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치, 민요 속에 담겨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퇴임 앞둔 MBC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최상일 민요전문PD

#1. 자장 자장 자장 자장 / 우리 애기 잘도 잔다 / 눈이 커서 잊어분 것은 잘 찾겄다 자장 자장 / 귀가 커서 말소리는 잘 듣겄다 자장 자장 (장흥 아이 재우는 소리 중)

#2. 워려려려허 허허러러 여여 어령 하려령 으어헝 허허허 / 워러러허 러러려려려려! 휘휘휘휫! (중략) 워려려려려려! 저 말 보라 저것! 저것! 저것! / 어 려려려려려오오오오오 워허 려려려렷 (북제주 말 모는 소리 중)

#3. 관암보이야 관암보살 /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캄캄한데 혼은 어디로 가셨네 / 그려 쉽게 가시려거든 당초 이 세상을 나오시지를 말제 / 황천길이 멀고도 멀다더니 지체 없이도 잘 가셨소 (곡성 상여소리 중)                  *각각의 괄호( )안 제목을 누르면 해당 민요를 들을 수 있는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소리부터 이게 과연 ‘노래’일까 귀를 의심케 하는 소리까지, 교과서나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우리의 소리’. 그대로 세상에서 잊혀 질 뻔했던 우리의 소리 ‘토속민요’만을 찾아 전국을 누비며 수집하고 세상에 알린 PD가 있다.

1989년 <한국민요대전>, 1991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통해 지난 25년간 토속민요를 알려온 최상일 PD. 퇴직을 앞두고 안식년 중인 최 PD는 얼마전 한국PD대상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35년 방송 인생에 대한 존경의 뜻이 전해진 셈이다. 지난 13일 서울 구기동 자택에서 최상일 PD를 만나 민요 수집 이야기와 민요에 담긴 의미를 들어봤다.

▲ 최상일 MBC PD가 토속민요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PD저널
“토속민요,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노래”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궁금한 것은 최 PD가 25년간 전파해 온 ‘민요’라는 게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던 ‘민요’와는 사뭇 다른 ‘민요’. 최 PD는 자신이 수집한 민요를 우리가 알고 있던 ‘통속민요’와는 다른 ‘토속민요’라고 설명했다.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부르고 듣고 즐기는 ‘자생적 음악’이에요. 프로가 부르지 않은 거라고 해서 하찮은 것이 아니에요. 음악적, 문학적으로 보면 토속민요에 담긴 예술성은 뛰어난 것이거든요. 그런데 모두 초야에 묻혀 사라질 위기에 있었어요. 기록할 주체가 없었으니까요.”

최 PD가 전국 곳곳에 퍼져 있던, 그것도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그들의 삶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있던 소리를 끄집어내는 작업을 시작한 데에는 ‘우리 소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여기에는 MBC 입사 후 겪은 ‘사서’로서의 경험도 한 몫 했다. 지난 1981년 MBC에 입사한 최 PD가 수습 후 처음 맡은 일은 연출이 아닌 라디오국 소속 음반자료실의 ‘사서’.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사서직을 맡은 지 일 년하고도 반년이 더 지나서야 라디오 PD로 발령을 받을 수 있었다.

사서로 일할 때 최 PD는 거의 모든 레코드판을 다 들춰서 하나씩 들어봤다. 그때 봤던 전통음악 레코드는 1000장도 되지 않았다. 한 장르에 1000장이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최 PD의 설명이다. 이후 라디오 PD로 정식 발령이 난 후 클래식, 가곡, 팝, 영화음악, 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맡았다.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음악을 두루두루 듣다 보니까 뭔가 조금 아쉬운 느낌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음악이 이게 다가 아닌데 하고 말이에요. 대부분이 남의 나라 음악이었고, 우리 음악은 비중이 왜 이렇게 낮은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도 국악 프로그램이 하나 둘 쯤 있었지만 거의 똑같은 것만 나오고…. 이건 문제가 있다 싶은 거였죠.”

우리 음악에 대한 갈증을 느낀 최 PD는 ‘민요’에 대한 특집을 제안했지만, 이후 몇 년 간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던 중 1987년, 방송민주화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방송사에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됐고, 민요에 대한 최 PD의 열망도 이뤄지게 됐다. 그때부터 민요 수집을 위한 최 PD의 강행군이 시작됐다.

