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일) 부산대학교에 간담회가 있어서 내려가던 길이었어요. 기차를 탔는데, 곱게 늙은 70대 어르신 두 분이 같이 타서는 옆줄에서 대화를 나누더라구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세월호 때문에 나라꼴이 난리도 아니라고, 세월호 유가족들 한 게 뭐가 있다고 8억원을 주냐고, 놀러가다가 사고 난 건데 왜 그리 난리냐고. 가슴이 쿵쾅쿵쾅 댔어요. 저 분들께 말을 할까 말까, 어떻게 말을 할까. 그런데 마침 뉴스가 뜨는 거예요. 세월호 유가족 배상금 얼마, 이렇게요. 그걸 본 어르신들은 봐라, 세월호 유가족 때문에 나라 망하게 생겼다고, 난리 났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대요. 도저히 못 참겠더라구요. 어르신들께 말했어요.
저 세월호 유가족입니다. 어르신 두 분이 아까 하시는 말씀 들었고 계속 뉴스에도 같은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닙니다. 배상금 8억원도 사실이 아니고, 그게 사실인들 10억, 20억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자식입니다. 어르신, 어르신은 그 돈 준다고 하면 자식이랑 바꾸시겠습니까. 당황한 어르신들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변명을 하시더니 그러대요. 우린 그냥 뉴스보고 얘기한 것뿐인데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냐고.
그래서 말했죠. 맞다고, 어르신들 잘못 없다고. 나도 제대로 된 언론 찾아보기가 힘든데 어르신들 잘못 없다고요. 그리고 동혁이 사진을 보여줬어요. 이 아이라고, 이게 내 새끼라고. 지금 고향 부산에 내려가고 있는데 좋은 일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이걸 얘기하러 가고 있다고, 너무 아프다고. 어르신이 그냥 하시는 그 말씀이 너무 아팠다고. 지금 이 시간에 다른 부모님들은 삭발을 하고 있다고.” (세월호 유가족 김성실 씨)
작년 봄, 세월호 참사를 전하는 언론 보도를 재앙과도 같다고 했다. 그리고 언론인들은 ‘기레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참회한다”,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하겠다”며 언론사 여기저기서 나온 자기반성의 목소리는 이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세월호 참사 보도를 다룬 세미나가 열렸고, 재난보도 매뉴얼도 나왔다. 그러나 참사 후 일 년, 세월호를 대하는 언론 보도는 과연 달라졌을까. 유가족들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세월호 유가족 김성실 씨(고 김동혁 군 어머니)는 언론보도에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 3일 서울 공덕동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사무실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자리였다. 이날 간담회는 민언련 시민회원들의 모임 신문모니터링위원회의 추진 하에 마련한 자리였다.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기록을 담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함께 읽던 회원들이 유가족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2시간여 가량 진행된 간담회에서 김성실 씨는 언론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김성실 씨는 작년 4월 16일 이후 언론인에 대한 마음이 180도 바뀌었다. 언론인이 쓰는 기사가 사회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생각에 존경의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언론에 몸담고 있는 친구들에게 늘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참사 이후, 김성실 씨는 존경해마지않던 그 친구들이 싫어졌다. 그녀가 본 언론은 너무나도 무책임하고 잔인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언론과 정부, 사회구조 전체가 너무나도 잔인하기만 했다.
김성실 씨는 세월호 배·보상금 문제나 유가족 생계지원비 이야기가 왜 지금 이 시점에 발표되는지에 의문을 표했다. 그녀는 “왜 이런 식으로 유가족이 졸렬하게 오해받게 만들겠느냐”며 “오해와 분열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돈 문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오해를 부추기는데 기여하는 언론에 실망감을 표했다.
언론이 정작 중요한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도 우려를 표했다. 얼마 전까지 416 가족협의회에서 대외협력분과장을 맡고 있던 그녀는 최근 기자들의 전화를 부쩍 많이 받는다고 한다.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자들이 하는 얘기가 다 똑같다”고 분노했다.
“그래도 언론에 기대한 게 있었어요. 정말 발로 뛰는 기자라면, 우리가 모르는 걸 하나쯤은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진실을 좇는 기자라면,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아오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진상규명에 관심이라도 보이길 원했어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기자는 한 명도 없었어요. 전부 어머니 어떻게 지내십니까, 지금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치유는 되셨습니까, 나머지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아이에게는 몇 번이나 가십니까. 그게 다예요. 기사다운 기사를 쓰려고 하는 기자는 별로 없더라는 거죠.”
그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파헤쳐 진상규명을 하고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며 “하나 같이 하는 이야기는 다 추모와 기억뿐이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1주기를 맞이한 언론보도가 결국 추모 일색으로만 끝날까봐 그게 가장 두렵다고 했다.
투쟁이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던 유가족들이 삭발식을 감행하기까지, 정부와 언론에 받은 무수한 상처가 있었다. 김성실 씨는 “유가족들 대부분은 정치도 모르고, 어떻게 싸워야 할지도 모르고, 사기를 당해도 주구장창 또 당할 사람들”이라며 “정부를 그냥 믿는 착한, 너무나 선하게만 살아온 사람들 앞에 정부와 언론은 너무 잔인하다”고 말했다.
삭발식을 결정한 것도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였다. 김성실 씨는 “이미 우리에게 선택의 폭은 없다는 걸 안다”며 “알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어떻게든 진실을 알리고 관심을 촉구할 방법이 필요한 유가족에게 삭발은 “이거라도 할 수 있어 고마운 것”이었다. 삭발을 한 엄마들은 “이 머리가 다시 자랄 때까지 인양을 결정만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한다.간담회가 진행되는 내내, 회의실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 참석한 시민들은 울었고, 분노했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성실 씨에게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김성실 씨는 “바라는 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은 이미 우리 유가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러분은 내가 중구난방 하는 이야기를 가슴으로 다 들어주었다”며 “트라우마 센터에 가지 않아도 여러분 눈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어루만져졌으니 여러분은 이미 나한테 의사가 되어 주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래도 해야 할 일을 묻는다면 오늘처럼 우리 이야기를 듣고 많이 알려달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유가족들에게는 절박하기 때문이다.
김성실 씨는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한다면 제대로 보도하지 않던 언론사들도 결국 (우리의 목소리를)쓸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들어주고 알리는 일”을 함께 해 달라고 시민들에게 부탁했다. 언론이 아닌 시민들에게.
[뒷 이야기]
간담회 시작 전, 혹시 사진 촬영을 해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했다. 김성실 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머리카락 있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예쁘게 찍어주세요.”
그리고 간담회 다음 날인 4일 아침, 그녀는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삭발을 했다. 민머리가 된 그녀는 동혁이의 영정 사진을 품에 안은 채 서울로 도보행진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