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PD, 빨간책방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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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라디오 포럼’ 두 번째···‘이미 시작된 또 다른 라디오, 팟캐스트 이야기’

라디오의 미래를 팟캐스트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난 15일 서울 합정동 빨간책방 카페에서 ‘넥스트 라디오 포럼’ 두 번째 모임이 열렸다. ‘넥스트 라디오 포럼’은 한국PD연합회 소속 라디오 PD들이 모여 라디오의 위기와 기회를 논하고 함께 공부하는 모임으로, 급변하는 방송 환경 속에서 ‘라디오 이후의 라디오(Next Radio)’를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이날 포럼의 주제는 ‘이미 시작된 또 다른 라디오, 팟캐스트 이야기’였다. 이미 팟캐스트가 공중파 라디오 이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은 청취자를 갖고 있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이하 <빨간책방>)과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대중화에 큰 몫을 한 정치시사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의 뒷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빨간책방>의 기획자 왕인정 위즈덤하우스 실장과 <나꼼수>의 김용민 국민TV PD는 어떻게 팟캐스트를 준비하게 됐는지, 그 과정에서 느낀 지상파 라디오와 팟캐스트의 차이점은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강의했다.

아래는 두 사람의 강의와 질의응답 중 주요 내용 정리.

빨간책방 이야기 - 왕인정 위즈덤하우스 실장(<빨간책방> 기획자)

▲ 왕인정 위즈덤하우스 실장이 <빨간책방> 제작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성헌

2009년 이후 아이폰이 보급되면서 한국에도 팟캐스트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팟캐스트가 대중들에게 널리 인지된 것은 2011년 정치 시사 팟캐스트 <나꼼수>가 큰 인기를 끈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빨간책방>도 사실 <나꼼수>의 인기에 영향을 받아 기획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빨간책방>은 2012년 5월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사실 <빨간책방>은 기획의도가 다른 팟캐스트나 라디오 방송과는 좀 달랐다. 내가 <빨간책방>을 기획하게 된 건 홍보 때문이었다. 출판사의 마케터로서 책 홍보를 위한 수단이 필요했고 그 일환으로 기획하게 된 것이 <빨간책방>이었다. TV나 라디오, 신문 등에서의 책 광고 효과가 점차 미미해지는 상황 속에서 책 홍보를 할 수 있는 전문 매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 전문 방송을 만들어보자, 해서 탄생한게 <빨간책방>이었다.

그런데 왜 많은 미디어 중에서 팟캐스트를 선택했느냐? 수많은 장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라디오 방송과 달리 시간에 맞춰 들을 필요가 없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나 들을 수 있다는 점, 검색만 하면 원하는 주제의 팟캐스트를 얼마든지 찾아서 들을 수 있다는 점 등이 매력적이었다. 라디오와 달리 장비의 제약도 없고 프로그램 내용과 형식도 자유로워서 파격이 가능하다. 그래서 팟캐스트를 선택하게 됐다.

▲ 포럼에 참석한 PD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김성헌

결과론적으로 보면, 책을 홍보할 강력한 매체 구축이 목적이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다. TV에 광고가 나가거나 신문에 서평이나 전면광고가 실리거나 하는 것들이 예전에 비해 그 효과가 굉장히 떨어진 상황인데, <빨간책방>에 메인으로 소개되는 책은 금방 베스트셀러가 된다. 출판계에서는 ‘지금 홍보효과를 내는 건 <빨간책방>밖에 없지 않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자발적으로 ‘빨간책방 매대’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출판시장 전반에는 좋은 영향을 주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우리 출판사의 책 판매량을 늘리는 데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처음 기획단계에서부터 메인 MC인 이동진 작가에게 책 선정을 비롯한 모든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팟캐스트 제작사인 출판사는 개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사코너를 단독으로 짧게 제작해서 홍보하고는 있지만, 메인 책 판매에 비해 효과는 소소하다.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다.

