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넷 “방심위 ‘레진코믹스’ 차단 결정은 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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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정보 70% 이상인 경우 차단’ 내부기준 무시…‘음란’ 판단 기준도 판례와 달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음란 정보를 유통했다는 이유로 웹툰 사이트인 ‘레진코믹스’를 예고 없이 차단조치 했다 하루 만에 철회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사단법인 오픈넷은 27일 방심위의 차단 결정 자체가 위법이었다고 지적했다.

오픈넷은 이날 오후 ‘레진코믹스 차단 사건으로 드러난 방심위 통신심의 문제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고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설치법 제25조 2항에서 방심위 시정요구 시 게시자에 대한 사전·사후 통지 의무와 의견진술 기회 부여를 명문화하고 있음에도, 방심위는 예외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방통위설치법의 해당 조항은 공공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해 긴급히 시정요구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 대해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예외를 두고 있는ㄴ데, 방심위는 이에 근거해 음란물 등 불법성이 명백한 정보라는 판단을 내릴 경우 사전통지 등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레진코믹스’ 홈페이지
오픈넷은 “정보 주체에게 사전 통지를 하고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하라는 법의 취지는 행정기관인 방심위가 불법성 등을 판단하기 전 정보주체의 의견을 듣고 심의에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라며 “(차단에 앞서) 레진코믹스 측에 먼저 알렸다면 음란 여부가 전혀 문제되지 않는 콘텐츠 역시 유통되는 사이트임을 소명 받았을 것이고, 무신경하게 사이트 전체를 차단하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픈넷은 “방심위는 불법 정보만을 삭제·차단할 수 있고, 과잉 제재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전체 게시물을 조사한 후 불법 정보가 70% 이상인 경우에만 사이트를 차단할 수 있도록 내부 기준을 수립했으나 현재 이를 엄격히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객관적 기준을 준수하고 심의를 진행했다면 레진코믹스가 문제될 게 없는 다수의 웹툰을 함께 유통하는 웹툰 플랫폼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오픈넷은 “사이트 전체를 차단하는 것은 서비스 제공자의 영업권뿐 아니라 이들과 이용 계약을 맺은 여러 사인(私人)들의 이용권 침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픈넷은 게시물의 ‘음란성’에 대한 방심위의 판단 기준이 판례보다 넓다고 지적했다. 오픈넷에 따르면 대법원 판례에서의 음란물의 개념은 ‘표현물을 전체적으로 관찰·평가해 볼 때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을 느낌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 존중·보호돼야 할 인격을 갖춘 존재인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해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으로, 사회 통념에 비추어 전적으로 또는 지배적으로 성적 흥미에만 호소하고 하등의 문학적·예술적·사상적·과학적·의학적·교육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이다.

오픈넷은 “방심위는 관행적으로 ‘성행위 묘사’ 혹은 ‘성기 노출’이 있는 경우 음란성 정보로 분류하고 있으나, 이런 이유만으로 음란물로 분류하는 건 판례상의 음란 기준을 따르지 않고 더 넓게 음란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심의 기준에 따른다면 TV에서 볼 수 있는 영화의 장면들도 인터넷에선 아예 차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픈넷은 “레진코믹스는 많은 독자들을 거느린 곳이라 이런 문제들이 파악되고 방심위 스스로 시정요구를 다시 시정할 기회가 있었지만,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이라는 추상적인 심의기준과 관행으로 그간 수많은 사이트와 정보들이 잘못 규제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사건이 제도 개선 논의를 위한 발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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