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PD들은 왜 단막극을 요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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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 리턴즈 ③] KBS ‘드라마 스페셜’ 홍석구 CP 인터뷰

▲ 2015년 KBS <드라마 스페셜> 봄 시즌 2편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KBS
KBS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이 시즌제로 돌아왔다. 현재 봄 시즌(시즌1) 4편 중 2편이 방송된 가운데 <드라마 스페셜>은 작품성과 대중성 면에서 모두 호평을 받고 있다. 2편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는 동시간대 2위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금요일 밤 시간대 편성은 지상파 드라마로서는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예능의 장벽을 뚫고 무사 입성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고맙다 아들아>, <눈길> 등 KBS가 올해 들어 선보인 특집 단막극에 이어 <드라마 스페셜>도 단막극의 저력을 입증한 셈이다.

그러나 단막극은 “정규 편성 해야 한다”는 PD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편에서 시즌제로 축소됐다. 단막극 편성 축소, 지원 축소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단막극의 미래는 어디서 찾아야할까? <드라마 스페셜> 홍석구 CP와 대화를 나눴다.
 
-단막극을 두고 대내외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단막극의 CP를 맡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텐데, 어떤가?
“단막극 CP가 쉽지 않은 자리인 것은 사실이다. 단막극을 사수하기 위한 내부 정치도 해야 하고, 개별 PD 한 명 한 명을 살펴야 하고, 읽어야 하는 대본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내부 영업도 해야 한다.(웃음) 이번 시즌에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김형석 PD에게 한 작품을 맡기기 위해 특별히 부탁을 하기도 했다.”
 
-캐스팅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제작비가 적기 때문에 인지도 있는 연기자들 입장에서는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게 사실이다. 얻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주로 신인 배우 위주로 캐스팅을 한다. 다만 단막극의 취지에 공감하는 배우들, 단막을 하던 무명 시절을 떠올리며 시간을 쪼개 도와주는 배우들이 있다. 단막극에 애정을 갖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출연료는 얼마 못 드리지만(웃음).”
 
드라마=only 오락?
 
▲ 2015년 KBS <드라마 스페셜> 봄 시즌 1편 ‘가만히 있으라’ⓒKBS
-단막극이 자꾸 위축되는 상황이 속상할 것 같다.
“내가 단막극 CP여서가 아니라, 드라마 PD라면 누구나 단막극에 대한 의지와 애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단막극을 자꾸 상업적인 잣대로 판단하려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드라마를 단순히 오락의 영역으로만 한정하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교양 프로그램에도 오락 위주의 프로그램, 정보 위주의 프로그램, 시사 위주의 프로그램 등이 있듯이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잣대만으로 묶어서 판단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그런 시각만으로 바라본다면 단막극의 존재는 당연히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드라마가 오락 이외의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나는 드라마야말로 어느 다큐멘터리보다도 더 진지하게, 모든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세상살이’와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장르다. 일각에서는 드라마나 예능은 그런 기능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드라마의 기능을 너무 편협하고 짧게 보는 시각이다. 최근 KBS에서 방영한 특집 단막극 <눈길>이 큰 호평을 받았다. 나는 KBS가 이런 특집극이나 단막극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특집 드라마들이 많았고, 특집 드라마들을 통해 사회에 화두를 던지거나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특집 드라마들을 많이 볼 수 없게 됐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런 역할들은 다큐나 교양이 충족시켜주면 되지 않을까?
“다큐멘터리와 교양 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하면 되지 않느냐, 드라마는 그냥 엔터테인먼트이지 않느냐, 이런 말도 물론 많이들 할 거다. 하지만 그건 공급자 관점의 생각이다. 수용자들, 시청자들은 다큐나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정보와 감동을 얻지만, 드라마의 형태에서 받게 되는 감동과 정보는 조금 다른 영역에 있다. 드라마는 파급력과 전달력이 훨씬 크고, 정서적으로 시청자에게 더 깊이 들어간다. 다큐, 교양, 드라마가 갖고 있는 힘은 각각 다르다. 그렇다면 그 힘을 고루 균형 있게 키워주고 합해주는 것이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그냥 엔터테인먼트, 광고, 상업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막극의 미래는 드라마의 미래···절박한 PD들
 
▲ 2015년 KBS <드라마 스페셜> 봄 시즌 3편 ‘머리 심는 날’ⓒKBS
-단막극 축소 이야기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결국에는 경영적인 이유일 것이다. 돈이 많이 들고 자본이 많이 필요하니까. 내가 생각해도 경영자 입장에선 반가울 리가 없다. 다른 드라마에 비해 편당 제작비는 얼마 안 되지만 시청률이 잘 안 나오고 광고도 잘 팔리지 않으니. 그래서 단막극은 사방이 적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드라마 PD들만 절박하게 요청할 뿐.”
 
