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역방송’에 대한 몇 가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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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방송 좀 꺼! 제발” 살아오면서 심심치 않게 들었던 이야기다. 어떤 상황이면 나오는 소리인지 대부분 알고 있을 터이다. 나 또한 많이 썼던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지역방송 PD가 되고 나서 한참 지났을 무렵부터는 이 소리가 거북해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온라인, 모바일에 1인 미디어까지 활발한 이 시대에 시골의 작은 지역방송이 필요하냐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위정자들이나 시청자들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물음에 혹시나 오해는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지역방송은 비효율적이다”

25년여 년 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기 중 하나다. 1995년부터 지역에는 9개 민영방송이 들어섰다. 2004년에 KBS의 7개 지역국이 폐지되기도 했다. 지역MBC에도 예외는 없었다. 지난 2011년 MBC경남의 출범으로 십수 년 동안 말만 무성했던 광역화가 현실이 됐다. 올해는 MBC강원영동이 닻을 올렸고, 충주와 청주MBC도 합병을 준비하고 있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규모의 경제’를 외치며 통합을 주장하던 분들은 진작부터 광역화의 효과를 따져봐야 했다. 그러나 방통위도 학자들도 3년이 지난 지역MBC 통폐합의 결과 분석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효율화를 주장하며 시행했던 광역화가 과연 바른길이었는지, 문제점은 없었는지, 개선할 사항은 무엇인지를 적시한 보고서 한 장 찾아볼 수 없다. 권역은 넓어졌는데 뉴스 시간은 똑같고, 그렇다고 지역 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더 늘어난 것도 아닌데 효율을 위한 광역화 카드는 아직도 유효한 듯하다.

또한 공공성과 지역성을 더 확대해야 하는 지역방송의 역할 중 ‘효율’이란 과연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까? TV화면 속에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가 어느 때보다 넘쳐나고 있다. 그보다는 이웃의 진솔함이 묻어나는 따뜻한 프로그램, 유익한 정보가 많아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공익적 효율’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지역방송을 비효율적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지역방송은 재미없다”

뭐라 딱히 부인하기 힘든 말이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 녀석들은 교육방송보다 지상파의 리얼 예능 프로그램을 더 좋아한다. 연예인은 무조건 등장해야 하고 몇 분이 멀다고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해야 하며 엄청난 제작비로 초대형 무대와 소품이 동원돼야 시청자들의 ‘재미’ 눈높이를 겨우 맞출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다. 한쪽 장르의 프로그램만 과잉 공급되면 결국 부정적인 미디어 효과가 더 커지게 된다. 부조리를 고발하는 탐사 프로그램도, 따뜻한 사연을 전해주는 라디오 방송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그린 다큐멘터리도 있어야 균형 잡힌 사회를 지속시켜주는 방송의 공익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런 프로그램들은 재미가 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은 왜곡된 사회체제를 바로잡고, 때론 진한 감동을 전해줄 것이며, 환경의 소중함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지역방송 프로그램도 중앙에 밀려난 변방으로서의 ‘지방’이 아니라 각자의 생활권에 기초한 ‘지역’의 개념이 자연스레 자리 잡게 해 줄 것이다.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이 가능하도록 순기능 해 줄 것이다. 자극적이고 저급한 웃음보다는 유익하고 감동까지 담은 재미가 우리 삶을 더 윤택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지역방송에는 왜 그렇게 많은 인력이 있어야 할까?”

나의 지역방송PD 생활은 1996년부터이다. 새내기PD 시절 우리 방송사의 직원 수는 120명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1997년 닥쳐온 IMF는 다른 것 제쳐놓고 인력 구조조정의 칼날부터 빼 들게 만들었다. 30% 가까이 되는 선배들이 일터를 떠났고 조직은 ‘필수적인 업무(?)’를 중심으로 인력 재배치에 들어갔다.

그 이후로도 2008년의 외환위기와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영업이익 적자 상황을 거치면서 우리 방송사의 인력은 내가 입사한 지 20년도 채 못 되어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최근 인력구조조정의 한 가운데는 ‘정리해고’도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새벽 촬영을 나가도 졸린 눈 비비며 오디오맨이 운전을 하고, MD와 뉴스 자막, 단신 편집은 파견 노동자에게 맡겨졌고, 매일매일 생산되는 영상자료는 편집실 하드나 영상자료실에서 정리도 안 된 채 먼지 쌓여가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지역방송 제작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 사업 때의 일이다. 지역성 구현을 위해 지원 비율을 높여 놓았던 라디오 부문 심사장에 프로그램 기획안 설명을 하러 온 사람은 제작PD가 아니라 아나운서들이었다고 한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지역방송의 현실이 이 정도인지 그제야 알게 되어 적잖이 당황했다는 소리도 있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빠져 나간 결과 지금 현실이 이럴 진데 지역방송 인력이 아직도 많다며 “지역사당 40명 선이 적정하다고 생각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도 서울에서 지역사를 관리(?)한다는 계열사부장의 입에서 말이다.

“지역방송은 필요 없다”

그 많은 인력이 있으면서도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재미조차 없는 지역방송이 도대체 왜 필요할까? 전문가들이 선호하는 선진국의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 같은 나라는 헌법 1조에 지방분권이 명시되어 있다. 다른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자치와 분권은 기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 가장 가까운 우리 방송을 살펴보자. 아침 TV를 보면 여전히 서울의 출근길 교통상황이 가득하고 우리는 그 화면을 영혼 없이 보고 있다. 서울 사람들은 물론 지역민조차 그것을 당연하게 느낀다. 절반을 지역민들이 내는 수신료가 그렇게 쓰여 져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다른 이유가 없다. 그렇게 교육받고 그런 인식들이 일상화된 사회에 살고 있어서이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정권의 앵무새가 되어온 방송도 한 몫을 했다.

그럼에도 지역방송은 우리 삶속에 반드시 있어야 할 공기이다. 중앙 집중화된 사회가 필연적으로 치를 수밖에 없는 수많은 기회비용을 최소화해낼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지역방송이 아닐까? 지역방송은 전파의 낭비도 ‘사소한 것에의 집착(law of triviality)’도 아니다. 내 삶이 이뤄지고 있는 곳에서 풍부한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인 뉘앙스를 갖고 벌어지는 현상들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지역방송이 해야 할 역할의 시작이라 할 것이다.

얼마 전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한 의원이 이완구 총리에게 ‘지방’과 ‘지역’의 차이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다. 그 의원은 또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지역이 살아나 대한민국이 살 수 있다”면서 박근혜 정권에 “지역과 더 이상 힘겨루기 하지 말자”고 촉구했다. 사람들이 모두 정치인들을 욕하지만 이런 의원도 있구나 생각했다. 서울의 잣대에 맞춰 비효율적이고 재미없어 불필요한 지역방송이라는 오해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지나간 대보름달에게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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