하지만 MC에게 독립성을 준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출판사가 개입하면 자사 홍보매체가 되어버리니까 매체 영향력이 줄어들고 독자들도 등을 돌릴 거라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빨간책방>을 통해 위즈덤하우스의 브랜드 이미지는 상당히 업그레이드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학 작가들의 위즈덤하우스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졌다.

Q. 지상파 라디오 콘텐츠를 팟캐스트로도 많이 내보내고 있는데, 막상 팟캐스트에서는 순위권에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팟캐스트와 달리 라디오의 가장 큰 핵심 콘텐츠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라디오를 팟캐스트로 내보낼 때는 저작권 때문에 음악을 다 뺀 상태가 된다. 미완성의 방송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도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 중 팟캐스트 인기 순위권에 드는 콘텐츠를 보면, 코미디 부문에서는 SBS <두시탈출 컬투쇼>, 경제 부문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등 음악과 무관한 콘텐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라디오 PD들이 <빨간책방> 녹음 스튜디오를 구경하고 있다. ⓒ김성헌

Q. 팟캐스트의 지속가능한 수익모델과 장애요인은?

<빨간책방>의 경우, 영향력이 커질수록 광고 수주의 양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 밖에도 OSMU(One Source Multi Use) 방식으로 활용 가치가 풍부하다. 이미 <빨간책방> 콘텐츠로 두 권의 책을 별도로 출간했고, 오늘 이 포럼이 열린 빨간책방 카페처럼 오프라인 매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2차 서비스 산업을 하게 된 셈이다. 이런 식으로 수익모델은 계속해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팟캐스트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팟캐스트 제작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데, 사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정말 확실한 콘텐츠와 기획이 아니라면 새로운 팟캐스트 제작을 권하지 않는다. 이미 들을 만한 팟캐스트가 너무 많고 콘텐츠가 넘쳐 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Q. <빨간책방>과 일반 라디오 방송의 파급력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가장 중요한 건 MC라고 생각한다. 책을 소개하는 일반 라디오 프로그램의 MC는 대부분 아나운서들이다. 아나운서들이 예쁜 목소리로 책을 소개하는데, 이게 청취자들한테는 확 꽂히지 않고 그냥 흘러가기가 쉽다. 반면 <빨간책방>은 이동진과 김중혁이라는 깊고 묵직한 작가들이 나온다. 청취자들이 보지 못한 부분들을 짚어주고 다른 시각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책을 정말 좋아하는 분들이 열렬히 들으시는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워서 이해 못하는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독자들은 오히려 좋아하더라.

팟캐스트, PD저널리즘의 새 창구 - 김용민 전 <나꼼수>PD(현 국민TV PD)

▲ 김용민 PD가 포럼 시작에 앞서 참석한 라디오 PD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성헌

2008년 이명박 정권 들어서자마자 김어준이 SBS 라디오에서 하차했다. 이후 2009년 5월 한겨레 인터넷 방송 ‘김어준의 뉴욕타임즈’를 시작했는데 거기에 내가 고정게스트로 나갔다. 그런데 2011년 정봉주 민주당 의원을 고정게스트로 쓴다며 매체 중립성 문제가 대두됐다. 그래서 우리는 독자제작을 구상하게 됐다.

나는 팟캐스트를 플랫폼으로 한 콘텐츠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당시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무선인터넷 시장이 활발해지던 시기라서 나름대로 시장이 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꼼수>에 주진우 기자가 합류했고, <나꼼수>는 팟캐스트 대중화에 나름대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꼼수>가 대중에게 ‘먹힐’ 수 있었던 건 권력 비판 억압에 따른 대안적 스피커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이 권력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1화에서부터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싫습니다”라고 말하는 김어준의 방송이 인기를 끈 것이다. 또, 총선과 대선이 맞물린 시점이었고, 정치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고조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팟캐스트가 PD 저널리즘의 새 창구라고 생각한다. 지상파 라디오 프로그램들도 음악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대부분 팟캐스트에 올라오고 있는데, ‘기성방송 다시 듣기’ 형태로 올라오는 것 이외에도 번외버전으로 제작돼 올라오는 SBS <씨네타운 나인틴>, 방송사 구성원이 독자적으로 제작하는 <떡국열차>(SBS 김영우 팀장 독자 제작) 등이 있다. 비방·불발용 ‘잔반’을 제작한달까. 그래서 나는 팟캐스트가 방송의 SNS라고도 생각한다. 언론사와 SNS의 양상과 비슷한 점이 많다. 방송이라는 영역 자체가 창의성과 독립성, 독자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건데, 방송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팟캐스트에서 토해내는 것이다.

