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비평 KBS-2TV 「진달래꽃 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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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 탈피’의도 불구 전반적 한계 여전

|contsmark0|저어기 저기에는 늑대가 산다네∼. 북한을 소재로 한 그동안의 드라마를 보면 하나같이 반공반북이고, 안보였고, 비슷비슷한 이야기 구조에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의 지능지수 낮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음을 누구든 인정할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드라마 「진달래꽃 필 때까지」(이하 「진달래꽃」)의 제작진들이 그동안의 획일성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북한드라마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점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또한 북한의 폭파위협 소식 등은 제작과정에서부터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특별히’ 불러일으키는 요인이기도 했는데, 북한드라마! 그래, 새로운 북한드라마는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비평모임’에서도 채널을 고정시켰다. “춤이란∼, 진짜 춤이란 자유롭게 이렇게 마음껏 추는 거야∼”1부가 마무리되면서 한 무용수(김청 분)가 독백처럼 흘리는 춤에 대한 진지한 성찰 장면은 북한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것이라는 낙관을 불어넣어 주었다. 북한사회에서 예술가들의 삶은 어떻고, 그들은 또한 어떻게 예술을 이해하고 있는지, 춤이라는 하나의 예술행위와 그 춤꾼들의 삶을 통해 북한이라는 사회에 한발 다가설 수 있도록 이야기가 짜여졌을 것이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상은 짧게 끝났다. 북한드라마의 새로운 전형으로서는 물론 일반멜로물로서도 상당한 무리와 한계를 안고 있음을 이내 확인하는 슬픔이 찾아온 것이다.우선 「진달래꽃」은 북한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북한사회를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들을 상당히 빈곤하게 다루고 있었다.남한사회와 구별짓는 가장 커다란 차이점으로서 그들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공산주의란? 자본주의는? 그들의 주체사상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피상적인 접근조차도 시도되지 않고 있었다. 쉬이 접근하기에는 그 깊이가 너무 무거웠을 거라 이해도 해보지만 반면 북한사회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여과과정없이 그대로 되풀이되는 대목에서는 애초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김정일과 김경희 등 권력 최고위층들의 인물묘사는 여전히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고 있었고, 그들의 정책 및 의사결정구조는 마피아집단과 같았다. 간부들의 독단 한마디에 모든 국가의 대사들이 좌우되었다. 북한체제에 대한 모순이나 고발내용도 권력층들에게 농락당하는 여인네들의 슬픔만 있을 뿐 체제 자체가 갖는 모순이나 문제점은 없었다. 이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드물었고, 다만 주명희와 강룡남이 엮어지는 배경으로만 잠시 이용되었을 뿐이다. 북한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은 무엇이고 좋아하는 놀이는 무엇인지 북한사회 일반인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은 한 장면, 한 마디의 대사에서도 엿볼 수 없었고, 그저 북한식 어색한 말투 하나로 모든 걸 북한사회라 단정짓고 있었다. 남한과 다른 북한적인 요소들,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정보와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음은 물론 어느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한 촌뜨기 무용수의 출세과정과 권력층의 부패상만 펼쳐져 있었다.이는 기존 북한드라마와 하나 다를 바 없는 그대로의 답습이었고, 특히 권력층을 묘사하는 화면구도와 그 배경설정이 이미 그들에 대한 희화화 의도가 충분히 실려있음을 감지하는 대목에서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제작진들이 이미 북한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전제하고 있음을 확인한 대목인데, 또다른 사회에 대한 접근은 균형적이고 선입견없는 출발일 때 가장 객관적인 내용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다음으로 8부작이라는 드라마의 전체규모에 비해 담아내려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어느 이야기도 설득력있고 밀도있게 전개시키지 못하는 한계로 이어졌다.북한출신 무용수 신영희를 모델로 했다는, 한 여성무용수의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삶과 붉은자본가로서 강룡남이 겪는 갈등과 탈출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삼각관계, 북한 내 권력집단간의 암투, 북한사회의 인권유린과 체제모순을 보여주고 진정한 안보의식을 심어주겠다는 애초의 내용설정이 규모에 비해 너무 많았다. 더욱이 그 내용들이 비중의 편차없이 평이하게 짜여지면서 8부작이라는 좁은 틀에 억지로 묶어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야기 또한 설득력있는 풀이가 아닌 우연의 연속으로 꿰어맞추고 있었다.