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이라는 ‘왕좌의 게임’, 누가 살아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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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이라는 ‘왕좌의 게임’, 누가 살아남을까
[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5.04.21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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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왕좌의 게임>에는 무려 일곱 개의 왕국이 등장해 서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전쟁을 ‘게임’이라고 지칭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쟁이라고 하면 어딘지 선악이나 승패로 갈라지는 역사적 잣대가 끼어들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거기에는 선악도 승패도 없다. 다만 게임처럼 각자의 야심과 욕망에 의해 왕국 간의 대결이 벌어질 뿐이다. <왕좌의 게임>이 무려 시즌5까지 제작되며 전 세계에 열풍을 만든 것은 바로 이 게임의 시선을 차용함으로써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지금의 대중들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MBC의 새로운 사극 <화정>이 광해군 시절을 소재로 가져온 것은 이 역사적 시점이 저 <왕좌의 게임>처럼 다양한 입장들의 대립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선조(박영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그 빈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게임’이 벌어진다. 선조가 죽고 광해군(차승원)을 돕던 임해군(최종환)이 영창대군(전진서)까지 살해하려 했다는 사실은 인목대비(신은정)가 광해군을 경계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광해군은 임해군을 내치고 어린 영창대군과 정명공주(허정은)의 안위를 약속함으로써 인목대비의 재가를 받아 왕위에 오른다.

▲ MBC ‘화정’ 포스터 ⓒMBC

하지만 이 왕위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광해군을 따르는 신하가 별로 없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그는 심지어 세자 시절부터 자신을 도와왔던 임해군이 차기 왕좌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는 걸 보며 절망한다. 가까운 형제조차 믿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 것. 광해군은 그의 책사인 김개시(김여진)의 말을 떠올린다. “인간은 모두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용상은 욕망의 끝. 이제 곧 지난 16년의 세월보다 더한 것을 아시게 되겠지요. 인간의 다짐이란 허망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단 것을. 왕좌는 뜨거운 불처럼 강하고 아름답지만 전하를 삼킬 수도 있다는 걸요.”

이제 광해군은 그 역시 왕좌를 둘러싼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인목대비는 자식인 영창대군과 정명공주를 지켜내기 위해 왕좌에 대한 욕망을 조금씩 드러낸다. 정명공주는 광해군을 어린 시절부터 ‘오라버니’라 부르며 자라왔지만 “임해군 다음은 영창대군, 정명공주”라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혼란에 빠진다. 오라버니가 아닌 ‘전하’라고 부르는 정명공주의 호칭에 광해군은 쓸쓸해진다. 그토록 살가웠던 여동생도 이 ‘왕좌의 게임’ 안에서는 철저한 게임의 시스템을 따라간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 게임의 법칙은 다름 아닌 왕좌에 오르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이다.

▲ MBC '화정’ ⓒMBC

<화정>이 <왕좌의 게임>이 가진 시선을 차용하면서 이 드라마는 역사라는 단선적인 시각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광해군이 누군가. 역사가 기록하는 광해군은 그 이름에 ‘군’자가 붙어 있는 것처럼 왕좌를 위해 형제까지 도륙한 ‘폭군’이다. 하지만 <화정>의 관점은 다르다. 이 드라마에서 광해군은 그저 그 ‘왕좌의 게임’이라는 시스템 위에 던져진 한 말에 불과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칼을 휘둘러야 하고, 그 칼에 형제와 핏줄의 피가 묻는 걸 감당해내야 하는 그런 존재.

역사의 관점이라는 건 하나의 시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훗날 그것을 기록하는 자의 시선. 그래서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의 잣대가 끼어들 수밖에 없다. 이 관점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적인 시선’이다. 주인공도 없고 적도 없는 그 세계에서는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저마다 그만한 이유를 가진 채 행동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한 나라의 역사는 그 공유된 가치관이 반영되기 마련이지만 그런 역사는 자칫 반영된 가치에 의해 인물들을 박제화 시킬 위험성도 있다. 따라서 저 <화정>이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판단으로부터 탈주한 인물들은 어쩌면 이 박제된 인물들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작업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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