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톡] KBS ‘명견만리’- 청년을 잃어버린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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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이탈리아에서 만난 35세의 대학생 에리카. 그녀는 아직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일이 없다. 노력하지 않는 게 아니다. 매일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건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단 한 번의 기회도 잡아보지 못한 그녀는 애초부터 자격 미달이다. 취업이 안 되니 대학 졸업을 계속 미루게 되고, 생계를 책임질 능력이 없으니 70대 후반의 부모님이 받는 월 120만원의 연금에 함께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그녀의 실업은 자신뿐 아니라 부모의 삶도 흔들고 있었다. 결국 에리카는 해외 취업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자 한다.

에리카만이 아니다. 매년 4만명의 청년들이 이탈리아를 떠나고 있다. 젊은 인력의 유출, 즉 고령화는 이탈리아의 재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 매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연금 지출만 GDP의 15%에 달한다. 반면 젊은이들은 위한 지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국가 재정을 떠받치는 청년들의 고통은 외면당했고, 그 결과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률은 40%가 넘는 상황이다. 이탈리아의 복지를 지탱했던 청년들이 가난으로 내몰리면서 모든 세대가, 나라 전체가 휘청대고 있다.

 

▲ KBS 1TV <명견만리> ‘인구쇼크-청년이 사라진다’ ⓒKBS

일본, 이탈리아와 함께 손꼽히는 초고령 사회인 독일의 선택은 달랐다. 고령화로 인한 세대갈등이 불거지자 독일은 갈등을 해소하고 청년을, 미래세대를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모습을 선택했다. 우선 정부는 초기 취업에 실패한, 다시 말해 단 한 번도 직업을 갖지 못한 청년에게도 실업수당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보호했다. 또 혼자 사는 노인과 안정적인 주거가 필요한 대학생들을 연결하는 ‘세대공존 하우스’를 통해 서로를 돕는 것이 이득이라는 점을 자연스레 인식토록 했다. 세대 간 소통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노인과 청년이 만나 역사와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그램도 정부가 앞장서 지원하고 있다.

기업의 노력도 있었다. 독일의 자동차도시 볼프스부르크. 2000년대 초반 폭스바겐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해외로 공장 이전을 추진하려 했으나, 노사 대타협을 통해 이전 대신 지역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 공장을 새로 건설해 지역의 실업자와 청년 취업예정자 5000명을 신규 채용하고 5000마르크의 소득보장과 3개월의 직업훈련도 제공했다. 지역 청년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기업은 생산성 높은 기술자를 지속해서 확보할 수 있었고, 청년들이 돈을 버니 내수시장 역시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볼프스부르크는 지금도 세계 최고의 자동차도시라는 명성을 뽐내고 있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두 국가의 차이는 바로 청년에 대한 투자가 미래에 대한 최고의 투자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노력했는지 여부에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 KBS 1TV <명견만리> ‘인구쇼크-청년이 사라진다’ ⓒKBS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실업 대책으로 “중동으로 가라”는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 또 정부와 재계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쉬운 해고”를 위한 정책을 밀어붙이려 한다. 사회안전망은 없이 더 쉬운 해고와 더 낮은 임금으로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을 노동자에게 일방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엔 귀를 닫은 채 정규직의 귀족 노동자들만이 악의 축이라고 호통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은 채 나라 밖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청년들의 미래가 무너지면 결국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는 기성세대가 서로를 적대시 하지 않도록 세대를 아우르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독일의 모습은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멀고도 멀다. 지난 2일에 이어 9일 두 차례에 걸쳐 방송된 KBS <명견만리> ‘인구쇼크-청년이 사라진다’ 편을 그분들이 꼭 시청하길 바라는 이유다.

덧. 소위 선진국의 사례가 언급될 때마다 그건 선진국이기에 가능한 정책이라는 반론들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독일은 1970년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되지 않았을 때 일련의 청년 복지제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5년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은 3만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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