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한 마리가 가볍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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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주의 chat&책] 정은정 ‘대한민국 치킨展’

<대한민국 치킨展>(정은정 저/도서출판 따비)

내겐 치킨이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메뉴가 아니다. 치킨의 후덕한 튀김옷과 입맛 당기는 특유의 짠맛, 진한 기름 냄새가 점점 눈에 거슬리기까지 한다. 아마도 지난 몇 년 밥상을 차리는 일이 내 일이 되면서 부터일거다. 이런 맛을 내기 위해 무엇이 첨가되었을지, 어떤 기름이 얼마나 사용되었을지, 음…. ‘차줌마’보다 못한 실력이나마 부엌에서 삼시세끼를 담당해 온 지난 몇 년의 경력만으로도 대략 감이 오기 때문이다.

“어떻게 맨날 몸에 좋은 것만 먹냐, 분위기로도 먹는 거지!” 누군가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그래, 분위기라면 단연 ‘치맥’이지. 하지만 근래 나의 생활은 치맥의 가벼움이 껴들 틈 없는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생활리듬은 ‘치맥’조차 번거로운 경우가 많다.

주로 치킨을 시켜먹자는 쪽은 남편이다. 특히나 직장 일로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자극적인 바깥음식을 찾고 이때 손쉽게 배달하여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바로 치킨이다. 나는 자주 실랑이를 하는데 아토피가 있는 아이가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나서 벅벅 긁어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 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이런 나도 손바닥만한 동네 인간관계를 유지하느라 자연스럽게 치킨을 뜯기도 한다. 아이들 생일모임, 아줌마들 번개모임에서 흔히 먹게 되는 음식이 바로 치킨이다. 수다 떨며 아이고 어른이고 함께 어울려 먹을 때 이만하게 만만한 음식이 없다.

사회학자 정은정이 쓴 <대한민국 치킨展>(도서출판 따비)은 치킨 한 마리를 통해 대한민국의 기억과 역사, 현주소, 사람들, 사회구조를 켜켜이 들여다보는 책이다. 치킨에 대한 애정과 치킨에 대한 연민을 포함하여 치킨에 대한 모든 것을 쓰고 싶어 하는 저자의 욕심이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다.

‘통닭’으로 시작되는 치킨에 관한 우리들의 추억은 참 흐뭇하고 정답다. 아빠가 퇴근 길 사오시던 누런 유산지 봉투에 담겨있던 통닭에 대한 기억, 학교 운동회 때 풍기던 치킨 냄새의 추억 같은. 그리고 월드컵 열기와 함께 잔뜩 들뜬 ‘치맥’의 추억까지.

브랜드별로, 종류별로, 양념에 따라 구분되는 치킨에 관한 디테일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치킨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크리스피, 엠보, 민무늬 치킨 등 튀김방식에 따른 후라이드 치킨의 종류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치킨의 종류와 그 맛이 무엇인지의 정체도 가늠하게 되었다.

성실한 사회학자에 대한 기대를 넘어서기라도 하듯 저자는 치킨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조사하고 수집하는 편집광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치킨에 관한 우리의 추억을 해부하는데 역사적 자료나 통계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적재적소에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며 알아보고자 애쓴 흔적들도 그득하다.

무슨 80년대 공장에 위장 취업하는 것도 아니면서 저자는 진짜 치킨의 모습을 알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설명회에 참여하고 닭튀김의 핵심기술을 넘보며 치킨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닭 튀기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급’이 높은 프랜차이즈 사업설명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염지액과 소스의 핵심 기술을 알려줄 턱이 없는 치킨학교의 조리실습에 실망하는 모습은 한편의 희극같이 연민과 동시에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책을 읽으며 ‘치킨 블루스’를 듣는 것처럼 슬픔의 감정에 동요되기도 했다. 그리고 갑자기 뒤통수를 맞는 듯 얼얼해지기는 기분도 들었다.

대한민국 치킨 탐구에 몰두하는 저자는 ‘치킨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치킨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치킨을 누가 튀기고 먹는지, 그리고 닭은 누가 키우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국의 치킨집 사장님들과 양계농민들, 그리고 치맥을 즐기고 치킨을 사랑하여 언제든 시켜먹는 바로 우리가 치킨 ‘당사자’로 등극한다.

‘치킨집 사장으로 산다는 것은’이라는 제목이 달린 챕터에서는 한국의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에 대한 분석과 실례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전국 3만여 치킨집 사장님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묻어난다.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팍팍한 삶 또한 드러난다. 본사의 통제와 횡포 때문에 서러우면서도 생존이라는 문제에 발목 잡혀있는 프랜차이즈 치킨점 업주들의 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장님들 인터뷰’도 생생하다.

그렇다. 치킨의 성장 동력은 프랜차이즈였다. 기업 중심의 수직 계열화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프랜차이즈’ 산업이다. 치킨과 마찬가지로 닭도 기업에서 만들어낸다. 양계농가의 90% 이상이 육계 기업에 소속된 계약 농가고, 그 육계기업의 50%가 특정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 치킨은 치킨대로, 닭은 닭대로 수직 사다리의 가장 아래에 지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기업화된 음식의 전형이 바로 치킨인 셈이다.

“프랜차이즈로 닭이 길러지고 그 닭으로 프랜차이즈 치킨점에서 오늘도 닭이 튀겨지는 현실. 한 마리의 치킨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맛있게 먹고 그걸로 끝인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면서 우리 또한 맛의 지옥에 갇힌 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늦은 시간까지 노동을 하고 그 노동의 고통을 치맥으로 달래다 결국 치킨집 사장님의 삶에서 내 미래를 간보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오늘 한 마리의 치킨과 한 잔의 맥주가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계유감’ 중)

<대한민국 치킨展>은 치킨이라는 미시적 접근을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 삶의 풍경을 꼼꼼히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책의 이런 점들이 좋았다. 책은 정답게도 치킨에 얽힌 나의 추억에 말을 걸어주었다. 치킨에 대한 나의 찜찜한 감정과 불편함을 들추고 긁어주었으며,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치킨을 뜯으며 살고 있는 ‘나’ 같은 존재들을 긍정하고 위로해 주었다.

이 책의 서문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읽기 시작했었다. 속이 울렁거렸고, 창밖을 내다보니 이제 막 피어오르는 봄 햇살에 눈이 부셔서인지 눈물이 고이는 것 같기도 했다.

서문에는 긴 불황 중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기대하는 치킨집 사장님들 대한 연민, 그리고 진도 팽목항에 놓인 세상에서 가장 슬픈 치킨을 목도하는 저자의 황망함이 드러나 있었다. 그는 축제의 음식인 치킨이 애도의 음식으로 변해버린 순간, 울면서 후라이드치킨을 써나갔다고 고백했다.

그 글의 말미에는 이런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함께 모여 즐겁게 치킨을 먹는 날들을 억지로라도 만들면서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연민과 공감의 시선이 이 가볍지 않은 ‘치킨’ 책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책을 쓴 사회학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글쓴이 최문주는 전직 기자로, 지금은 책읽는 엄마, 때때로 잡문가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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