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체’ 인기에 덜컥 겁부터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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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EBS ‘하나뿐인 지구-강아지 공장을 아시나요’ 편

▲ EBS ‘하나뿐인 지구- 강아지 공장을 아시나요?’ⓒEBS
‘한번 들어가면 평생 갇혀 사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선 죽을 때까지 새끼를 낳아야 하죠. 사람들은 모르는 어미 개의 이야기입니다.’ 프로그램의 시작이다.

내레이션을 다시 한 번 읽어 내려간다. ‘사람들은 모르는 어미 개의 이야기’ 물음표가 생긴다. ‘사람들은 모르는…정말 사람들은 모를까? 모른 척은 아닐까...?’ 생각은 생각을 낳지만 이쯤 고민을 접었다. 문제의식은 보는 이들이 직접 느끼길 바랐던 것 같다.

EBS <하나뿐인 지구> ‘강아지 공장을 아시나요?’(3월 13일 방송)편은 그런 마음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삶이 고달프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이때에 우리의 이타심은 어디까지 머무를 수 있을까? 국내 인구에 5명 중 1명이 반려견을 키운다고 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불편한 이야기에 관심이 얼마나 미칠 수 있을지 고민이 앞섰다. 하지만 지나친 우려였을까?

방송 이후에도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TV캐스트에서 연일 실시간 동영상 1위를 하며 시청자의 관심을 끊임없이 받았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제작 후기를 쓰게 되었는데 멋진 비사를 술술 써 내려가면 좋으련만, 생각하고 생각해보지만, 제작할 때의 고민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야겠다.

‘강아지 공장’ 기획 회의 때 이야기이다. 강아지 번식장이 <하나뿐인 지구>에서 다루기에 충분히 가치 있는 소재라 여겼지만 담당 작가에게 건넨 첫마디는 부끄럽게도, “문제를 말해야 하는 거 알지만, 전 안 하고 싶어요”라는 멋쩍은 너스레였다.

반려견 시장의 거대한 악순환, 겁부터 덜컥 난다. 이 중요한 문제를 프로그램을 통해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작년 한 해 <다큐프라임>에서 1년 꼬박, 그 후에 <하나뿐인 지구>에서 새롭게 제작하는 첫 편이기에 걱정이 더했다. 독수리 5형제처럼 <하나뿐인 지구>를 지켜줄 준비된 PD가 그 몫을 더 잘해내지 않을까 핑계도 대본다.

사실 본인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미와 목표를 향해 가열 차게 달리는 PD이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한 바람보다는 선무당이 잘못하다가 괜한 해를 가하지 않을지 그것만 경계하기에도 버거운, 여전히 갈 길이 먼 PD인듯하다. 이렇게 망설이는 못난 PD곁에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무서운 담당 작가가 있어 다행히도 덕분에 마음을 다잡는다.

먼저 동물보호단체들과 만남을 가졌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동물 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들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봐왔을까.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너무 먼 이야기로 느껴졌다. 경험하지 못한 보통의 사람이 갖는 마음인 것 같았다. 이 간극을 어떻게 좁혀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던 중 그들에게 공통으로 의아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 EBS ‘하나뿐인 지구-강아지 공장을 아시나요’ⓒEBS
“요즘 삼시세끼에 ‘산체’ 인기가 엄청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정말 무섭네요.”

산체가 인기가 많아 무섭다니? 이건 무슨 얘기인가. 이야기가 이어지며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예전에 상근이라고, 기억하시죠? 상근이는 그레이트 피레니즈라는 품종인데요. 사역견(수렵 이외의 각종 작업 또는 노동에 쓰기 위하여 사육하는 개)이라 금세 엄청나게 크고 키우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품종인데, 방송 나가면서 사람들이 분양을 받기 시작하고 그다음 해에 유기견 보호소나 길에 유기견으로 꽤 발견됐어요. 그래서 요즘 산체 인기를 보면 겁부터 나죠.”

생각하지 못했다. 산체의 분양가가 100만원을 호가한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어도 그것에 관한 이야깃거리일 뿐 이러한 현상에 대한 고민은 별다르게 없었으니 말이다.

‘강아지 공장을 아시나요?’ 편은 대중적 이슈를 통해 거리감 없이 문제의 화두를 던지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프로그램은 설명에 집중하기보다 현장 상황 그대로를 바라보는 구성 방식을 취했다. 거창하고 심오한 메시지는 없을지 모르지만, 시청자는 스스로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주었다. 그렇기에 방송 이후 지금의 반응 또한 따스한 눈으로 프로그램을 해석해준 시청자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하나뿐인 지구> ‘강아지 공장’은 후속편을 준비 중이다. 방송 날짜는 추후 확정될 예정이다. 이번에는 더 깊은 고민을 해보려 한다.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긴 어렵지만 지난 편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하는 못 다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불편한 진실에 가까이 갈지 모른다. 하지만 공장에 갇혀 힘들어하는 강아지들 중 단 몇 마리라도 따뜻한 봄날을 맞을 수 있길 바라며 다시 한 번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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