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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자세”

[현장] PD 인문학 월례 포럼 ‘트라우마와 치유’ 김연지 기자l승인2015.04.24 07: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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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상처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선체 인양과 진실규명이 이뤄져야 치유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진실을 밝히고 유족들의 상처를 쓰다듬으려고 여러 PD들이 노력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미흡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일이다. 유가족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은 집권층 뿐 아니라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은 유가족 및 생존자와 함께 아파하고, 더 안전한 세상을 위해 힘을 합치겠다는 다짐이다. 유족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마음은 인간의 공감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캐묻는 ‘인문학’의 주제이기도 하다.”(한국PD교육원)

지난 22일 저녁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PD연합회(회장 박건식)와 한국PD교육원이 주최한 두 번째 ‘2015 PD 인문학 월례 포럼’(이하 인문학 포럼)이 열렸다. 인문학 포럼은 한 주제에 대해 화제의 프로그램을 만든 PD와 그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이번 포럼은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아 ‘트라우마와 치유’를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포럼에는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과 KBS <추적60분> ‘세월호 실종자 가족, 멈춰버린 1년’을 연출한 정택수 KBS PD가 참석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지난 22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2015 PD 인문학 월례 포럼’ 두번째 시간이 개최됐다. ⓒPD저널

강 센터장은 “세월호 실종자들의 귀환 문제를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대하느냐에 우리 사회의 미래와 운명이 달라질 것”이라며 “같이 아파할 수 있는 능력, 공감과 참여의 태도를 우리가 어떻게 갖느냐는 사회의 품격과 미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강 센터장은 2011년 오슬로 정부청사 폭탄 테러 사건 1주기 때 열린 노르웨이 추모 음악회를 소개하며 우리의 세월호 1주기와 비교하기도 했다.

정 PD는 “세월호 트라우마는 단순한 것이 아니고 4차, 5차 단계의 좀 더 복잡하게 구조화된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며 “가족들이 갖고 있는 공포심에는 국가와 시민사회에 대한 근원적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사건이 정치적 갈등으로 가지 않도록 시민들이 온 힘을 다해 막아야하며,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동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발제와 대화 주요 내용 정리.

■발제

강용주 광주트라우마 센터장 - 9명의 귀환을 기다리며

▲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PD저널

지난 4월 16일, 그리고 18일 경찰은 광화문에 차벽을 쌓았다. 그런데 2008년에도 ‘명박산성’이라 불리던 똑같은 차벽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집회가 시작되기 전 예방차원으로 차벽을 설치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경찰청은 시위가 과격해지니까 차벽을 설치한 거라고 얘기했지만 이미 경찰 문서 속에서 사전에 차벽을 준비했다는 내용이 밝혀졌다. 스테레오 타입이다. 희생자를 추모하거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와 추모행사가 생기면 경찰과 공권력은 불법집회, 폭력집회라면서 강경진압으로 대응한다. 집회 자체를 봉쇄하면서 강경대응하니까 필연적으로 물리적 충돌이 생기게 된다. 그걸 빌미로 폭력시위다, 주동자 색출해서 검거하겠다,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 클래식한 권력의 모습. 이 차벽이 상징하고 있는 건 그 불통의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기 일어난 지 1년이 지나도록 실종자 9명은 여전히 차가운 바다 속에 누워있다. 사람들이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귀환’은 원초적 본능이다. 떠나온 가족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건 원초적 욕망이고, 떠나간 가족이 돌아오기 기다리는 것도 근원적 욕망이다.

이 귀환이라는 것, 기다림과 환대를 내용으로 하는 그 욕망이 좌절될 때 사람들은 상처를 입게 된다. 그래서 상처와 귀환을 다루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하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혀야 비로소 하데스의 문을 통과해서 영원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이 묻히지 못하면 휴식도 취할 수 없고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죽어서도 땅에 묻히지 못한 사람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째는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와 트로이왕자 헥토르의 이야기다. 아킬레우스는 친형제 같은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게 죽자 헥토르를 죽인 후 그 시신을 전차에 매단 채 끌고 다닌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그대 아버지를 생각하여 나를 동정하라”며 시신을 돌려달라고 애원한다. 아킬레우스는 그 호소에 눈물을 흘리며 시신을 돌려주고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12일 간 휴전을 선언한다. 아킬레우스가 영웅이었던 건 타인의 고통과 연민에 공감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야기 <안티고네>가 있다. 크레온 왕은 안티고네의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반역자로 낙인찍고 들판에 버린 후 짐승에게 먹히고 망가진 채 구경거리가 되도록 장례를 금한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을 거역하고 오빠의 시신을 몰래 수습한다. 이에 분노한 크레온 왕은 안티고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죽은 자의 가족이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갖지 못하도록 막았던 크레온 왕. 그는 이후 비참한 처지가 된다.