삼각관계를 이루고 있는 한지욱의 이야기에 이르면 황당할 정도이다. 주명희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온갖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던 그가, 그래서 첩보장교로서 탁월한 인정을 받아온 그가 그렇게도 쉽게 사상적으로 무너져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맥락은 없고 결론만 있었다. 여기서 「진달래꽃」은 그동안 식상해 마지않았던 반공드라마로 전락하고 만다.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전반적으로 인간에 대한 접근을 너무 소홀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등장인물들의 삶에 대한 깊이나 고뇌가 전혀 그려지지 않고 있었다. 심리묘사는 결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두마디의 대사처리와 짧은 독백, 표정 등으로도 얼마든지 인물들의 심리를 그려나갈 수 있는 것이 tv드라마의 장점인데, 웬지 이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인간으로서 갖는 보편적인 심리와 고뇌가 전혀 없었다. 인간 아닌 기계들, 냉혈인만 존재한다는 식의 북한사회 사람들에 대한 또다른 표현이라기 보다는 드라마가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요건마저 놓치고 있다는 평가였다. 아울러 전반적으로 주요소재에 관한 고민의 흔적이 상당히 부족했다. 우선 춤에 대한 열정과 능력을 지닌 한 무용수의 이야기가 주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춤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는 점은 참으로 해괴한 아이러니였다.1부를 끝으로 춤이라는 소재는 그 존재가치가 실종된다. 물론 주인공 주명희는 여전히 무용수이고, 주변엔 많은 다른 무용수들이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 속에 춤은 없다. 남포라는 작은 마을에서 평양으로, 피바다로, 만수대로 거푸 상승하면서 그녀는 최고의 무용수로 발탁되었고, 최고의 영광을 누리는데도 그녀가 보여주는 춤에 대한 식견이나 고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녀는 기쁨조가 되기까지 그녀의 눈으로 읽어가는 북한 고위층들의 부패상만 하나하나 고발할 뿐이다. 북한 최고의 예술집단이라는 피바다와 만수대의 무용지도원들도 그들을 짓누르는 사상만 있었지 춤과 춤을 위한 고뇌는 전혀 없다. 동료 무용수들 역시 묘한 텃세만 부릴 뿐 춤과 인생에 대한 고민은 어느 누구도 하고 있지 않았다. 광주민주화운동과 아웅산사건, 김현희 사건 등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남한 쪽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단정짓고 있었는데, 이는 드라마의 요건상 적합하지 못하다는 지적이었다. 웬일일까? 기존의 획일적인 반공·반북드라마를 벗어나 제대로 된 북한드라마를 그려나가겠다는 것이 제작진들의 야심찬 의도였는데, 이리도 쉽게 내용없는 반북드라마로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가 보여준 상상력의 한계이고, pd의 역량상의 문제인가?이유는 분명했다. 제작진들이 알고 있는 북한은 이게 전부였던 것이다. 제작진들이 아무리 획일화된 반북드라마를 혐오하고, 북한드라마를 밀도있게 고민한다 할 지라도 그들의 사고에는 역시 ‘저어기 저기에는 늑대가 산다네∼’ 식의 반북의식만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을 뿐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하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제작진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들 전체의 문제였다. 북한이란 어떤 곳일까? 진지하게 더듬어보아도 배고픔에 지친 아이들의 퀭한 눈동자만 어른거릴 뿐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부분적인 사실들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홍수 피해와 배고픔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엉뚱한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아무려면 그렇게 배가 고플까? 그래도 북한은 자립경제라는데, 홍수 한번 났다고 저렇게까지 굶어죽어갈까? 혹시 우리 체제가 우월하다는 걸 과시하기 위한 정부 관계자들의 넌센스적 홍보프로그램은 아닐까? 생각의 바탕이 불순한 탓은 아니었다. 그만큼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가 제한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예였다. 문제는 그들의 폐쇄성 이전에 우리 역시 북한 관련 서적을 소지하기만 해도 국가보안법으로 고발되는 현실인 것이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우리 역시 아는 바 없고, 알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그저 무식하게 반북감정을 키워야만 하는 사회에 산다는 것이다. 이게 전체주의라 공격해 마지않는 북한사회와 다를 바 무엇일까? 드라마 「진달래꽃 필 때까지」가 보여준 한계는 그대로 우리 사회의 한계에 근거한다. 결과는 마찬가지로 안보상업주의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기존의 기계적인 반북드라마를 벗어나려 기획되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진정한 북한드라마를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북한에 대해 열어야 할 많은 것들이 놓여있음을 ‘비평모임’은 새삼 확인하였다.
|contsmark1|pd연합회 방송비평모임 정리 : 조정하|contsmar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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