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도 토할 수 없는 이 시대 청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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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도 토할 수 없는 이 시대 청춘에게
[PD의 세상읽기] KBS ‘추적 60분-열정페이’
  • 조영중 KBS 기획제작국 PD
  • 승인 2015.03.13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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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추적60분-열정페이’ⓒKBS
‘열정페이’라는 말이 있다. 열정이 있으니 페이(Pay)는 적게 줘도 된다는 식의 생각을 꼬집은 신조어다. 청년 노동착취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정페이라는 신조어를 계기로 최근 주목을 받았다. <추적 60분> ‘당신의 열정을 헐값에 삽니다’편(방송 2015년 3월 7일)을 취재하면서 여러 청춘을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예상과 달리 사회의 열정페이에 분노하고 있었다. 옳지 않다는 거다. 하지만 열정페이가 자신의 문제가 될 때,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사회의 열정페이는 옳지 않지만, 나의 열정페이는 기회만 얻을 수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열정페이를 제의받았을 때, 지금 당장 이를 거부할 현실적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게 가장 슬프다”는 한 구직자의 말에 그들의 현실이 담겨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마지노선, 즉 최저임금 어쩌고는 그들에게 너무 먼 이야기다.

이번 방송을 취재하던 중 우연히 필립 로스(Philip Roth)의 <울분Indignation>이란 소설을 읽게 되었다. 1950년,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시기, 한 청춘이 느꼈던 울분에 관한 소설이다. ‘인생이란 그런 거야.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영원한 비극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거’라며 자신의 일상을 옥죄는 아버지의 걱정,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라는 어머니의 강요, 언제 전쟁터에 끌려갈지 모른다는 징집의 공포, 여기에 오하이오에 있는 와인스버그 기숙사 대학교의 숨 막히는 도덕적 규율까지, 그야말로 주변의 모든 것이 마커스의 삶을 옥죈다. 자신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주변의 힘 앞에서 마커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이성과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마커스의 학교 동료, 그러니까 소설 속 미성숙한 청춘들은 자신의 자유를 옥죄는 주변의 환경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채, 결국 엉뚱한 사고를 친다. 여학생 기숙사를 점거하고, 속옷을 훔치며 집단 폭동을 일으킨 것. 당시 그들이 외친 집단 구호는 “팬티! 팬티! 팬티!”였다. ‘이따금씩 저음의 남성적인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와 지배적인 도덕적 규율 체계에 순응하지 못하겠다는 아이들을 대변하여 그들의 진심을 거칠고 크게 요약했다. “우리는 여자를 원한다” 그러나 군중 가운데 다수는 팬티로 기꺼이 만족했다.’(<울분>, P.215) 그들은 자신을 옥죄는 규율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마음대로 행동함으로써 잠시나마 자유의 기분을 느껴보고자 했다. 물론 방향성도 목표도 없는 청춘의 저항은 너무나 쉽게 진압된다.

195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마커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내가 만났던 청춘의 얼굴이 오버랩 됐다. 청춘은 늘 기성세대의 호구였으며,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자 좀 씁쓸해졌다.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라며 SNL 작가 유병재는 오늘을 개탄했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래 왔다. 한 대학가 앞에선 아르바이트 일자리도 수습이란 핑계로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문화가 퍼져있다. 사실 1년 이상 고용을 전제로 3개월간 수습 명목으로 최저임금의 90%를 지급할 수 있는데, 업주들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쓰며 수습을 남발하고 있었다. 실제로 신입생 대부분은 아르바이트에도 수습이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최저임금 이하로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생도 많았다. 청춘은 어리기 때문에 쉽게 당하고 있었다.

▲ KBS ‘추적60분-열정페이’ⓒKBS
아이에서 어른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단계를 세상은 인정하지 않았고, 과도기에 놓여있는 청춘은 스스로의 방향성을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그 과정에서 1950년대 미국은 무시무시한 도덕적 규율로 과도기의 혼란을 억눌렀으며, 2010년대 한국은 열정페이로 과도기적 노동을 싸게 구입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청춘이니까 아픈’ 셈이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소설의 제목 <울분>. 그러니까 50년대 미국의 대학생에겐 자신의 자유를 옥죄는, 외부의 위협이 분명했으며, 그들은 그 힘에 대해 속으로건, 여학생 기숙사를 점거하는 방식이건 울분을 표출할 수 있었다.

2010년대 한국은 여기서 차이가 난다. 내 삶은 뭔가 팍팍해지고 있는데, 악당이 보이지 않는다. 최저 임금도 안 주는 사장님? 사장님이 일하라고 강제한 적은 없다. “월급은 없는데 한 번 일해 볼래”라는 말에 마치 주문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인 건 자기 자신이다. 때문에 악당은 돈 안 주는 사장님이 아니라, 사장님의 주문 안으로 청춘을 밀어 넣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열정페이’라도 받기 위해 애쓰도록 만드는 손이 진정한 악당인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다.

▲ 조영중 KBS PD
<울분>의 마커스는 학생과장에 러셀을 이야기하며 응수했지만, 순응이 경쟁력이 된 시대엔 러셀을 얘기할 대상도, 러셀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어졌다. 하여 화는 나는데 화낼 대상이 없어졌기에, 청춘은 냉소를 보낸다. 냉소는 지금의 시대를 버티게 해주는 청춘의 마지막 힘이자, 가장 밑바닥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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