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성완종 리스트’보다 ‘노무현 정부’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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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살아있는 권력’ 논란의 방패는 언제나 노무현?

‘성완종 리스트’라는 태풍이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앞장서 성역 없는 수사와 엄정 대처를 주문하고 나섰지만 진정성 있는 의지 표명인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성완종 리스트’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 관련 의혹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불과 몇 달 전 현 정부의 핵심 실세가 거론된 의혹에 대해 청와대와 검찰이 어떤 관계 속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목도한 까닭이다.

때문에 지난 주말을 거치며 다수의 방송·언론들은 경우에 따라 특별검사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몇몇 언론들은 익숙하게도 노무현 전 정부의 이름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앞장은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는 13일자 신문 1면 머리기사에서 “검찰은 2007~2014년 경남기업에서 370여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인출된 32억원의 용처를 추적 중”이라며 “검찰은 건설업체 본사가 건설 현장에 지급하는 ‘현장 전도금’ 명목으로 인출된 이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 4월 13일 <동아일보> 1면
<동아일보>는 이어 “앞서 경남기업 비리를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는 2007년 12월 당시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특별사면이 결정되기 직전 경남기업 관련 계좌에서 5000만~1억원의 뭉칫돈이 빠져나간 정황을 포착한 상태”라며 “성 회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2005년, 2007년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았으며 검찰은 당초 성 회장을 구속한 뒤 사면 로비 의혹을 수사할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동아일보>는 3면 기사에서 “문제의 현금 32억원은 2007년 이후 지난해까지 수시로 인출됐다는 점에서 성 회장이 언론을 통해 친박 핵심에게 금품을 전달했다고 밝힌 시기는 물론이고 2007년 특별사면, 경남기업 워크아웃 당시 금융당국 특혜 의혹 등 시기와 겹친다”며 “이 때문에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 수사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등 3개 정권에 걸친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동아일보>는 31면에 배치한 ‘盧정부 특별사면·朴정부 대선자금 철저히 파헤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노무현 정부의 성 전 회장 사면 문제를 박근혜 정부의 대선자금 의혹보다 앞세웠다.

비리 의혹이 있다면 정권을 막론하고 철저하게 수사를 하는 게 검찰의 역할이다. 그리고 검찰의 제대로 된 역할을 독려하고 감시하는 게 언론의 일이다. 때문에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주장한 내용이 무엇인지 말이다.

성 전 회장은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 핵심 인사에게 거액의 대선자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성 전 회장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친박계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까지 치명상을 입는 메가톤급 파장이 불가피하다.

▲ 4월 13일 <동아일보> 31면
때문에 관심사는 많은 언론들이 공통으로 주문하고 있는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여부이며, 지난해 정윤회씨 등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문건 유출 경위에 대한 내용으로 축소되는 모습을 지켜봤던 여론은 의구심을 표현하고 있다. 여당 대표가 먼저 특검 얘기를 꺼내며 선제 대응에 나선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동아일보>도 박근혜 정부의 대선자금 의혹에 대한 진실을 촉구하며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못하면 결국 특별검사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짐짓 엄중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 앞에 빼곡하게 노무현 정부의 성 전 회장 사면을 둘러싼 의혹들을 배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이 등장하면 참여정부도 의혹이 있다 말하고,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문건이 등장하자 문건의 내용보단 문건의 유출 경위를 앞세우던 것처럼 말이다.

말을 어떤 순서로 하는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주목할 것은 앞으로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이 어떤 내용을 어떤 순서로 어느 위치에 배열해 전달할 지 여부다.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엄정한 수사를 해야 한다 강조하면서 결국은 ‘살아있는 권력’을 위한 ‘물타기’로 귀결되는 모습은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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