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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100일 보고서

|contsmark0|2003년 2월 18일, 대구시민들은 목놓아 울었다. 8년 전 상인동 가스참사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192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다. 시민들은 충격을 넘어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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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당일 저녁 마치 죽음의 그림자가 하늘을 뒤덮은 듯 대구의 밤 공기는 스산하고 거리는 한산했다. 국민들은 언론매체를 통해 시시각각 늘어나는 사망자와 어이없는 참사의 경위를 지켜보며 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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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방송은 앞 다투어 사고원인을 찾아내려는 수사관의 눈이 되어 하루를 좁혀갔고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두고 각계의 자성과 질타도 이어졌다. 애절한 사연들이 쏟아지고 전 국민들의 따뜻한 성금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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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알고 있었는가! 전국에서 밀려드는 수많은 카메라 (eng, still약 2,000여대 - 10일 추산) 앞에서 유족들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슬픔을 가누기도 힘드는데 밤, 낮으로 들이대는 조명과 마이크… 여기저기서 유족의 언성이 높아지고 심지어 카메라가 부숴 지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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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세계를 경악시켰던 이 사건도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고 100여 일이 지난 지금 늘 그렇듯이 잊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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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고질적 ‘냄비근성’을 떠올린다. 사건직후 그렇게도 시끄럽던 여론매체가 조용해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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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당사자인 대구시민들 역시 당시의 충격과 추모열기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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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방송에 몸담고 있는 나 역시 마찬가지임을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 문제는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단순한 ‘냄비근성’에 치부하기에는 대구시민들이 함께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최악으로 치닫는 한국 경제 속에서도 특히 대구 경제는 완전바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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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된 심리적 공황은 경제적 공황으로 이어져 소비가 위축되고 생산성이 뚝 떨어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어렵던 지역경제가 카운터 펀치를 맞은 것이다. 도시 전체에 활력이 없어지고 여기저기서 고통의 신음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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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민들에게 지속적인 추모열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그렇다고 경제문제로 덮어버리기에는 유가족들의 직면한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우여곡절 끝에 사망자 확인을 거쳤는가 했더니 또 추모공원 설립위치선정에 따른 ‘님비현상’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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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당시 가슴과 가슴으로 전해지던 따뜻한 사랑이 지금은 최악의 경제적 어려움을 구실로 한치의 양보 없는 반목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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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이후 100일이 지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추모를 돌아보고 동시에 위기에 빠진 대구시를 구해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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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곳을 못 찾고 거리를 떠도는 억울한 영혼들! 그리고 애타는 유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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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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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당신은 이들에게 있어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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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홍tbc 편성제작국 교양정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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