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베스’ 조롱받는 KBS…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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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새노조·직능단체 ‘일베 기자’ 토론회…“귀 닫은 경영진 책임져야 ”

“일베 기자 임용으로 시청자들은 분노했습니다. 더 이상 시청자와 전문가들은 KBS가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KBS ‘일베 기자’ 임용에 반대하는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지난 17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KBS 11개 협회와 양대노조 주최로 ‘일베 품은 KBS, 흔들리는 공영방송의 가치’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일베 기자' 임용에 대한 KBS 안팎의 의견을 들어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KBS 구성원 70여명이 참석해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일베 기자' 논란에 휩싸인 당사자는 극우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의 열성 회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져 자격시비에 휘말린 바 있다. KBS는 내부 구성원들의 반대에도 지난 달 31일 임용을 결정했고, 해당 기자는 지난 1일부터 KBS의 정식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KBS ‘일베 기자’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언론노조 KBS본부

이날 토론회에서는 “일베 기자가 채용되도록 회사가 사태를 방치했다”는 성토가 이어져 나왔다.

안주식 KBS PD협회장은 기조발언에서 “특정지역에 대한 폄훼와 장애인에 대한 비하 등을 담은 글을 인터넷에 게시한 ‘일베 기자’가 공영방송 KBS의 정식 직원으로 임용됐다는 사실에 참담한 심경”이라며 “지난 2월 중순 한 언론사의 보도로 최초 공론화된 이후 지난 1일 정식 직원으로 임용되기까지 이 수습직원을 둘러싼 경영진의 행태는 무능했고, 컨트롤 타워는 부재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베를 옹호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수신료로 일베에게 월급을 준다는 비판이 쇄도할 때, 사측은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라는 관료주의적 입장만을 밝혔다”며 “일베 기자가 채용되는 과정에서 책임을 회피한 사내 기획부서와 홍보담당부서, 인사담당부서, 보도본부 내 평가담당자 등이 모두 책임지고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규탄했다.

또한 “해당 기자의 임용을 취소할 수 있었음에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의 대화 요구를 묵살했다”며 경영진의 태도를 지적했다. 안 회장은 “이 사건은 공영방송 KBS의 입사기준을 둘러싼 가치판단의 문제, KBS 내부 민주적 의사결정의 부재 문제, 현 조대현 사장 체제의 비민주성과 무능한 위기대응능력 문제로 확대됐다”며 “처참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조현아 KBS 여성협회장은 ‘일베 기자’가 쓴 글들을 나열하며 “과연 올바른 교육의 과정을 거친 사람이 부끄러움 없이 쓸 수 있는 글인가”라고 반문했다. 조 회장은 “과연 이러한 글을 쓴 자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경영진의 판단은 무엇이냐”며 “읽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여성혐오 글에 동조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해당 기자의 임용이 앞으로 KBS 공정 보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김철민 KBS 기자협회장은 “시청자들은 더 이상 KBS가 공정하다고 믿지 않는다”며 지난 1일 해당 기자가 임용된 후 KBS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소개했다. ‘일베 기자를 임용한 공영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분노가 담긴 글들이었다.

김 회장은 “KBS가 작년 9월부터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은 그것이 공영방송의 핵심가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KBS가 추구하는 공정성이라는 것은, 특정 견해에 편향되지 않은 것을 보도하며,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것에서 달성된다”며 “이 이념과 정면으로 배치하는 ‘일베’라는 사이트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사람을 기자로 임용하는 것이 정신이 있는 것이냐”고 규탄했다.

김 회장은 “‘일베’가 사회적 해악이라는 것이 이미 합의된 상황에서 이런 사람을 KBS 기자로 임용하면 안 그래도 의심 받는 KBS의 공정성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갈 것”이라며 “지금처럼 ‘케일베스’라고 조롱받는 상황에서는 수신료 인상은커녕 시청자 신뢰 회복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경영진 스스로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곡해하는 배임행위에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일베 임용에 관여했던 경영진들에게 책임을 묻고,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KBS ‘일베 기자’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언론노조 KBS본부

채용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언론노조 KBS본부의 김성일 사무처장은 “인사규정 12조 3항과 시행세칙 34조 등에 따르면 수습기간에 인정된 자, 공사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공직자로서의 품위를 손상한 자는 임용을 취소할 수 있다”며 사측이 ‘일베 수습’에 대한 임용을 취소할 수 있었음에도 채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KBS 감사실이 세 곳의 법무법인에 법률자문을 받은 결과, 모두 임용취소 근거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며 “어떤 근거로 회사가 법률자문 결과를 반영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사무처장은 “조대현 사장이 KBS 구성원 다수의 문제제기를 방치하는 것을 보고, 왜곡된 인사권은 온전히 되돌려져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잘못된 것은 수정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장이 이 사태를 방치하고 악화시켰으므로 우리는 사장에 대한 불신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도 “이 사건을 계기로 채용 제도의 허점과 재발방지를 위한 절차를 요구해야 한다”며 “인사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향후 사태의 추이를 간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의 전력으로 채용을 취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토론자로 나온 윤석민 서울대 교수는 “구성원들의 분노에는 공감하지만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누군가의 표현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개인에 대한 집단적 거부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일베의 일탈 행위는 나쁘지만 익명 표현자의 신상을 밝히고 집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행위는 타당하지 않다”며 “안타까운 일이지만, 문제가 된 인사의 일베 전력을 고발하는 보도행위가 애초에 타당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 논의되는 기준들로 직업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해당 기자에 대해 직업적 제한을 가하기보다는 내부의 자율적인 통제나 사내 분위기를 통한 제재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 날 토론회는 사측의 참석 없이 진행됐다. 주최 측은 “사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토론회에 초청했지만 참석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또 이날 KBS는 토론회에 참석하려던 외부 기자들의 출입을 막아 반발을 사기도 했다. 주최 측은 KBS에 기자들의 방문 등록을 미리 해놓은 상태였으나 사측은 이를 확인했음에도 방문증 발급을 해주지 않았다.

KBS 안전관리실 직원은 기자들의 입장을 저지하면서 “홍보실에 문의하라”고 말했고, KBS 홍보실은 “회사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아니므로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밝혀 결과적으로 서로 책임 소재를 미룬 형국이 됐다.

“무슨 근거로 출입을 저지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KBS 안전관리실 직원은 “나에게 묻지 말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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