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캠 키드’ 남태정 PD가 말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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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수가 소개하는 노래는 같은 노래지만 다르게 들린다”

▲ 3월 19일 25주년을 맞이한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개인적으로 ‘배철수’라는 사람 가까이에 있을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해요. 저는 ‘배캠 키드’라고 할 수 있는데, 청취자가 자라서 라디오 PD가 된 거죠. 적어도 음악을 좋아하는 제 또래에게는 음악 PD를 꿈꾸게 한 대표적인 사람이 배철수씨예요. 제가 라디오 PD라는 꿈을 갖도록 하는데 배철수씨는 그 중 70%의 영향력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어요.”

1990년 3월 19일, 정확히 오늘(19일)로부터 9132일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이하 <배캠>)가 시작됐다. 문화적으로, 음악적으로 척박했던 1990년. DJ 배철수의 등장은 당시 세대에게는 문화에 대한 어떤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와도 같았다.

오로지 ‘팝음악’으로만 가득한 2시간. 친절하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음악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는 DJ 배철수.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은 <배캠>에 열광했고, ‘배캠 키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배캠>을 통해 음악을 꿈꾸었다.

남태정 MBC PD(<두시의 데이트> 연출. 현재 일본 연수 중)도 이 같은 ‘배캠 키드’ 중 한 명이다. 나름 성공한 ‘배캠 키드’랄까? 경외감마저 느꼈던 ‘배철수’가 있는 MBC에 입사했으니 말이다. 거기다 2007년부터 1년간 <배캠>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PD저널>은 지난 12일 남 PD를 만나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배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라디오계에 있어서 <배캠>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들어봤다.(아래 동영상은 <배캠> 오프닝 곡인 Vienna Symphonic Orchestra Project - ‘Satisfaction’)

“DJ 배철수의 등장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남 PD는 배철수의 등장을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배캠>이 등장한 1990년, 남 PD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 당시에는 가요보다는 팝 음악을 많이 선호하던 시기였어요. <김광한의 팝스 다이어리>, <황인용의 영팝스> 등 팝 전문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배철수 DJ의 등장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죠. 보통 DJ라고 하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편안하고 친절했는데, 배철수 DJ는 야수 같은 느낌이랄까?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에 추진력과 강렬함 같은 게 있어서, 같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던 기억이 있죠.”

배철수는 그룹 ‘활주로’와 ‘송골매’ 멤버로도 유명한 ‘가수’다. 그것도 록 가수. 배철수가 본인이 지난 12일 <배캠> 2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듯이 당시 그의 ‘롱런’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DJ 트렌드에 맞지 않는 까칠하고 미숙한 DJ였던 것. 그러나 <배캠>이 보여준 음악, DJ 배철수의 해석, 그리고 새로운 시도는 많은 청취자에게 ‘신세계’를 열어줬다.

“<배캠>이 남달랐던 것은 굉장히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는 점이에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코너가 ‘긴 곡 코너’라고, 보통 노래가 4분 내외의 길이인데 ‘긴 곡 코너’에서는 최소 길이가 15분 이상인 음악만 틀어줬죠.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가 영국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샤인 온 유 크레이지 다이아몬드(Shine On You Crazy Diamond)’를 LP로 틀었다는 거예요. 그때가 LP와 CD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는데, 암튼.

‘긴 곡 들어가겠습니다’라면서 ‘샤인 온 유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를 틀은 적이 있어요. 이 곡은 9개의 파트로 구성된 25분 가량의 곡이고, LP A면에는 5개 파트, B면에는 4개 파트가 담겨 있는 말 그대로 ‘대곡’이죠. 이걸 중간에 LP판을 뒤집어서 다시 음악을 틀어주는데, 이게 라디오에서는 사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구성이잖아요.

뭐랄까, 문화적 충격이랄까?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신세계를 만난 느낌이었어요. 그것도 메인 시간대인 오후 6시에 말이죠. 내 또래 청취자에게는 ‘이런 세계가 있구나’라며 음악에 대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DJ로서 배철수가 갖는 매력은 무엇일까?

