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무한도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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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포커스- 무한도전 10년 ] ① ‘무도’ 10년의 의미

MBC <무한도전>이 23일로 방송한 지 꼭 10년이 된다. 시작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형식도, 포맷도 없이 리얼하게 사람들을 웃기겠다는 ‘평균 이하’ 남자들의 도전은 ‘무리한 도전’처럼 보였다. 5%도 안 되는 평균 이하의 시청률로 시작해 프로그램의 존폐마저 위태했다. 그러나 지금 <무한도전>에 대해 물으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한국 예능은 <무한도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무한도전>은 한 회 한 회 성장을 거듭하며 때로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해학과 풍자를 보여줬고, 방송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시청자와 함께 호흡했다. 인물, 스타 중심으로 형성된 팬문화가 ‘무도빠(무도팬)’가 생기며 예능 프로그램 팬덤 현상을 일으켰다. <무한도전>의 10년은 단순히 프로그램 하나가 오래 방송됐다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국내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 ‘국민예능’ 등의 수식어에 담긴, 예능을 넘어선 예능 <무한도전>의 10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무한도전 10년 연재 순서]

① ‘무한도전’ 10년의 의미
② ‘무한도전’의 풍자와 해학 (☞ 기사보기)
③ 예능PD들이 보는 ‘무한도전’(☞ 기사보기)

형식 없는 ‘리얼’, 예능의 무한도전 

▲ <무한도전> ‘스피드 레이서’ 편. ⓒMBC

지난 2005년 4월 23일 <토요일>의 코너 중 하나인 ‘무모한 도전’으로 첫 방송된 이후 2006년 5월 6일부터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첫 걸음을 뗀 <무한도전>은 국내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를 선보이며 예능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실제로 <무한도전> 이후 <1박 2일>(KBS), <패밀리가 떴다>(SBS), <남자의 자격>(KBS) 등 다양한 형태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탄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무한도전> 이전과 이후로 예능계에 변화가 생겼다. <무한도전>의 출현 이전에는 대본 중심의 스튜디오 예능이 많았다면 이후에는 대본 중심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생겨나는 일을 프로그램에 반영해 편집하는 새로운 형태의 예능이 시작됐다”며 “<무한도전> 형식 자체가 새로운 포맷을 시도하는 형태로 되어 있기에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고, 이후 예능계의 산파 역할을 했다”며 “<무한도전>이 10년 동안 했던 과정이 우리 예능의 발전 과정과 진화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무한도전>에서 시도한 다양한 장기 프로젝트.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댄스스포츠 특집, 에어로빅 특집, 조정 특집, 봅슬레이 특집. ⓒ화면캡처

이처럼 <무한도전>이 ‘리얼’함을 선보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무형식’이다. A-B-C의 형식대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보다는 매번 새로운 주제, 새로운 아이템을 던져놓고 멤버들이 그 안에서 내용을 구축해나간다. 형식 없는 형식으로 인해 매회 도전이 가능할 수 있었다.

<무한도전>의 리얼함을 돋보이게 하는 또 다른 장치는 멤버들의 일거수 일투족과 돌발상황을 담는 수십대의 카메라다. 멤버 1인당 최소 1대 이상의 카메라가 따라다니며 그들의 말과 행동 모두를 담아낸다. 이는 예능의 대형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형식과 시스템 변화로 인해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2008년 6월 21일・28일 방송), ‘나 잡아봐라 특집’(2009년 9월 5일・12일 방송), ‘술래잡기’ 편(2013년 4월 6일・13일 방송) 등의 추격전, 2007년부터 2년 마다 열리는 가요제, 댄스스포츠・에어로빅・봅슬레이・레슬링・조정 등 비인기 스포츠종목에 도전한 장기 프로젝트, 멤버들이 회사원이라는 가정하게 펼쳐지는 상황극 ‘무한상사’ 등 한 프로그램 안에서 다양한 포맷을 보다 리얼하게 소화할 수 있게 됐다.

<무한도전>이 매회 다른 형식과 주제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와의 ‘소통’이다. 프로그램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연출을 맡고 있는 김태호 PD는 지난해 10월 <무한도전> 400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특집, 아이템을 하건 항상 잊지 않고 중시하는 게 ‘공감’과 소통이라 표현할 수 있는 ‘시청자와의 교감’”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 <무한도전> ‘끝까지 간다’ 편. ⓒ화면캡처

‘소통’, <무한도전>을 이끈 힘

이처럼 <무한도전>은 제7의 멤버인 ‘시청자’와의 소통을 중시한다. 시청자들과의 공감과 소통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시청률 하락이라는 위기를 넘기게 도와줬고, 멤버들이 중도하차하는 상황에서도 10년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무한도전>은 TV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시청자를 적극적으로 TV안으로 끌어들이고 멤버들은 거리로 나가 시청자 속으로 파고들었다.

