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이순신이 저만치 물러나 있는 까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 KBS 대하사극 ‘징비록’ⓒKBS
<징비록>, 과거의 스펙터클? 현재에 던지는 경고!

조선시대를 다룸에 있어서 임진왜란만큼 스펙터클한 소재는 없다. 전쟁이다. 그것도 한 국가가 사라질 뻔한 위기를 담고 있는. 하지만 전쟁이 스펙터클로 다뤄지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무수한 인명이 죽어나가는 그 전쟁을 어떻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거리로 치부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지금 현재 중동지역에서 벌어지는 내전을 스펙터클화 하는 뉴스를 접하는 것만큼 부조리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임진왜란의 이야기가 이순신이라는 영웅담으로 자꾸만 귀결되는 것은 이러한 전쟁의 스펙터클화를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단 몇 척의 배로 왜적들을 저 명량과 노량의 바다에서 물리치는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하지만 그것이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발발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적 위기 상황이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단지 액션물처럼 당하던 우리 편이 반전의 승리를 거두는 쾌감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임진왜란이 말해주는 것과는 정반대로 섣부른 애국주의로 흘러가게 될 위험성마저 있다.

<징비록>은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순신의 이야기를 저만치 멀리 배치해 놓는다. 시청자들은 왜 이순신이 빨리 나오지 않느냐고 얘기하지만, 그럴 거였다면 굳이 <징비록>이라는 유성룡의 ‘피로 쓴 교훈’을 선택할 필요가 없었을 게다. <징비록>은 애초부터 이순신의 영웅담을 담으려 했던 게 아니다. 유성룡이 ‘징비록’을 쓰면서 이순신의 영웅화를 의도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징비록>은 왜 전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대해 방비하지 않은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대가를 치렀는가에 대한 기록을 담아낸다.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이 있는 임진왜란이 아니라, 정치적 당쟁과 왕의 무능과 지주들로 인해 피폐한 경제가 총체적으로 빚어낸 국가의 위기로서의 임진왜란을 다룬다. 전쟁의 전조가 있었음에도 이를 간파하지 못하는 신하들과 왕의 리더십 부재, 피폐해진 나라 살림을 바로 잡지 못하고 오히려 그 부패에 깊이 연루된 정치인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4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네 현실에도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 KBS 대하사극 ‘징비록’ⓒKBS
동인 서인으로 또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어 파당을 일삼는 와중에 저만치 소외되어버린 백성들은 지금의 정치인들에게는 뜨끔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 백성들을 끝까지 보살펴야할 아비 같은 존재인 왕이 파천을 주장하고 도성을 버린 채 도주하는 장면은 그래서 지금의 서민들에게도 통탄할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청춘들의 실업문제나 갈수록 깊어가는 양극화의 문제, 정치적인 부패와 경제적 불평등 같은 작금의 정치경제적 상황들은 지금의 서민들이 <징비록>이 그려내는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군량미를 빼돌려 치부하는 양반들의 이야기가 최근 벌어진 방산비리를 떠올리게 하고, 당장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의 군역과 축성의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않고 그저 집으로 돌려보내는 선조의 조치는 대선 때마다 흘러나오는 갖가지 ‘선심성 공약’을 떠올리게 한다. <징비록>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선심성 공약의 남발은 결국 국가적 위기로 이어지지 않던가.

<징비록>에 이순신의 영웅담 같은 건 그래서 쉽게 찾아지지 않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그것은 400년 전 류성룡이 피를 토하듯 써내려간 그 참회의 교훈들을 이 시대에도 다시금 곱씹는 그런 이야기여야 한다. 그것이 역사가 과거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현재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가 되게 하는 일일 것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