팟캐스트의 인기는 어떻게 보면 억압적인 언론환경과도 직결된다. 팟캐스트의 인기는 팟캐스트가 뉴미디어이고 새로운 플랫폼이어서만이 아니다. 지상파에 대한 규제가 너무 심하니까 팟캐스트가 상대적으로 발전하게 된 측면도 있다고 본다. 만약 지상파에서 그 억압을 다 풀어준다면 팟캐스트가 위기에 직면하지 않을까.(웃음)

▲ 라디오 PD들이 김용민 PD의 강의를 듣고 있다. ⓒ김성헌

얼마 전에 누군가가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현재 방송의 미래에 답이 나오는 건 팟캐스트밖에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지상파에 근무하는 분들에겐 암울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지금 같은 언론환경에서는 기성방송에서 신뢰를 찾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증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팟캐스트는 신뢰도마저 상당히 신장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미 인터넷망을 통해서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내후년부터는 차량 안에도 무선인터넷망을 설치한다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라디오가 디지털화되고, 무선인터넷망을 통한 미디어 콘텐츠 접촉도가 지금보다도 훨씬 높아지게 된다면 방송이 일반 팟캐스트와도 경쟁을 해야할 것이다.

Q. 지상파 방송과 팟캐스트의 결정적 차이는?

지상파와 팟캐스트는 선호되는 포맷이나 콘텐츠, 장르 자체가 다르다. 재밌는 건 팟캐스트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콘텐츠가 시사라는 점이다. 지상파는 오락·예능이 가장 인기 콘텐츠인 것과 대비된다.

특히 팟캐스트에서 주목받고 있는 콘텐츠를 살펴보면 지상파에서는 놀라 자빠질 아이템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노유진의 정치카페>가 있다.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인데, 만드는 주체가 정의당이다. 특정 정당이 방송을 만든다? 지상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팟캐스트에서는 가능하다. 누구나 그 주체가 될 수 있다. 기성 방송의 공식과 체계 구조가 팟캐스트에서는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다.

팟캐스트는 소재가 무제한이고 정치지향도 자유이며 심의규제가 없고 시간 제약도 없다. 지상파와의 차이다.

▲ 포럼에 참석한 PD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김성헌

Q. 팟캐스트 제작 노하우?

1. 먼저 연사는 3명을 넘지 않는 게 좋다. 오디오 콘텐츠이다 보니 3명이 넘어가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 헷갈린다.

2. 45분 단위로 끊어라. 90분이면 반으로 끊어서 두 개를 올리는 식이다. 한 에피소드를 한 파일로 올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3. 게스트에 힘 빼지 마라. 지상파와는 달리 팟캐스트는 ‘게스트빨’이 없다. 진행자가 가장 중요하다. 오히려 진행자 캐릭터에 힘을 쏟아야 한다.

4. 유명인보다는 전문가가 나오는 게 좋다. 유명하지 않아도 해박한, 숨은 뒷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5. 성역을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아라. 소송을 불사하라.(웃음) 정치시사 팟캐스트는 특히 그렇다. 소송이 들어왔을 때 쫄면 안된다. 대외적으로 떠들어라.

6. 독보적인 콘셉트와 주제의 팟캐스트여야 한다.

7. 콘텐츠 홍보수단은 SNS를 활용하라. 거대 이벤트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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