-PD들이 그토록 절박하게 단막극을 요구하는 이유는 뭔가?
“단막극이 없다면, 드라마의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든 신예 발굴이 되지 않으면 확장·다양해질 가능성이 차단되고 계속 발전하기 어려워진다. 영화도 독립영화, 단편영화를 통해 꾸준히 자신을 알리고 경험을 쌓아온 감독이 큰 프로젝트도 맡게 되고 그런 거 아니겠나. 그런 과정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탄탄한 자기 내공 같은 걸 쌓을 새가 없다. 자기 생각이나 스타일을 만들지도 못한다. 결국 PD들은 주어진 것을 찍는 도구화된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도구화된 PD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것인가?
“단막극 제작 과정에서는 상업적인 부분과는 조금 떨어져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 자기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 등을 작품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그 과정이 있어야 이후 긴 드라마나 연속극 등을 만들 때도 자기 중심을 가질 수 있고, 그래야만 시청자에게 더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줄 수 있다. 드라마 PD로서 자기 생각을 확립하고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단막극의 그런 기능은 당장 눈앞에 단기적인 성과로 보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PD 이외 다른 스태프들의 사정은 어떤가?
“PD와 작가, 연기자, 스태프들 모두 마찬가지다. 누구든 계속 큰 규모의 드라마만 할 수는 없는 문제다. 큰 프로젝트 중간 중간 단막극이 있어야 산업의 항상성이 유지되는 측면도 있다. 단막극이 없으면 드라마 산업에 종사하는 스태프와 연기자 등이 유지, 생성되기 어렵고, 새로운 인재도 나오기 힘들다. 단막극과 큰 드라마를 번갈아 할 수 있는, 항상적으로 할 수 있는 산업의 토대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도 단막극은 있어야 한다. 드라마도 사람이 있어야 만들 수 있지 않나. 사람들이 다 떠난 다음에 어떻게 드라마를 만든단 말인가.”
 
-그래서 단막극을 드라마의 미래라고 하는 건가?  
“국가든 기업이든 산업의 한 분야든 미래비전이 있으려면, ‘다음 세대는 뭘 하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드라마에 대해서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단막극은 드라마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자꾸 단막극을 축소하려는 걸 보면 살아남을 생각이 없나 싶기도 하다. (웃음)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단막극을 할 필요가 없다. PD든 작가든 연기자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단막극을 할 필요가 없다. 당장 돈 되는 걸 하지, 뭣하러 단막극을 하나. 그래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나보다, 그래서 단막극에 대해 이런 태도인가보다. 당장의 성과, 당장의 수익에 급급한 게 답이 아닌데, 답답한 마음이다.”
 
“단막극의 미래는 공영방송의 미래”
 
▲ 2015년 KBS <드라마 스페셜> 봄 시즌 3편 ‘머리 심는 날’ⓒKBS
-그럼 해결책은 없을까?
“공영방송이 단막극을 이어나가야 한다. 단막극은 공영방송의 시금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KBS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왜 단막극이 공영방송의 시금석인가? 공영방송의 역할이 뭐길래?
“이미 계몽주의의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에서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은 소수, 즉 마이너리티에 대한 접근과 다양성 보호라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는 공영방송이 앞으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다양성과 소수에 대한 존중과 고민이 없다면 공영방송은 자신의 위치 좌표를 어디서도 찾기 힘들 것이다. 나는 드라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단막극의 존재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와 단막극의 존재 이유를 동일하게 보는 것인가?
“그렇다. 2015년 현재,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는 다양성과 소수 두 가지에 있고, 단막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단막극 자체가 다양성과 소수의 가치 그 자체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단막극은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웃음)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단막극 제작을 하고 있고, 사내에서도 계속 주장하고 있다.(웃음) 사람들이 잘 안 들으려고 하지만.”
 
-앞으로 단막극의 미래는 어떠할 것 같나?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드라마 PD들은 단막극이 정규편성이 되는 게 가장 안정적이고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지만, 앞길을 알 수 없는 현실이다. 드라마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단막극의 미래가 밝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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