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의 역설’ 타개책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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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신료의 역설’ 타개책 있을까
[위클리포커스] 대형 선거 없는 2015년, 수신료 인상 논의 기지개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5.03.1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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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수신료 인상 카드를 다시금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논의를 담당하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위원장인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잇달아 4월 임시국회에서의 수신료 인상안 논의 재개 의지를 밝히고 나섰다.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4000원으로 인상하는 수신료 인상안은 지난해 2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의결을 거쳐 현재 국회에 머물러있다.

홍문종 의원은 지난 12일 tbs FM <퇴근길 이철희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수신료 인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 “BBC(영국)나 NHK(일본)의 8분의 1, 5분의 1 수준의 수신료로 KBS가 세계의 한류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겠냐는 걱정들이 많다”며 “(국회에서) 4~5월 논의를 개진해 10월 이전엔 해결해야 KBS도 여러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또 홍 의원은 지난 13일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4월까지는 미방위에서 수신료 인상안에 대해 결론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이 올해 수신료 인상 논의를 다시금 꺼내들 것이란 전망은 이미 지난해부터 나왔다. 지방선거(2014년)와 총선(2016년) 사이 굵직한 선거가 없는 시기인 만큼, 올해를 수신료 인상의 적기로 판단할 것이란 예측이 가능했던 까닭이다. 그리고 여당은 정말로, 방송계 안팎의 예측 그대로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말하기 시작했다.

 

▲ KBS가 2013년 6월 24일 이례적으로 사보 특보를 발행하고 수신료현실화를 위해 전사적 활동에 돌입할 것을 밝혔다. ⓒKBS 사보 특보

수신료 인상을 위한 첫 관문 ‘공정성 논란’

여당에 앞서 방통위는 지난 1월 27일 올해의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수신료 인상을 언급했다.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 공정성 등과 같은 공적책임 제고가 이유다. 수신료 인상에 찬성하는 여당과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같은 주장을 한다. 전통적인 방송학 이론에서도 수신료 제도의 의미에 대해 시민을 공영방송의 주체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공영방송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정치적 독립과 다양성 등이 향상을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수신료 제도의 운영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몇 번의 정권 교체를 거치면서 수신료 제도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공정성을 완전히 보장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일례로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던 2010년 12월 8일 KBS에선 <추적60분> 방송이 돌연 보류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해당 편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의 문제를 짚는 내용이었다. 당시 KBS 사측은 12월 10일 예정된 부산지방법원의 낙동강 사업 판결 선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 연기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송 보류 결정 이후 언론노조 KBS본부(이하 새노조) 주최로 열린 규탄대회에서 엄경철 당시 새노조 위원장은 “회의 자리에서 사측 간부로부터 청와대 얘기가 자꾸 나왔다”며 “수신료 인상 얘기도 꺼내며 어쩔 수 없지 않냐고 하더라”고 밝혔다. 수신료 인상 논의를 앞두고 정부·여당을 자극할 만한 방송을 자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과 의혹이 KBS 내부에서조차 나올 정도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또 유원중 당시 KBS 기자협회장은도“수신료 인상이 KBS 내부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2013년 KBS 방송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방송문화연구 제25권에 게재한 논문 ‘방송수신료 제도의 개혁에 관한 연구’에서 이런 상황을 “수신료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 예속된 경우에 수신료 제도는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예속성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하며 “이런 수신료의 역설은 (BBC와 NHK 등) 세계 공영방송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에 시청자들은 보다 높은 공정성과 공익성 등을 기대한다. 하지만 KBS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비례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지난해 12월 미디어미래연구소가 한국언론학회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응답자 501명)에 따르면 KBS는 신뢰성 5위, 공정성 6위, 유용성 4위를 기록했다. 신뢰성와 유용성 부문 1위는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인 JTBC였고, 공정성 부문 1위는 보도전문채널인 YTN이었다. 또 지난해 9월 <시사저널>이 각계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KBS의 신뢰도는 2013년 38.7%에서 2014년 25.8%로 하락, <한겨레>(27.5%)에 뒤지며 2위로 밀려났다.

