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구글의 공통어 무대에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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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KBS 새 프로그램 ‘명견만리’ 녹화 현장

▲ KBS 신설 프로그램 <명견만리>가 오는 12일 첫 방송된다. ⓒKBS
3월 7일 오후, KBS 신관.

#1.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다. 뮤직뱅크? 개그콘서트? 뭘 보러 온 사람들일까? 아직 녹화시간 두 시간 전인데 벌써부터 기다리는 사람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서 있다.
 
#2.
신관공개홀에 뚝딱뚝딱 무대가 만들어 지는 중이다. 무거운 자재들을 나르는 스태프들, 무대를 꾸미는 스태프들로 무대 아래 위가 모두 북적거린다. 조명을 체크하기 시작하자 화려한 불빛이 무대 위로 넘실댄다. 출연자 대기실 앞 복도에도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긴장감이 맴돈다.
 
#3.
리허설이 시작된다. 오늘 프로그램 진행을 이끌어갈 김현유 구글 상무가 대본을 읊으며 음향을 체크한다. 무대 위로 한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안경 쓴 하얀 얼굴에 조용한 목소리. 문화아이콘 서태지다. 서태지는 특히 음향을 꼼꼼히 체크한다. 앵글과 자리 배치, 동선, 음향까지 테스트를 마친다. 김 상무와 서태지는 간간히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서태지를 바라보는 스태프들의 표정에도 기대감이 비친다.
 
#4.
드디어 입장 시작. 하나 둘 사람들이 들어와 방청석을 채운다. 찰칵찰칵, 입장하며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소리가 여기저기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 추운 곳에서 기다리느라 힘들었을 텐데,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어떤 이는 기도하듯 두 손을 꼭 모으고 떨리는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녹화시작을 기다린다. 출연자가 등장하자 떠나갈 듯 박수를 친다.
 
어떤 프로그램인지 감이 잡히시는가. 토크쇼? 음악프로그램? 예능? 그 무엇도 아닌, 오는 12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렉쳐멘터리’ 프로그램, <명견만리>다.
 
▲ KBS <명견만리> ⓒKBS
 
렉쳐멘터리? 강연+다큐멘터리
 
<명견만리>는 KBS 기획제작국에서 준비하는 신설 프로그램이다. 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기획제작국에서 공개홀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데, 이번에는 예외다. <명견만리>가 강연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연 프로그램을 교양국이 아닌 기획제작국에서 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견만리>는 단순한 강연이 아닌 강연(Lecture)과 다큐멘터리(Documentary)가 결합된 ‘렉쳐멘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PD저널>이 방청한 <명견만리> 녹화 현장은 기존 강연 프로그램과는 달랐다. 강연자의 연설과 함께 VCR 감상, 토크가 어우러진 구성을 선보였다.
 
제작진에 따르면 <명견만리>의 강연자는 취재진과 적어도 한 달 이상 함께 취재하고 작업하며 강연을 준비한다. 녹화 전부터 취재진과 여러 차례 교감하며 이야기 구성과 취재의 전 과정을 함께하고, 그 취재 내용물에 근거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명견만리> 강윤기 PD는 “쟁쟁한 명사들이 자신들이 직접 취재해 온 VCR 영상을 재료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와 통찰력을 푸는 방식”이라며 “미래의 방향에 대해 묻고 화두를 던지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명견만리는 ‘밝은 눈으로 미래를 본다’는 뜻이다.
 
지난 7일 녹화 현장에서 <명견만리>가 던진 화두는 ‘공유’였다. 서태지는 ‘공유’라는 주제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출연했다. 작년 말 그는 자신의 음악 ‘크리스말로윈’의 스템 파일(stem file, 노래 하나를 구성하는 보컬, 기타, 신디사이저, 드럼 등 각각의 음원 소스를 일컫는 단어)을 공개한 바 있다. 스템 파일 공개는 뮤지션들이 꺼리는 일로, 이를 무료로 공개한 것은 그가 국내 최초였다. 서태지는 이날 강연자인 김현유 구글 상무 및 청중들과 VCR을 함께 보며 두 시간여 대화를 나눴다. 이 날 녹화를 위해 서태지와 제작진은 몇 차례의 밤샘회의도 불사하는 열정을 보였다는 후문.
 
▲ KBS <명견만리> ⓒKBS

김난도· 김영란· 장진 등 출연

녹화 현장 분위기는 시종일관 훈훈했다. 청중들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중간 중간 방청석에는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청중들은 질문이 있으면 마이크 앞으로 나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의견을 보태기도 하며 서태지와 대화를 나눴다.

제작진은 <명견만리>가 강연자가 일방적으로 지식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소통하는 프로그램이길 바란다고 했다. 청중이 마이크 앞으로 나가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제작진은 매 회 녹화 현장에 참석한 후 강연을 평가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미래참여단’이라는 시청자 참여단을 모집하기도 했다.
 
<명견만리> 프로듀서인 정현모 팀장은 “<명견만리>의 시청자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청중은 아니었으면 했다”며 “시청자의 평가와 의견제시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을 지향했다”고 밝혔다. 정 팀장은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있는 건강한 담론이 나오길 바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전했다.
 
‘렉쳐멘터리’라는 장르의 탄생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정 팀장은 “기존 다큐멘터리는 제작진이 의도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구조일 수밖에 없었다”며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최대한 쌍방향적인 특성을 살려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명견만리>는 오는 12일과 13일 김난도 교수가 출연하는 첫 방송을 시작으로, 26일에는 김현유 구글 상무와 서태지 편, 4월 2일에는 영국인 북한 전문 기자 앤드루 새먼 편 등이 방송된다. 이후 김영란 교수, 장진 감독 등도 출연할 예정이다.
 
<명견만리>가 강연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까. 과연 어떤 결과물을 선보일지 관심이 모아진다.
▲ KBS <명견만리>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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