‘미남이시네요’ 편(2011년 3월 12일・19일・26일 방송)의 경우 멤버들 사이에 불붙은 외모 논란을 종결시키기 위해 마련된 특집으로 길거리 투표, 네티즌 투표, 성형외과 전문의 투표, 세계 12개국 외국인 투표 등을 통해 외모를 가렸다. 지난 2월 7일・14일 방송된 ‘끝까지 간다’ 등과 같은 추격전에서 볼 수 있듯이 <무한도전>은 거리를 누비며 자연스럽게 일반인을 프로그램에 포함시킨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무한도전>은 시청이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경험의 폭 자체를 넓혔다. 예전에는 쇼를 보고 웃고 TV를 끄면 되는 세상이었지만 <무한도전> 이후 자신들의 경험이 TV에 투영되고 일상과 TV의 관계가 허물어졌다. 단순히 카메라 앞에서 찍는 쇼가 아니라 일상과 현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평했다. 또 김 평론가는 “<무한도전>이 ‘캐릭터’를 만들면서 출연자가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고, 어쩌면 더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정서를 함유하게 됐고, 좀 더 시청자와 거리가 가까워지게 됐다”고 말했다.

▲ <무한도전>은 자막을 통해 풍자를 선보이는가 하면 캐릭터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화면캡처

시청자와의 거리를 좁힌 또 다른 장치는 ‘자막’이다. “무도의 힘은 자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황에 대한 단순한 설명에 그쳤던 자막이 <무한도전> 이후 주관적으로 바뀌었다. 연출자가 마치 관찰자처럼 ‘제 3자’의 시각에서 프로그램을 보고 평가하는 이른바 ‘반응형 자막’을 선보였고, 자막을 통해 시청자와 대화하기도 한다. <무한도전>은 자막을 통해 ‘돌+I’, ‘고유명수’, ‘유반장’, ‘정중앙’, ‘건방진 뚱보’ 등 멤버들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소통 속에서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게 됐고, 멤버들은 물론 시청자도 <무한도전>과 함께 성장하는 시간이 됐다. 단일 프로그램에 대한 팬덤이 형성된 것도 이례적인 현상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은, 정확히 ‘무도빠’들은 <무한도전>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무한도전>은 단일 프로그램을 나타낸다기보다 ‘연출자-출연자-작가-스태프-시청자’ 사이의 유대를 뜻하는 말이 됐다.

▲ 인천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 이후 어린이집을 조명한 <무한도전> ‘무도 어린이집’ 편. ⓒ화면캡처

이슈를 관통하는 풍자와 은유

<무한도전>이 허문 것은 TV와 시청자 사이의 경계뿐만이 아니다. 때때로 사회 속으로 뛰어들면서 예능의 영역을 넘어선 예능을 선보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기본은 예능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시선은 마치 교양이나 시사 프로그램처럼 날카롭게, 그러나 심각한 어조로 접근하기 보다는 ‘풍자’와 ‘은유’를 통해 웃음 속에서 문제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준 것이다.

<무한도전>은 지난 2010년 한국홍보전문가인 서경덕 교수와 함께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농악, 장구춤, 태권도, 부채춤, 강강술래 등을 활용한 ‘비빔밥’ 광고를 제작,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 내 전광판에 노출해 한국 문화를 알렸다.

‘스피드 특집’(2011년 9월 24일 방송)은 이른바 ‘독도 특집’으로 불린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거센 속에서 각 미션 속에 모두 ‘독도’에 관한 코드를 심어놓으며 독도의 대한 경각심과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웠다.

▲ <무한도전>이 방송을 통해 만들어 낸 비빔밥 광고가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화면캡처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방송된 ‘선택 2014 시리즈’(2014년 5월 3일·10일·17일·31일 방송)는 향후 10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리더를 뽑는다는 주제로 실제 선거처럼 공약을 발표하고 실제 선거운동을 벌였으며 후보 단일화, 일반인 투표, 출구조사, 개표방송까지 진행했다. 또한 선거철에만 점퍼를 입고 서민을 찾는 정치인, 말과 행동이 다른 정치인의 유체이탈 화법, 세월호 참사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최근 방송된 ‘무도 어린이집’ 편(2015년 3월 7일 방송)은 지난 1월 인천 어린이집 원아 폭행 논란 이후 마련된 특집으로, 아동 폭행 사건으로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한편 “일부의 잘못으로 전체가 상처 받지 않기를”이라며 보다 넓게 사건을 바라보길 권했다.

