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증명하는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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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민 PD의 끼적끼적]

독립이 빨랐다. 한 방에 여덟씩 자는 후줄근한 기숙사나마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족과 산 것은 열여섯이 끝이었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쩌면 훌륭한 사례다. 학원이나 과외는 남의 일이었다. 공부방도 한 번 가져본 적이 없었다. 지방의 공립고등학교는 대입에 그리 열중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공부에 재미를 느낀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덕분에 교과서와 EBS만으로 소위 명문대에 들어갔으니, “거봐 노력하면 다 되잖아”라고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갖다 쓰기 딱 좋은 사례일 법하다.

당연히 대학등록금과 용돈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졸업할 때까지 일흔 명 넘게 과외를 했다. 학기 중에는 서넛씩, 방학에는 그보다 더 많은 학생을 가르쳤다. 좋은 학교란 간판 덕에, 과외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받지 못했던 사교육이었기에, 한편으로는 싫어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에게는 신 포도였다. 부당이익이라고도 생각했다. 시급으로 따지면 다른 수많은 동년배의 너덧 배를 받는 일이었다. 하지만 찬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공부를 병행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타협책을 찾았다. 받는 가치만큼 해주자. 적어도 부당한 돈벌이는 안 되게 하자. 두 시간 약속한 과외를 학생이 이해될 때까지 3시간, 4시간을 했다. 목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말했다. 잘 모르는 이과 과목을 물어오면 따로 공부해서 가르쳤다. 가출한 녀석을 찾아오기도 했다. 군입대 전날에도 머리를 밀고 새벽 2시까지 남은 과외를 해주고 집으로 돌아와 입소 준비를 했다. 덕분에 입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과외 자리가 줄을 이었다. 적어도 밥줄 끊길 걱정은 없었다.

 

▲ 자료사진 ⓒpixabay

그렇게 해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두 대기에는 벅찼다. 장학금이 필요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했다. 하루에 네 시간씩 자며 대학생활을 했다. 편두통과 속 쓰림은 몸의 일부였다. 인간관계는 턱없이 좁았다. 혼자 지내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다. 다행히 공부가 재미있는 운도 남아있었기에 학점은 나쁘지 않았다.

장학금은 두 가지였다. 성적우수와 가계곤란. 성적우수로 받을 수 있는 장학금보다 가계곤란으로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이 배정도 많았고 액수도 많았다. 그건 물론 바람직한 형태였다. 당연히 가계곤란으로 신청했다.

그래서 가난을 증명해야 했다. 자기소개서에는,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 그래서 그 장학금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열심히 설명해야 했다. 증명서류도 여러 가지 필요했다. 부모님께, 스무 해가 넘도록 한 번도 나태한 적이 없었던 부모님께, 가난을 증명하는 서류를 당신의 손으로 떼어 보내달라고 전화를 해야 했다. 몇 년 뒤에 외부 장학재단을 통해 졸업할 때까지의 전액장학금에 선발되었을 때는, 오로지 저 쓰디쓴 ‘가난의 증명’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이 깊숙이 기뻤다.

내가 스물이 넘어 경험한 가난의 증명을, 대학이 아닌 의무교육 과정의 아이들에게, ‘밥’을 위해서 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누군가가 말한다. 가계곤란의 전액장학금은 부채감을 지운다. 내가 졸업한 대학은 어느 해부턴가 가계곤란 장학생들에게 ‘섬김의 정신’을 일깨워준다며 ‘학기 중 의무봉사’ 제도를 도입했다. 나 역시 그 대상이었다. 의무봉사는 대부분 주차봉사였고, 현장에는 일손이 부족하지 않았다. 오로지 '장학금 수혜자들의 노동을 위한 노동'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남은 것은 학교에서 시혜를 입었다는 부채감뿐이었다. 그것은 부채감의 교육이었다. 그 부채감마저 의무교육하겠다는 사회가 되어간다.

학교는 공부를 위해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한다. 과외를 했던 일흔 명이 넘는 학생들은 다양했다. 대부분 고등학생이었지만, 중학생, 초등학생도 많았다. 한 달에 수십만 원 과외비는 그리 부담되어 보이지 않는 집도 있었지만, 이 집의 가장 큰 지출인 것이 뻔히 보이는 집도 있었다. 공부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말해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럴 때는 그냥 공부를 도와주었다. 그 중 한 아이가 어느 날 꼬깃꼬깃 10만원을 봉투에 넣어왔을 때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과외가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개는 공부하는 관점만 살짝 건드려줘도 성적은 잘 뚫렸다. 부모와의 관계, 집안의 정서적 문제 때문에 공부 의욕이 없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친구들과는 차라리 카운슬러였다. 책을 덮고 이야기를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성적은 올랐다.

왜 이 모든 것을 과외교사가 해주어야 하는가. 아마 과외를 할 형편이 못되고, 그렇다고 내게 와서 부탁을 하지도 못한 수많은 학생 중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사소한 도움만으로 얼마든지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야기를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뚫리는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월 40~50만원의 지불능력으로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가 나뉘는 것이 과연 학생 개인들 노력의 문제인가. 그 성적표는 과연 그대로 정당한가. 밥을 먹기 위해 가난을 증명하도록 하는 학교는 그렇다면 다른 노력은 충분히 하고 있는가.

* 권성민 PD 블로그에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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