자, 우리는 죽은 자에 대해 어떤 방식을 취할 것인가? 아킬레우스의 방식인가 크레온의 방식인가.

세월호 참사로 295명의 희생자와 아직도 바닷 속 깊이 남아있는 9명의 실종자가 생겼다. 우리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심각한 무능과 무책임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고싶다. 그들의 귀환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취할 것인가. 거기에 우리 사회 미래와 운명이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우리는 모든 고통을 치유할 순 없다. 그러나 슬퍼하는 자의 편에 서서 연대를 보여주며 도울 수 있는 손과 마음을 우리는 갖고 있다.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는 기능적 존재가 아닌 인간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라고 말했다. 최근 저먼윙스 항공기 참사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 사고로 16명의 학생을 잃은 한 학교에 가우크 대통령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방문해 장례식에 참석했다. 같이 아파할 수 있는 능력. 그 공감과 참여의 태도를 우리가 어떻게 갖느냐. 그게 우리 사회의 품격과 미래를 보여준다.

정택수 KBS PD - 죽은 자식을 찾는 부모의 마음

▲ 정택수 KBS PD. ⓒPD저널

프로그램을 만든 후 보람보다는 말 못할 무거움이 남았다. 몇 군데서 인터뷰하자는 얘기도 있었는데 그런 얘기조차도 당혹스러웠다. 우리 언론들이 얼마나 말 못할 부끄러운 상황에 놓여 있길래 단순히 프로그램 한편을 했다는 것만으로 칭찬을 들어야 하는지 참담했다.

오늘 주제는 트라우마다. 이 외상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다. 그런데 TV매체의 가장 큰 특성은 시각적으로 뭔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TV로 다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건 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나는 늘 함정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에 보였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세월호 사고해역에 배를 타고 나가서 가족들이 오열하는 장면이다. 은화어머니, 다윤어머니 나오셨는데, 물 속 바로 아래 자식들이 있지 않나. 자식들을 바로 배 위에서 바라봐야 하는 엄마들의 심정을 보여주지만 보여줄 수 없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다른 때와 달리 이런 고민에 빠진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추적60분>이 겨우 이런 걸 하냐고 비판받아야 되는 상황이다. 나 스스로도 더 쉽게, 더 정확하게, 팩트로 진실을 가로막은 것들에 대해 직설적으로 얘기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고민과 한계가 있었다. 이건 지금 언론 상황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의 순수한 고민이기도 한데, 언론이 팩트를 소개해도, 시위와 광화문 현장의 일, 기자회견 등을 모두 보여준다고 해도 그걸로는 보이지 않는 게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사건 앞에선 모든 정쟁을 멈추고 개인적인 철학을 떠나 이 참사를 가능한 한 깊게 바라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어려운 숙제 중 하나가 이 사건이 정치적 사건이 되어있다는 현실이다. 난 이게 어떤 상황으로 느껴지냐면, 집안의 축대에 균열이 가고 있다고 느낀다.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 앞에서 국가가 총체적으로 아무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런 사건 앞에서 우리 사회는 지금 이 참사가 마치 정치적 싸움인 냥 몰아가고 있다. 물론 누구의 책임인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하는 문제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이 상황 자체가 더 심각하다고 본다.

예전에 우리가 IMF 직후 금 모으기 운동 등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참 후진성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국가에 잘못한 책임자들이 따로 있는데 남녀노소가 장롱에 있는 금을 꺼내서 갖다 주는 방식이 참 별로라고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좋은 가치처럼 느껴진다. 국가주의는 경계대상이기도 하지만 나는 왜 거기에 담긴 공감의 가치를 충분히 느끼지 못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이 사건은 가장 쉬운 것에서부터, 원점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가장 쉽게 생각하면 부모님 마음이다. 죽은 자식을 찾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 건지. 인양에 얼마나 돈이 들고 이런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이 사건은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을 우리가 구할 수 있었는데도 못 구한 상황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부모의 마음을 사회적으로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부터 짚어 들어가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언론이, 어느 순간부터 의도치 않게 가해자가 됐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중에는 노력하려던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냥 외면한 분도 있겠지만, 언론 대부분 형식적으로 관료주의에 갇혀서 껍데기만 보여주지 않았나. 그걸 느낀 게, 평범한, 보통의 국민들이 세월호가 지겹다는 얘기를 하는 모습이다. 그들을 특권화하고 있지 않냐고, 여러 가지 죽음들은 항상 되풀이되는데 왜 세월호만 특별하게 다뤄주느냐고 말하는 사람들.