남 PD는 “배철수 DJ는 음악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선구자’ 같은 DJ라고 할 수 있다”며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에게 배철수 DJ는 ‘음악의 지침서’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남 PD는 인터뷰 동안 배철수 DJ를 ‘배 선배’라고 칭했다.

“100% 확언하건데 배 선배는 라디오 DJ로서의 한국 라디오계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끼쳤어요. 멘트 하나하나, 노래 하나하나가 말이죠. 배 선배가 소개하는 노래는 같은 노래지만 다르게 들려요. 신기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더라도 배철수 선배가 어떻게 멘트를 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강남스타일’로 확대됩니다. DJ로서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죠. 다시 말해 배철수의 매력이 곧 라디오 매력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남다른 건 곡을 해석하고 소개하는 능력만이 아니라고 남 PD는 말했다. <배캠>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해외 아티스트 인터뷰. 1990년대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한 한국을 찾는 해외 아티스트가 1순위로 찾는 프로그램이 <배캠>이었다고 한다. 지금같이 해외 아티스트의 방한이 잦은 때야 모르겠지만, 당시는 해외 아티스트 한 명 보기가 힘든 시절이었다.

“<배캠>의 인터뷰는 남달랐던 거 같아요. 보통 인터뷰는 좋은 이야기만 하려고 하고, 인터뷰 대상의 기분을 맞추려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배 선배는 인터뷰도 속 시원하게 했죠. 아니면 아니라고 하는 배철수의 솔직한 성격, 배철수의 진가가 인터뷰에서 특히 잘 살아나는 거죠. 그리고 배 선배가 갖고 있는 지식 덕분에 수준 높은 대담 수준의 인터뷰를 들을 수 있었죠.”

실제로 <배캠>에는 지금까지 제이슨 므라즈, 리한나, 메탈리카, 팻 메스니, 비욘세, 리키 마틴, 딥 퍼플, 어셔, 브리트니 스피어스, 린킨파크, 윌 스미스 등 수많은 해외 아티스트가 출연했다.

“물론 해외 아티스트가 배철수를 직접 알고 오지는 않죠. 음반사 마케팅 담당자가 배철수라면 가수의 특징을 가장 잘 어필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거예요.”

▲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DJ 배철수가 지난 12일 열린 <배캠> 2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나에게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내 삶 그 자체”라고 의미를 말하고 있다.
1996년 MBC 입사 이래 바라본 배철수, 어떤 사람일까?

남 PD가 입사한 1996년, 배철수는 44세였다. 남 PD는 그때의 배 DJ는 “까칠했다”고 회상했다.

“제가 입사했을 때 배 선배가 마흔 정도였는데, 그때 사실 좀 까칠했죠. 머리도 꽁지머리를 하고. 청취자와의 논쟁도 서슴지 않았어요. 이건 마치 아무리 못된 손님이 오더라도 친절해야만 하는 서비스 종사자들의 비애가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시대에, 배철수 DJ는 신념이 확고해서 못된 손님하고는 과감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까요?

지금은 오히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유연해졌어요. 하지만 그건 세상과 타협했다기보다는 조금 더 원숙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너그러움이 더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2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배철수는 “MBC 내 젊은 PD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자주 어울린다”고 말했다. 사실인지 물어봤다. 사실이란다.

“배 선배, 굉장히 털털한 아저씨예요. 농담도 좋아하고. PD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런데 배 선배하고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고수’라는 느낌이 나요. TV 트렌드를 읽어 내는 걸 보면 어떤 때는 현업 PD보다 앞서 있는 부분이 많아서 놀라게 되죠. 젊은 PD들이 배 선배한테 고민 상담도 많이 하고 있어요.”