KBS <1박 2일>의 유호진 PD는 “<무한도전>은 시대의 이슈와 트렌드를 짚어내는 능력이 있다”며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김태호 PD. ⓒMBC

MBC=무한도전=김태호

최초의 리얼 버라이어티이자 리얼 버라이어티 전성시대를 열었을 뿐 아니라 풍자를 통해 사회를 통찰하는 예능을 넘어선 예능. 지난 10년 간 이 같은 수식어를 하나씩 추가하고 또 지켜오면서 <무한도전>은 MBC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그리고 현재의 <무한도전> 포맷을 만들고 연출해 오고 있는 김태호 PD는 <무한도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MBC 내부에서조차 “<무한도전>은 MBC에서 엄청난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무한도전>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표현할 정도로 <무한도전>이 MBC에 기여하는 바는 상당하다.

방송법상 <무한도전>에 배당된 광고 시간은 9분. <무한도전>의 광고 요금(15초 분량・1월 24일 방송 기준)은 1126만 5000원. <무한도전>에 할당된 9분의 광고 시간은 모두 판매되고 있다. 이른바 ‘완판’. 정확히 말하면 광고를 사고 싶은 광고주는 정해진 판매 시간 9분을 넘어서는, 다시 말해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는 상황이다. 광고주들은 <무한도전> 광고를 사기 위해 <무한도전> 외의 프로그램 광고도 함께 구매하고, 이러한 신탁 견인 효과는 프로그램 광고 단가의 15배~20배 정도다.

경제적인 효과뿐만이 아니다. “공익 아닌 공익 같은 예능”이라는 말이 나오는 <무한도전>은 실제로 기부에서도 MBC의 가장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2014년 9월까지 <무한도전>이 외부에 기부한 금액은 같은 기간 동안 MBC가 기부한 전체 금액(45억 8830만 3056원)의 59.6%인 27억 3577만 2595원을 차지한다.

▲ (사진 위) 15초 광고 요금(1월 24일 방송 기준)이 1126만 5000원인 <무한도전>은 프로그램 앞 뒤로 최대 9분(약 36개)의 광고가 방송될 수 있고 완판된 경우 수익은 약 4억 554만원, 1년이면 194억 6592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지난해 최대 흥행작인 영화 <명량>(180억 원)과 역대 한국영화 제작비 5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억 원)의 제작비와 맞먹는 금액이며, 지난해 출시와 함께 돌풍을 일으킨 ‘허니버터칩’의 매출(200억원, 2014년 8월 1일~12월 28일)과 비교할 수 있다.(사진 아래) <무한도전> 기부액. 참고로 금액은 해당연도 기부 총액(MBC+<무한도전>)임.

이 같은 MBC 대표 브랜드는 10여 년 간 한 명의 PD가 이끌어왔다는 것도 진귀한 기록이다. <우리 결혼했어요>(MBC), <1박 2일>(KBS), <개그콘서트>(KBS) 등 여타 장수 프로그램은 주기적으로 연출자를 교체한다. <무한도전>도 연출자가 교체되지만 메인인 김태호 PD는 지금껏 자리를 지키고 있다. MBC의 모 예능국장은 “세상이 바뀌었다. <무한도전>은 터치하지 말라”라는 말을 할 정도로 전폭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구산 <무한도전> CP는 “<무한도전> 전에는 사실 예능 프로그램의 수명이 무척 짧았다. 길어야 3년 하면 굉장히 오래 한 프로그램이고, 한 1~2년 하면 없어졌다”며 “<무한도전>이 나오고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가 오면서 굳이 디렉터(연출)을 교체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러한 맥락에서 ‘터치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CP는 “지금은 김태호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해야 할까. 김태호와 <무한도전>이 워낙 한 몸이 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김태호 없는 <무한도전>은 <무한도전>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태호=무한도전’이고 ‘무한도전=김태호’라는 공식이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지난 몇 년 간 수 차례의 이적설에도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여의도클럽 총회에서 ‘올해의 방송인상 PD상’을 수상한 김 PD는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준 MBC에게 감사드리며, 모든 스태프들이 톱니바퀴처럼 함께 돌아가 완성되는 게 프로그램인 만큼 앞으로 힘을 합쳐 10년 동안 더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무한도전>의 10년은 그냥 흐른 시간이 아니다. 6명의 멤버, 김태호 PD, 작가, 스태프들 넓게는 무도빠까지 아우르는 관계가 곧 <무한도전>인 셈이다. 그리고 이 같은 관계가 계속되는 한 <무한도전>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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