반면에 언론담당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 간극이 굉장히 크다. 생각해보면, 정작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는 우리가 굉장히 먼 곳으로,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버렸다. 세월호 유가족을 보기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만 보아도 그렇다.

세월호 1주기니까 당연히 생각해야지 하면서도 당사자들이 앞에 있을 때 그 분들 보는 건 불편하거나 괴롭거나 밉거나 이런 감정들을 느낀다. 난 거기에 언론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계속 껍데기만 다루기 때문이다. 그런 언론을 보면서 그 분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분들이 특별한 대접 받았다고 생각한다.

난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트라우마가 아니라 복잡하게 구조화된 트라우마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교통사고로 목숨 잃을 뻔한 적 있는데, 그게 1차적 트라우마라면 세월호는 4차, 5차 이 정도 단계의 복잡한 트라우마라고 본다. 가족들이 갖고 있는 감정 중에 국가와 시민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 1년이 됐는데 그 불신은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그냥 바라 보았을 때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지 않다. 세월호 뱃속에 아이들이 있는데 구조하지 못한 것처럼, 유가족들이 광화문 시위를 하며 트라우마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는 그냥 쳐다보기만 하면서 어쩌지, 어쩌지 방관하고 있는 현실.

국가나 시민사회는 결국 공동체다. 내가 어떤 뜻하지 않은 희생자가 됐을 때 나를 비아냥대고 조롱하는 이 상황. 적어도 그걸 방관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데올로기적인 틀이나 자기 틀에 가두려 하지 말고 그 사람들 마음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생명가치보다 돈, 형식, 관료주의적 절차를 중히 여기는 대한민국의 병폐가 해결되려면 부모 마음을 느끼고, 한명 한명 희생자와 실종자 이름을 다 떠올려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마음이 소통될 때 트라우마를 찾는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대화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이하 강용주):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삶이 멈춰버렸다고 얘기한다. 2014년 4월 16일에서 멈춰버렸다고. 그렇게 트라우마 입은 사람들을 만나 프로그램을 만들 때, 제작진은 공감하고 지지하고 경청하다보면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 트라우마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의학적으로는 참여외상이라고 한다. 피디님 힘들었을 것 같다.

정택수 KBS PD(이하 정택수): 내가 트라우마를 느낀다고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건 있다. 뭔가 모르게 계속 마음이 무겁고 그런. 예전엔 프로그램이 끝나면 보람 같은 게 컸는데 지금은 내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무거움에 빠져있다. 난 불과 2개월 정도 실종자 가족과 붙어있었을 뿐인데도.

