는 조용해지고, 약간 시원해진다. 뉴욕에서 800만명이 내뿜던 열이 사라지자 도시 온도가 1도 정도 낮아진다. 자동화된 기계는 얼마간 계속 돌아간다. 증권거래소 전광판은 계속 돌아간다. 인공위성도 계속 날고 있다. 자동화된 발전소들도 계속 전기를 생산한다. 그러나 연료공급이 중단됐기 때문에 멈추는 건 시간문제다. 기차들이 탈선하여 길게 눕는다.

6시간 후, 컴퓨터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음을 감지하고 작동을 중단한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발전 시설이 멈추고 미국의 전력 공급이 중단된다. 도시의 불빛이 꺼지고, 라스베이거스도 암흑이 된다. 냉각수단이 없어서 전 세계 화력발전소에 불이 나면서 화재가 며칠째 계속된다. 인류가 사라진 세상은 6시간 만에 시한폭탄이 돼 버렸다.

3일째, 돌봐줄 사람이 없는 모든 기계들이 작동을 멈춘다. 천연가스에 대한 통제가 중단되고 화학물질들이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시동이 걸린 채 멈춘 차들에게 폭발성 가스가 접근한다. 작은 불꽃이 일고, 차들이 폭발한다.

4일째, 굶주린 전 세계 애완동물들이 탈출을 시작한다. 수백만 마리 개들이 거리로 나와 쓰레기를 뒤진다. 동물원들이 기능을 할 수 없게 되고, 사자, 원숭이, 낙타 등 온갖 동물들이 도시를 배회한다. 동물들은 생존 위한 투쟁에 돌입한다. 개들은 야생견으로 변하여 서로 잡아먹는다. 전기가 없어서 물 공급도 없고, 물을 못 찾으면 모두 죽게 된다. 시체가 즐비한 들판에서 젖소들이 죽어 간다. 15억 마리 닭이 우리 속에서 죽어간다. 새들은 안전하다. 뉴욕에서 해마다 1억마리 새들이 빌딩 유리창에 부딪쳐 죽었지만, 이제 그럴 일이 없다.

7일째, 원전의 연료가 떨어졌다. 냉각수가 없어서 원자로가 가열되기 시작한다. 10일째, 핵연료봉이 타들어간다. 원폭 250개와 맞먹는 방사능이 흘러나온다. 이제 폭발이 시작된다. 체르노빌과 같은 핵재앙이 전세계에서 일어난다. 미 동부의 30개 원전과 유럽의 137개 원전이 폭발한다. 며칠 후 방사능 구름이 세계를 덮친다.

3개월 후, 방사능은 사라지고 하늘은 맑아진다. 공기가 맑아지고 시야가 밝아진다. 야생이 살아난 개들은 떼지어 시골을 돌아다니며 코끼리를 사냥한다.

6개월 후, 겨울이다. 어려운 시절이지만, 인류의 멸종은 다른 동물들에겐 기회가 된다. 사람이 지어놓은 건축물들은 동물들에게 편리한 안식처다. 난로가 없어도 바깥보다는 훨씬 따뜻하다. 10개월 후, 봄이다. 원전 근처에 봄이 왔지만, 새싹을 틔우지 못한다. 비가 온다. 독성물질은 땅속으로 들어간다. 동물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5월이 온다. 하루 11억톤의 온실가스를 방출하던 자동차들이 사라지자 이산화탄소가 급속히 감소했다. 지구는 신속히 회복됐다. 이끼가 돌아온다. 어떤 틈새든, 물만 있으면 자라날 수 있으니까.

10년 후, 축구장이 들판으로 바뀐다. 15년 후, 새로운 식물들이 자라나고 인간의 흔적은 희미해져 간다. 인간은 하늘을 지배하려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구에서 인간의 존재를 알려주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 간다. 30년 후, 달과 별만 빛나던 밤하늘에서 유성 비슷한 것들이 마구 떨어진다. 지구 주위를 돌던 2만 5,000개의 인공위성이다.

60년 후, 집들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야생동물들은 벽과 지붕을 갉아먹었다. 비가 집을 적시자 천장과 마루는 썩어 들어간다. 녹슨 금속 틈새로 물이 들어오고 이음새가 약해진다. 모든 도시에 새싹이 돋아나서 빌딩을 뒤덮는다. 콘크리트 정글은 진짜 정글로 변한다. 겨울이 와서 물이 얼자 건물에 균열이 생긴다. 100년 후, 지구 위의 거의 모든 건물이 붕괴하고 도시는 소멸된다.

▲ 내셔널지오그래칙의 다큐멘터리 ‘인류가 사라진 세상’ 장면
120년 후, 지구 온난화는 중단됐다. 바다와 나무 덕분에 대기 가스가 정화됐다. 바다의 고래는 인간의 소음에서 해방되었다. 200년 후, 콘크리트 댐들이 무너진다. 179억 입방미터의 물에 후버댐도 붕괴되고, 이 물은 다음날 캘리포니아만에 도착한다. 200년만에 생태계는 회복됐다.

230년 후, 아직 남아 있는 인간의 흔적은 피라미드, 만리장성 정도다. 대부분의 도시는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에펠탑은 아직 서 있다. 60톤의 페인트는 비 때문에 부식되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무너진 에펠탑 아래엔 야생돼지들이 무리지어 산다. 자유의 여신은 거대한 구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오래 버티었지만 이제 콘크리트 받침대만 남기고 팔, 머리, 몸통 순서로 무너져 내린다. 1,000년 후, 에펠탑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고, 자유의 여신도 숲속으로 사라졌다.

2만 5,000년 후, 새로운 빙하시대가 왔다. 북반부 대부분을 얼음이 덮는다. 눈이 내려서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 빙하는 인간 문명의 마지막 흔적들을 모두 지워버린다. 인간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은 우주에 단 하나, 바로 달이다. 달 표면은 지구와 달리 매우 느리게 변한다. 40억년 된 분화구가 여전히 그대로 있다. 아폴로 우주인이 남긴 탐사차, 카메라, 성조기, 그리고 우주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인류를 저주하는 게 아니다. 인류가 사라졌을 때를 상상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더 없이 소중하다는 걸 발견하자는 것이다. 지구는 45억년, 이에 비하면 인간 문명은 찰나에 불과하다. 지구는 인간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지구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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