남 PD는 배철수가 DJ로서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배 선배와 해마다 음악 페스티벌을 같이 가는데, 배 선배는 매년 현장에서 본 것을 방송을 통해 청취자들과 공유해요. 페스티벌에 대한 나름의 평가도 하고. 이처럼 배 선배는 음악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지금도 배 선배가 고집하는 게 음악을 CD로 틀고 곡 전체를 다 감상한다는 거예요. 요새는 시스템이 바뀌어서 라디오 PD가 큐시트를 보고 컴퓨터로 음악파일을 찾아서 올리는데, 전곡을 CD로 틀고 감상하는 프로그램은 MBC 라디오에서 <배캠>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죠.”

▲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지난 2014년 세계 최고의 페스티벌 중 하나인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을 국내 최초로 방송했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매년 6월 셋째 주 금~일, 영국 서머싯에서 열리는 축제로 44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홈페이지
하루 2시간씩 만 25년. 1만 8000시간 이상 방송. <배캠>과 배철수.

하루 2시간씩 만 25년. 총 1만 8000시간 이상 방송, 영화(2시간 기준) 9125편 분량. 동일 타이틀, 동일 DJ의 음악 방송으로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 매일매일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배캠>과 배철수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전에 남 PD가 인터뷰 도중 한 개의 에피소드를 기억 속에서 꺼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10년 전이었나, 배 선배께 선물을 하나 드린 적이 있어요. 1992년 <배캠>에 영국 밴드 ‘데프 레파드(Def Leppard)’의 리더인 조 엘리엇하고 베이스의 릭 새비지가 출연한 적이 있죠. 그때 제가 카세트테이프로 방송을 녹음했어요. 그리고 우연히 그 카세트테이프를 집 창고에서 찾게 돼서 배 선배한테 선물로 드렸어요.

방송사에 아카이브가 생긴 건 2000년대 이후의 일이고, 그 이전 오디오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요. 진짜 혈기왕성하고 두려울 것 없는 젊은 배철수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선물로 드렸더니 본인도 감회가 새로우신 것 같았고, 어느 선물보다 좋아하셨죠.

제 생각에는 저 같은 ‘배철수 키드’, ‘배캠 키드’가 많다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카세트테이프에 라디오방송 녹음을 많이 하던 때죠. 그때 방송 자료는 MBC에도 없는, 청취자 개인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자료죠. 만약 제가 할 수 있다면 옛날 자료들을 모아서 30주년 특집을 하면 의미도 있고 재밌을 거 같아요. 청취자들께서 보내주신다면 말이죠. 그냥 제 꿈이에요.(웃음)”

남 PD는 벌써부터 30주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의 배철수로 봐서는 30년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 남태정 MBC PDⓒMBC
“25년이라는 것은 한발 한발 뚜벅뚜벅 가야 하는 작업인데, 매체가 다양해지고 매체 속도도 빨라진 지금 시대에 이 같은 DJ를 만난다는 것을 불가능할 거예요. 제가 농담 삼아 배 선배한테 그런 이야기도 했어요. 그래미(그래미 어워드.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 아카데미가 해마다 우수한 레코드와 앨범을 선정하여 주는 상)에서 배 선배한테 공로상 내지는 특별상을 줘야 한다고 말이죠.

배철수는 한국이라는 문화적으로, 음악적으로 척박한 땅에 팝음악을 대중화한 사람이에요. 제가 음악 관계자 1만 명의 서명을 받아서 그래미에 제출하겠다고 했더니 배 선배는 쓸데없는 말이라고 했죠. 하지만 나는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봐요.

<배캠>은 최소한의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꼭 있어야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흔히 이야기하는 청취율 게임에서 봤을 때 <배캠>은 절대적인 승자는 아니에요. 그러나 청취율 이면에 있는 영향력은 단순하게 숫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굳이 <배캠>과 배철수의 영향력을 숫자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무한대? 숫자의 의미를 넘어서는 숫자가 될 수 있다고 봐요.”

25주년? 제가 보기에 배 선배는 30년도 거뜬히 할 거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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