취재를 직접 하지 않는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로 다들 트라우마를 느끼는 것 같다. 나 역시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 근데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일주일 동안 정리를 하다보니 이런 죄책감이 참 올바르지 않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한테 죄책감을 느끼는 건 일종의 뭐랄까, 그분들을 동정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그래서. 죄책감을 갖지 말고 밝아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강용주: 오늘 광주에서 5.18 때 가족을 잃은 분들이 1박2일 평화기행을 왔다. 기행을 마치고 광주에 내려갈 시간이 되었는데, 광화문에 세월호 유족을 보고 가겠다고,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고 그러더라. 마침 다윤 아버지도 안산에서 올라오셔서 5.18 유가족을 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그 고통을 겪은 사람 곁에 서 있어주는 것이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해줄 수 있는 그 지점에서 치유도 시작되고 더 나은 삶,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데올로기나 정쟁이 아닌,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우리 스스로 갖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택수: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세월호 의인’으로 알려진 김동수 씨를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나랑 만나기로 한 전날 밤에 뉴스가 떴다. 김동수 씨가 자해를 시도했다고. 그래서 원래 만나기로 한 게 미뤄져서 나중에 제주도 정신과 병동에서 봤는데, 그분도 그렇고 실종자 가족들 대부분이 지금 국가에서 만든 트라우마 센터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김동수 씨도 그렇고 다른 가족들도 트라우마센터에 와서 치료 받으라는 말 자체가 모욕이고 고통이라고 한다. 부모의 죄책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인터뷰가 오히려 또 하나의 폭력이 될 때도 있다. 그 분들이 말하길 상담사들이 나를 더 아프게 가해한다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강용주: 트라우마 치유의 전제가 되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안전한 환경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안전하지 않고 믿을 것도 없고 기댈 것도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여기에 가면 내가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근데 지금 현실이 안전하지 않다. 아니, 세월호 1주년이 됐는데 추모를 슬퍼하진 못하고, 삭발하고 상복입고 영정 들고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1박2일을 걸어와야 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진실 규명해달라니까 그걸 막는 시행령을 만들고 돈으로 모욕을 주고. 이분들은 지금 치유를 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안되어 있다. 안전한 환경이 아니다. 치유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에 공감하는게 먼저다. 그게 치유행위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치유자와 내담자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동맹관계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 라고 하는 말에 따르다가 죽었지 않나. 부모님들이 너무 괴로워하는 부분이다. ‘가만히 있어’의 결과가 이 참혹한 현실이다. 믿고 신뢰한 결과가 이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동맹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그래야 트라우마가 드러나고 다시 상처를 들여다보고 공동체와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 지금은 그 트라우마에 들어가기 위한 전제조건 형성이 안된 상태다. 5.18도 그렇고 살아남은 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죄의식이다. 죄의식은 살아남은 자들의 병적 증상이다. 그러나 왜 살아남은 자가 죄를 지은 거냐. 그렇지 않다.

강 센터장은 2012년 7월 22일 노르웨이 TV에서 생중계된 총기학살사건 희생자 추모 연주회를 소개하며 우리의 세월호 1주기는 어땠는지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정부와 언론, 시민사회를 포함한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용주: 2011년 오슬로 정부청사에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당시 청년캠프가 열리고 있었는데 부두에 배를 끊어버리고 학생들을 조준 사격했다. 69명이 살해당했다. 배가 없었기 때문에 학살이 시작되고 나서 응급구조단이 출동하는데 1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동안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위해 연대의 뜻을 모았다. 정부에서는 심리지원단을 조직해 지원했고 지역마다 마을마다 아픔을 나누려는 움직임이 계속됐다. 그리고 1년 후, 사회적 지지와 공감, 꾸준한 상담을 거친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마침내 트라우마의 현장인 우토야섬을 방문할 수 있었다. 노르웨이 총리와 정부 관계자들, 종교계 성직자들, 심리상담사, 의료진, 경찰관 등이 모두 함께였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말했다.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세월호 참사 1년을 맞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 고통을 우리 공동체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이것은 트라우마를 겪은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그 공동체가 트라우마에 짓눌려 살 것인지, 아니면 그걸 극복하고 더 나은 삶, 발전의 계기, 성장의 계기로 삼을 것인지를 결정할 시금석이라고 생각한다.

정택수: 수학여행을 가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어이없게 목숨 잃었다. 근데 날이 갈수록 세월호가 정치적 사건처럼 변질되고 있다. 나는 이 사건이 정치적 갈등으로 가지 않도록 온 시민들이 힘을 다해 막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가족들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동정하는게 아니라 우리의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이채훈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은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칼럼과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책을 인용하며 포럼을 마쳤다.

“만약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연민도 없고 공정함도 없는 상태로 변해간다면 어떻게 할까? 공정함도 연민도 없이 모두가 오직 생존을 위해 자기 이익만을 좇는 홉스의 자연상태에서 개인은 만인과 투쟁하며 ‘외롭고, 가난하고, 불편하고, 잔인하고, 부족한’ 상태를 견뎌내야 한다. 홉스는 국가가 이 상태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우리의 국가는 그런 참사가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리고 진영을 가르는 혐오감에 포위되어 있다.”(김남국)

“우리는 고귀함과 열악함이 공존하는 그 자체로서 인간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 자신도 언제든 취약해질 수 있으며 사회속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사람의 처지가 곧 나와 내가 아끼는 사람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이 누리는 행복이 전적으로 그 사람의 운에 맡겨진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약속하고 내가 겪는 불행이 결코 내 책임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그런 사회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이기 바라는지 끊임없이 캐물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현실의 사회구조를 바꿔나가야 된다.”(마사 누스바움)


김연지 기자  onmymind@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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