 

▲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지난 2014년 5월 1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KBS신관 5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KBS기자협회 긴급 총회에 참석해 KBS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뉴스라인> 화면캡처

‘대통령만 보고 가는 KBS’ 오명 벗을 수 있을까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인 KBS가 다른 방송들보다 높은 공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원칙을 가로막는 건 결국 현재의 KBS를 운영하는 구조, 즉 KBS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 논란으로 사임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같은 해 5월 9일 JTBC <뉴스9>와의 인터뷰에서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 대해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권력은 당연히 KBS를 지배하려고 할 것’이라고 지적한 이유이기도 하다.

KBS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법에서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은 KBS 사장 임명권임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권 안에 해임권도 있다는 일방의 해석을 앞세우며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한 전례도 있다. 이후 법원에서 정연주 사장 해임 결정이 ‘위법’임을 확인했지만, 시청자들이 KBS를 ‘김비서’가 아닌 ‘고봉순’으로 부르던 시절로 돌아갈 순 없었다.

때문에 야당에선 수신료 인상에 앞서 KBS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선부터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장 선임 시 여권의 입김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담보하는 특별다수제 도입 등의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공약한 내용으로, 여야는 2013년 공정방송특별위원회를 구성해 8개월 동안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약의 이행에 대해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고, 이런 분위기 속 여당은 특별다수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에 찬성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KBS 안팎에선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수신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26일 KBS가 후원한 한국언론학회의 ‘공영방송 재정안정화 기대효과’ 토론회에서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교수는 독립성이 보장된 수신료산정위원회와 같은 평가기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 교수는 “수신료산정위원회만이라도 최소한 실험적으로 여야 동수로 구성한다거나 특별다수제로 표결하는 방식의 거버넌스 구조를 지향한다면 (수신료 제도의) 정쟁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타 거버넌스 구조 개혁으로 이어지는 실험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KBS 수신료 인상안을 검토했던 방통위도 국회에 수신료 인상안을 넘기면서 독립적인 수신료 산정위원회 구성 등을 주문한 바 있다.

 

▲ ⓒ미디어미래연구소

KBS 공정성·독립성 담보 못하는 수신료 논의의 미래는?

공영방송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신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수신료 징수 방안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시민을 공영방송의 주체로 만들어 정치·경제 권력의 개입을 차단하고자 했던, 당초의 수신료 제도의 의미를 일깨우기 위해선 TV 수상기가 있는 가구에 대해 전기요금과 함께 수신료를 강제로 납부하도록 하고 있는 현재의 구조를 깨야 한다는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는 지난해 7월 1일 <PD저널>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시청자들이 납부 거부를 할 수 있는 물리적 기회마저 없다면 공영방송은 객관적으로 볼 때 시청자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시청자인 국민이 직접 사장을 선출하지 않는 이상 정치권력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게 공영방송의 구조인 만큼, 이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신료 징수 방안의 개선을 고민할 때라는 주장이다.

계속 정권을 창출하고픈 정치 세력과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신문 시장의 이해가 결합해 탄생했다는 평가를 받는 종편의 등장 이후 그렇지 않아도 모바일·인터넷 등과의 경쟁 속에 자리를 잃고 있던 지상파 방송의 위기는 가속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영방송의 생존을 위해선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선 정파를 떠나 여야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공감에도 해법을 마련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 KBS에 대한 기대가, 그리고 수신료 인상으로 인해 혜택을 볼 집단을 어디로 상정할 것인지에 대한 속내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현실, 즉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이 수신료 제도를 마련했던 당초의 취지대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가 계속될 경우 시청자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렇게 떠날 시청자들을 기다리는 방송 미디어 자본은 많다. 네 곳이나 되는 종편 사이에서 차별화를 꾀하던 JTBC가 한국 언론의 공정성을 상징하는 인물과도 같은 손석희 보도담당 사장을 통해 현재 구매력이 있고 더 긴 시간 소비자로 남을 수 있는 젊은 층을 상대로 뉴스 시청률은 물론 채널 신뢰도를 올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수신료 인상을 통해 공영방송 스스로 그리는 공영방송의 미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미래로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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