▲ 최상일 MBC PD가 <한국민요대전> 해설서를 보여주며 민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상일 PD 뒤로 그동안 찾아낸 토속민요가 녹음된 테이프와 CD 등 자료가 빼곡하다. ⓒPD저널
답사-녹음의 반복, 그 속에서 찾은 보물 1만 8000여곡

자료? 부족했다. 전문가? 많지 않았다. 민요 수집? 해 본 적이 없었다. 직접 발로 뛸 수밖에 없었다. 최 PD가 전국에 있는 이장들에게 보낸 설문지와 전화만 몇 만 통에 달한다. 이를 토대로 평균 3박 4일 간 답사를 통해 녹음할 마을을 고른다. 녹음을 한 곳만 900여 마을. 사전 답사한 곳은 이보다 3~4배 더 많다. 추수가 끝나고 봄이 오기 전까지인 ‘농한기’는 최 PD에게는 말 그대로 ‘시즌’이다. 쉴 틈 없이 ‘답사-녹음-답사-녹음’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전문지식이 없어서 석사급 연구원, 음악전공자, 문학전공자 등을 대동하고 다녔다. 소리를 수집하고 듣고 전문가들과 토론을 반복했다. 소리 수집 때마다 노랫말을 즉석에서 받아 적으며 묻고 또 물었다. 소리를 들려준 노인들을 다시 만날 거라는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자 나중에는 전문가 없이 혼자 수집을 다닐 정도로 지식이 쌓였다.

수집한 소리를 분류하고 걸러내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인근 마을끼리는 비슷한 소리가 많이 나왔다. 다를 게 없는 소리들 같아도 진짜 원형을 간직한 제대로 된 노래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그걸 찾는 게 중요했다. 여기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비교하고 새로운 걸 건져내는 것은 최 PD에게는 ‘보물찾기’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어떤 때는 진짜 오금이 저릴 정도로 훌륭한 노래가 나오는 때가 있어요. 그 순간 내가 소리를 찾아다닌 보람을 느끼게 되죠. 정말 ‘보물찾기’처럼 재밌고, 내가 언제까지 소리를 찾으러 다닐지 몰라도 오래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 최상일 PD가 “어르신들께서 노래를 들려주시면 사례를 드리는데, 영수 증명으로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했다. 그래서 겸사겸사 사진을 찍었다. 양산 할머니인데 ‘어사용’이라는 노래를 아주 잘 부르셨다”며 한 할머니의 주민등록증을 찍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PD저널
“토속민요, MBC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콘텐츠임에도 활용 못해 아쉬워”

그렇게 모은 곡이 1만 8000곡에 달한다. 이 가운데 연구가치가 있고, 방송에 쓸 만한 것들을 뽑아낸 것만도 2300곡이 넘는다. CD로는 103장 분량이다. 지역별로 많게는 CD 20장 분량의 소리를 모았다. 최 PD와 MBC가 일종의 ‘토속민요 아카이브’를 구축한 것이다. 민요 관련 논문은 MBC 자료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만큼 풍부하고 음질도 좋고, 또한 노랫말도 다 고증했다. 그동안 모은 자료는 토속민요 박물관 내지는 전시관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최 PD는 이 같은 내용을 회사 측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한 상태다. 수집한 자료 역시 회사에 둘 곳이 없어 집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가 작업실로 사용하는 방에는 토속민요 녹음테이프와 CD, 사진첩 등 다양한 기록이 빼곡했다. 기록들을 보여주고 설명하면서도 최 PD는 MBC가 자료를 방치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을 거듭 내비쳤다.

최 PD는 “이건 정말 MBC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콘텐츠가 된 거다. 강원도 봉평에서는 나한테 MBC 은퇴하고 와서 민요 전시관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토속민요를 알리고 가르치라고 제안이 오기도 했다”며 “그런데 이런 좋은 아이템을 갖고도 회사가 활용을 못하고 있으니 내가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 최상일 MBC PD. ⓒPD저널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전통, 현실에 가장 필요한 가치”

이처럼 방대한 양의 민요를 모으고 모으다보니 어느샌가 최 PD 자신이 ‘토속민요 전문가’가 된 것이다. 토속민요 전문가가 되니 자연스레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애정도 한층 깊어졌다. 최 PD는 “전통문화 연구에 민요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최 PD가 수집한 토속민요 속에는 단순히 ‘소리’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생활상, 서민들의 삶, 민속문화가 풍부하게 담겨 있었다.

또한 ‘우리’라는 공동체 문화를 품고 있었다. 최 PD는 토속민요와 이를 바탕으로 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통문화가 곧 현재의 문제를 풀어줄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배려하고 더불어 산다는 것이 전통문화의 핵심인데, 우리는 이 가치를 잊고 살아요. 요즘 왕따, 차별, 자살 등 사회 문제가 심각하죠.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것까지 다른 나라에서 가져와야 할까요? 아니에요. 이미 전통문화에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치가 담겨 있어요. 민요를 통해서 현재로 오면서 우리가 너무나도 빨리 팽개친, ‘공동체’가 살아있는 전통 사회와 전통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졌으면 해요.”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