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일본 만화산업 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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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일본에서 출판 관련 업종에서 종사하고 있다. 15년 째다. 대학원에서는 대중 문화론을 배웠고, 작가로 글도 써서 책도 출간해보고, 한국의 거대한 업체와 일본 업체의 줄다리기에도 관여해서 골머리도 썩어보았다. 아직도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업무를 하고 있다보니 평론가가 아닌 조금 다른 시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국에 가끔 가거나 한국에서 온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다. “요즘 일본은 어떤가요?” 솔직히 난처한 질문이고 폭력적으로도 느껴지는 질문이다. 여기에 폭력적으로 답을 한 번 해보자면, “일본도 참 어렵습니다”라는 게 답이다.

한국에서 일본의 문화산업을 논할 때, 특히 필자가 깊이 관여했던 만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특정 분야를 이야기하다 보면 ‘어떤 신화’가 존재하는 것을 흔히 발견한다. 거대한 일본 만화/애니산업은 마치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다는 환영…. 마치 일본에서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고급문화일지도 모른다는 인식들…. 그리고 그 이유를 캐어가다 보면 이것들이 1980년대의 극적인 팽창기에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제조업으로 미국을 이겼던 시절, 1980년대 일본은 대단했다. 버블경제 호황으로 시중에는 돈이 넘쳐났고 애니메이션과 만화 산업으로 몰려들어, 온갖 장르 실험과 매체 실험이 가능했다. 지금이라면 절대 누구 하나 선뜻 투자하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의 기획서도 통과되었고, 창작자들의 욕구가 마음껏 반영된 작품들-지금은 불가능할 것 같은 엄청난 퀄리티의 작품들이 쏟아졌다. 만화에서는 <드래곤 볼>, <시티헌터>, <북두의 권>, 애니메이션에서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필두로 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들, <AKIRA>,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등의 작품들은 1970년대의 고도성장 이후 태어난 한국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때렸다.

 

▲ 인기만화 ‘드래곤볼’

당시 작품들이 바다 건너 한국에서 신화가 되어버린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들은 지금은 절대로 불가능한 과격한 폭력/성묘사가 가능했다. 아직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권력층 상부에서는 인지되지 않은 영역의 오락거리였고 그래서 규제의 칼날이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청소년 계층에게 이 일본 콘텐츠들이 전달될 때는 온갖 먹칠과 가위질로 누더기가 된 상태였고, 이것이 오히려 상상력을 부채질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경제가 긴 장기 불황의 터널에 들어서고 난 이후에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 버블경제가 철저히 붕괴하면서 투자는 위축되었고, 다들 확실히 히트할 수 있는 아이템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제조업 신화가 붕괴하면서 문화산업이 가진 시장규모가 비중 있게 대두되고, 이전과는 달리 합리와 수치로 무장한 엘리트 집단 기획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니, 얼핏 정신이 나간 듯이 보일 정도로 모험심에 가득 찬 콘텐츠는 서서히 사라지고 이전 히트작들을 분석해서 만들어낸 ‘어디서 많이 본 작품들’만 시장에 넘쳐나게 되었다.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소비자들이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법, 콘텐츠의 주력소비층 중의 하나였던 청소년층들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완전히 변해버린 것도 만화나 애니메이션 산업에 과격할 정도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 요소다. 정보가치의 변화다.

가령 예를 들어, 이전에 학교에서 아이들과의 대화에 끼려면 만화잡지를 사보고 만화를 읽거나 어제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을 봐야 했다. 직장인들도 직장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출근전철에서 스포츠신문 하나 정도는 읽고 연예인 스캔들 하나 정도는 알아둬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정보는 인터넷에 접속하면 간단하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정보다. 돈을 주고 잡지를, 신문을 사볼 이유가 전혀 없다. 이전 1980년대에는 일본에 2만 5000개가 넘는 서점들이 있었다. 요즘은 1만4000개로 줄었다. 줄어든 많은 숫자의 서점들은 잡지들을 주력상품으로 삼던 중소규모의 서점들이다.

답답한 이야기로 시작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성공담과 희망적인 관측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음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보자.

*글쓴이 신주쿠 이작가. 만화 스토리 작가, 콘텐츠 기획자, 번역가. 중학교때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인생을 구원받고, 일본에까지 건너왔다. 인생의 만화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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