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녀석들을 위한 변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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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EBS ‘다큐프라임-진화의 신비, 독(毒)’

[연재 순서]

1. 어떻게, 왜 독을 가지게 되었을까?
2. 독한 녀석들의 사생활 ☜
3. 독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

▲ 딸기독화살개구리 ⓒEBS

‘이런 독사 같은 놈!’이란 욕이 있다. 뱀이 아니 정확하게는 독사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우리들은 습관적으로 악독하고 위험한 인물을 전갈, 독사 같은 독성생물에 비유하고는 한다. 이런 비유의 근거는 무엇일까? 정말로 이런 독성생물이 악독하고 잔인하고 음흉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 비유를 하는 걸까?

2013년 1월, EBS <다큐프라임>‘기생寄生 PARASITE’의 제작을 위해 찾은 파나마에서 작고 아름답지만 위험한 생물을 알게 되었다. 작고 빨간 개구리였다. 딸기독화살개구리는 눈에 확 띄는 빨간색 덕분에 손톱만큼 작았지만 어디서나 눈에 잘 띄었다.

아마존의 밀림에는 쥐도 잡아먹을 수 있는 대형 개구리인 뿔개구리가 산다. 하지만 뿔개구리는 그야말로 특별한 경우이고 대부분의 개구리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낮은 곳에 위치한다. 개구리는 새, 뱀, 작은 포유류들의 먹이가 되고 알이나 올챙이들도 물고기나 거북, 자라, 물장군 같은 수생동물의 먹이가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개구리는 천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위와 잘 구별되지 않는 보호색을 가진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눈에 띄는 체색을 가지게 된 걸까? 원인은 바로 독이다. 이 녀석들은 먹이의 독성물질을 흡수하여 재활용 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정말로 알뜰한 녀석들이다.

이들의 능력에 감탄하다 보니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왜 이 개구리는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자연은 왜 이들에게 이런 능력을 주었을까? 우리가 보통 자애롭다고 생각하는 어머니 자연은 절대 자애롭지도 인자하지도 않다. 그 때 그 때 변화하는 환경에 적합한 형질을 가지지 못했거나 그런 능력을 획득하지 못한 게으른(?) 종들은 가차 없이 버린다. 부단히 노력하고 환경에 맞춰 변화하는 영리하고 부지런한 종들에게만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독화살개구리가 이런 능력을 가지도록 만든 환경은 도대체 무엇일까? 다른 독성생물들은 어떻게 독이라는 무기를 가지게 되었을까? 자연 상태에서 먹이는 언제나 부족하고 날씨는 항상 너무 춥거나 덥고 천적의 위협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냥 저냥 살아나가기에도 벅찬 가혹한 자연 속에서 독이라는 무기를 왜? 어떻게? 만들어내게 되었을까?

▲ 딸기독화살개구리를 삼킨 뱀 ⓒEBS

독은 대단히 비싸고 고급스런 무기다. 독은 다양한 단백질의 복합체인데 종류도 다양하고 합성에도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되는 고급 무기이다. -사족이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한창 논란이 일고 있는 싸드(THAAD)와 유사하다. 싸드를 들여오고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생각한다면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외교적, 경제적 노력을 펼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치열한 군비경쟁의 끝은 결국 공멸이다. 동물들에게는 에너지로 표현되고 우리들에게는 돈이라고 할 수 있는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독도 그런 무기다.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크고 스스로가 그 독에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적응해야 하고 한 번 사용하고 다시 만들어내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실제로 독사가 한 번 독을 사용하고 다시 독을 만들어내기까지 2주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독사는 약 2주간은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비용도 많이 들고 쓰기에도 위험하고 없을 때에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도 있는 독을 그들은 가지게 되었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EBS <다큐프라임> ‘진화의 신비, 독(毒)’은 시작되었다. 해답을 찾기 위해 코스타리카의 밀림, 인도네시아와 팔라우의 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산호초, 사막과 습지, 거대한 유칼리나무 숲을 찾아다녔다. 거기서 우리들이 내린 결론은 결국 진화였다.

진화는 우연이다. 우연히 한 생물이 독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를 돌연변이에 의해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형질은 그 당시의 환경에서는 생존에 유리한 것이어서 그 생물은 자연히 많은 후손을 가질 수 있었고 그 후손은 지리적으로 먼 지역을 개척할 수 있었다. 지리적으로 먼 지역은 새로운 종이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상상을 해보자 원생대 말기의 지금보다 훨씬 넓었던 바다에 등장한 원시 해파리에게는 아마도 독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추측이고 상상이다. 부디 뭐라고 반론하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바다를 이러 저리 흘러 다녔던 해파리의 조상은 독이라는 획기적인 신무기를 가지고 후손을 많이 남겼다. -해파리의 번식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놀라운 것이다.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이 혼합된 번식방법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참고해 주시기를 바란다.- 엄청나게 불어난 원시 해파리는 다시 여러 가지 종으로 진화와 분화를 거듭하게 되었다.

진화는 목표가 없다. 독성생물들이 독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우연한 기회에 독을 가지게 되었고 그 독이란 형질이 그 당시 그 지역에서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대를 이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은 큰 대가를 요구하는 형질이다. 독을 가지지 못한 다른 어떤 종은 독 대신에 큰 몸을 가지거나 빠른 발, 엄청난 수의 새끼를 낳는 등 다른 형질을 가지게 되고 그 중 생존에 유리한 형질은 자손을 낳고 유전된다. 독을 가진 생물들은 독이라는 무기를 고도로 정교하게 다듬어가며 진화를 거듭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완전히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되거나 고비용 전략무기인 독을 과감하게 버리기도 했다.

진화는 창의력이 풍부하다. 독을 가진 생물들은 독을 다루는 놀라운 기술들을 가지고 있다. 고비용 전략무기인 독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획득 비용을 조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서 또는 독을 가짐으로 일어나는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다양한 진화를 이루어 냈다. 이들이 엄혹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낸 생존의 드라마는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나타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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